입대직후 보안사가 22일간 불법구금후 고문

무죄 드러나자 이적표현물 소지로 엮어 실형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과거사 피해자가 38년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구회근 강문경 이준영 부장판사)는 16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이재영씨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연세대학교 학생이던 이씨는 군대 입대 직후인 1982년 3월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 연루자로 의심받고 보안사에 끌려갔다. 이씨는 22일간 불법으로 구금된 채 심한 고문을 당했다. 그러던 중 해당사건 범인인 문부식씨가 자수해, 이씨는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하지만 보안사는 그를 풀어주지 않은 채, 이씨가 소지하고 있는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이 이적표현물이라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씨는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혐의가 없는 게 드러났으니 훈련소로 되돌려 보내면 되는데, 당시 고문을 하도 심하게 해서 내가 서있지 못하는 상태여서 이를 감추기 위해 어거지로 죄를 씌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1982년 2심에서 징역 10개월과 자격정지 10개월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 상고기각으로 형이 확정돼 복역했다.

이씨가 재심을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자녀 때문이다.

이씨에 따르면, 그의 아들이 해양경찰에 입사원서를 냈는데, 자신이 국가보안법 실형 경력이 합격의 걸림돌이 됐다. 그는 "연좌제가 폐지 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아버지의 경력 때문에 피해를 봐야 하느냐"고 난리를 쳤고, 아들이 합격했다. 하지만 입사해서도 아버지 경력 때문에 승진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아들은 결국 퇴사했다.

이씨는 "내가 아들에게 짐이 되고 있구나"라며 "재심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2018년말 이씨는 재심을 신청했다. 고문을 당한 사실은 입증이 어려웠지만, 보안사에 22일간 불법 구금당한 사실은 증명할 수 있었다. 이씨는 이를 근거로 재심을 신청했고 지난해 8월 서울고등법원은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이씨 재심사건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무죄를 구형했다. 2012년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무죄구형을 했다가 정직 4개월의 징계를 당했던 임은정 검사의 끈질긴 투쟁 덕분에 검찰이 변한 것이다. 검찰이 무죄를 구형했기 때문에 무죄를 선고받은 이씨에 대한 상고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재심무죄가 확정된 셈이다.

이씨는 소회를 묻자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미안하다"며 "아들 때문에 어머니가 진짜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때의 고문 후유증으로 아직도 허리통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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