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클럽 보고서로 자동화 논쟁의 기본조건이 바뀌었다 … 곧 달성할 것처럼 보였던 경제적 풍족함이 이젠 독이 든 사과처럼 여겨졌다.

"20세기 자동화 논쟁, 무엇이 맞고 틀렸나" 에서 이어집니다

기계자동화에 대한 예견자 가운데 기업 컨설턴트인 존 디볼드가 있었다. 자동화를 적극 주창한 사람으로 같은 진영에서는 칭송 받았지만 반대 진영에선 저주를 산 인물이었다. 디볼드는 어릴 때부터 괴짜로 불렸다. 소년 시절부터 과학자들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스스로 로켓을 만들었다. 15세 나이엔 뉴저지 부모 집 지하에 '디볼드 리서치 연구소'를 설립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상선 선원으로 근무하면서 신형 레이더로 통제하는 지대공 추적 미사일 시스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디볼드는 이를 계기로 자동화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하버드 MBA에 진학해 1952년 '자동화 : 공장 자동화의 도래'라는 책을 냈다.

디볼드는 '자동화'에 현대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자동화 공장은 제조과정에 몇 대의 새로운 기계 또는 통제장치를 들여오는 게 아니다"라며 "공장의 제조 프로세스를 재구성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디볼드는 자동화를 컨셉트로 한 국제 컨설팅기업을 설립해 자동화 설파의 최선두에 섰다. 그는 '자동화가 실업을 양산할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했지만 위축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컴퓨터가 조만간 경제의 모든 분야를 휩쓸 것이라는 생각엔 반대했다. 그는 자동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몇몇 사례를 부풀리거나 정확한 사실이 부족한 상황에서 주장을 펼친다고 비판했다.

디볼드는 기술로 인한 인간의 경제적 고통을 줄이려면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실업자의 1/3은 초등학교 이상 진학하지 못했다. 그는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융합교육을 찬성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기술적 능력, 특정 분야의 지식이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건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디볼드보다 더 낙관적인 학자가 있었다. 1958년 불경기 이후 미국 경제가 호황으로 접어들었다. 미래학자 로버트 시어볼드는 1961년 저서 '풍족함이라는 도전과제'에서 "우리가 삶의 수준을 3배, 4배 향상한다면 그리고 노동시간을 1/3~1/4로 줄인다면, 다가올 2000년엔 그로 인해 혁명이 발발할 텐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고 물었다.

그는 '3가지 혁명(트리플 레볼루션) 특별위원회'에 속한 35명 중 한 명이었다. 트리플 특위는 좌파 지식인과 활동가, 기술과학자로 구성된 그룹으로, △무기의 혁명(상호확증파괴) △인권의 혁명 △사이버네이션(컴퓨터에 의한 자동제어) 혁명 등 3가지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집단이었다.

이들은 1964년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공개편지를 보냈다. '사이버네이션 혁명으로 곧 국내외의 가난을 없앨 수 있다'며 '풍족한 경제로 모든 시민이 안락하게 경제적 안보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정부는 시민들에게 국가소득 보장 등 야심찬 개혁 프로그램을 선보여야 하며 시민들은 의미없고 반복적인 고역에서 풀려나 여가와 학습에 열중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트리플 특위가 보기에 당시 새로운 시대가 밝아오고 있다는 신호가 감지됐다. 미국의 생산성 성장률이 3년 연속 3.5%를 넘었다. 이들은 대통령에게 "앞으로는 더 높은 생산성 성장을 보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동시에 짧지만 강렬했던 1958년 불경기 이후 실업률은 높은 상태를 유지했다. 이에 대해 특위는 "기계들이 노동자를 몰아냈기 때문"이라며 "기계들은 이미 미국인이 소비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생산해내고 있다. 앞으로 잉여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추론했다. 따라서 전통적 개념의 경제정책을 버리고 '풍족함의 도전과제'를 직면할 때였다. 특위는 "이제 생산량을 어떻게 늘릴까가 아니라 사이버네이션의 거대한 잠재력인 풍족함을 어떻게 분배할지를 걱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래학자이자 핵전략이론가인 허먼 칸은 1967년 '2000년 : 향후 33년에 대한 사색틀'이라는 책을 냈다. 칸과 공동저자인 앤서니 위너는 "기술의 급격한 발전이 독재적 감시와 환경오염, 기타 불행을 가져올 수 있다"고 인정했지만 이들의 관점은 매우 희망적이었다. 이들은 양적 실험에 따른 결과라며 "2000년이 되면 중산층 이하 노동자도 연간 8만2000달러에서 16만4000달러를 벌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주당 5일 근무는 여전하겠지만 하루 노동시간은 7시간으로 줄어들고 휴가는 8주 동안 다녀올 수 있을 것이었다.

이들은 "미래의 여가를 즐기는 중산층 이하 계급들은 천박한 취미를 갖게 될 것이고, 정치행정적으로는 보수적 국가정책과 맹목적 애국주의가 판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중산층 이하 70~80%는 신사로 변모할 것이고 다양한 형태로 자기를 계발하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으로 봤다.

하지만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는 20세기 중반의 낙관론을 거스르는 쪽으로 흘렀다. 기술 부작용 논쟁이 커졌다. 이에 대응해 존슨 대통령은 '기술과 자동화, 경제발전에 대한 국가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위원회는 1966년 '미국이 경제 전환기에 놓였다'는 미래학자들의 입장에 대해 "그같은 견해에 반대한다"며 "실업과 경제 번영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추측이 양산됐다"고 지적했다.

당시는 베트남전에 대한 나라 안팎의 우려가 높아졌고, 노동 공급이 수요와 비등해지면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이 커졌다. 트리플 특위의 꿈을 부풀게 했던 돌발적인 생산성 성장은 이제 사그라든 듯 보였다. 게다가 정부가 미국의 주요 산업 36개를 면밀히 조사한 결과 자동화 영향은 입증되지 않았다. 트리플 특위가 제시한 전망이 지나치게 부풀려진 것. 또 16개 산업부문은 10년 동안 자동화를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다 1972년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 보고서가 나왔다. 로마클럽은 1968년 4월 서유럽의 정계·재계·학계의 지도급 인사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결성한 국제적인 미래 연구기관이다. 성장의 한계 보고서는 자동화 논쟁의 기본조건을 결정적으로 뒤바꿨다. 로마클럽은 보고서에서 "인류가 지구를 황폐화시키며 경제적 공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몇년 전만 해도 조만간 달성할 것처럼 보였던 경제적 풍족함이 이젠 독이 든 사과처럼 여겨졌다. 인구증가와 자원감소가 새로운 위협이었다.

얼마 전만 해도 '주체할 수 없는 풍족함을 어찌 해야 하느냐'고 걱정했지만, 이제 수많은 산업이 마치 악의 대리인처럼 느껴졌다. 환경오염 등 기업으로 인한 병폐를 강하게 규제하고 무거운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그러다 산업 활동이 부진해져 일자리가 줄어들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공감대가 생겼다. 자동화는 이제 논의의 중심이 아니었고 대중의 흥미도 자아내지 못했다. 공장 일자리가 줄어들면 정치인들은 그 주범을 해외에서 찾았다. 경제학자들이 '자동화의 영향일 수 있다'는 의견을 계속 제시했지만, 정치권은 너나없이 일본을 손가락질 했다. 요즘의 중국이나 유럽, 멕시코처럼 당시 일본은 미국 정치권, 산업계로부터 '일자리 도둑'이라는 뭇매를 맞았다.

성장의 한계 보고서가 발간되고 4년이 지난 1976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시의 한 차고에서 작은 스타트업을 차렸다. 컴퓨터가 다시 천사의 편에서 등장할 준비를 마쳤다. 1960년대 중반 차츰 소멸했던 논쟁이 되살아나면서, 컴퓨터와 인터넷은 자유와 창조의 도구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유토피아가 다시 한 번 손짓하기 시작했다.

20세기 말 등장한 인터넷 관련 새로운 기술을 게임 체인저로 보는 시선이 많아졌다. 신기술이 즉각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협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는 PC가 등장한 이래 40년 동안 순창출된 일자리를 1600만개라고 추산했다. 월가의 금융분석가에서 콜센터 직원에 이르기까지 대개는 기술 부문 외부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빛 나는 표면 아래, 임금상승은 정체됐고 노동자는 일자리에서 퇴출되고 있었다.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이 커졌다.

1973~1974년 미국 경제에 드리운 심각한 불경기 동안 기계 자동화의 악영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자동화 논쟁이 갑자기 끝난 지 몇년 안 돼서였다. MIT 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토는 이를 '노동시장 양극화'로 불렀다. 그에 따르면 임금 상승의 몫은 소득과 기술 분배의 계층에 따라 상층과 하층의 노동자들에게 불균형하게 분배되고 있었다. 자동화에 가장 취약한 중간에 속하는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고통을 받았다.

현재 자동화에 대한 균형추는 다시 암울한 견해쪽으로 이동했다. 미국의 실업률이 3.6%에 불과하고 장기간 증시 호황이 이어지지만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미국 사회에 만연하다. 임금은 매우 더디게 상승하고 경제적 불평등은 사람들의 마음을 괴롭힌다. 그리고 일각에서 '로봇이 일자리를 앗아가고 있다'고, '안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머릿기사에서 'AI(인공지능)가 글을 쓰는데, 여전히 우리에게 소설가가 필요한가'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앤드루 양은 2018년 "몇년 뒤 백만여명의 트럭 운전사들이 자율주행 차량에 밀려날 것"이라며 "그 하나의 혁신만으로 거리의 폭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수많은 기술발전 지지자가 있다. 2014년 '풍족함 : 미래는 생각보다 좋다'를 펴낸 피터 H. 다이어먼디스가 대표적이다. 또 '3가지 혁명 특위' 옹호자들이 있다. 이들은 "자동화가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고 사회주의에 길을 터줄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영국의 극좌파 작가인 아론 바스타니는 지난해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Fully Automated Luxury Communism)라는 저서에서 그같은 맥락을 짚었다.

학계 역시 논쟁에 뛰어들었다. MIT 경제학자 대런 애쓰모글루는 자동화의 파괴력에 대한 기초 연구를 수행했다.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 동료 데이비드 오토와 마찬가지로, 애쓰모글루 역시 자동화를 상대적으로 낙관적으로 바라본다.

아일랜드 NUI골웨이대학 존 다나허의 '자동화와 유토피아 : 노동 없는 세계에서 인간의 번영'(2019), 옥스퍼드대 칼 베네딕트 프레이 교수의 '테크놀로지의 덫 : 자동화 시대 자본과 노동, 권력'(2019) 등도 자동화를 집중 연구한 역작들이다.

옥스퍼드대 프레이 교수는 2013년 자동화의 비관적 영향력을 재점화하는 데 기여한 바 있다. 그는 미국 일자리의 47%가 향후 자동화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는 2017년 "2030년이 되면 미국 일자리의 23%가 없어질 것"이라고 추산했다.

소프트웨어 기업가인 마틴 포드는 2015년 저서 '로봇의 등장 : 기술, 그리고 일자리 없는 미래의 위협'에서 "기술이 많은 일자리를 없앨 것이지만 고용주 입장에서 별다른 매력이 없는 노동자들에게 기본 연봉을 보장해준다면, 이들이 자유롭게 사업구상을 짜거나 세련된 여가를 추구하면서 부정적 영향을 상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은 2013년 저서 '평균의 시대는 끝났다 : 대침체 시대를 넘어 미국에 권한 부여하기'에서 "새롭고 똑똑한 기계와 능숙하게 협업할 수 있는 사람은 번영할 것"이라며 "인구의 태반은 그같이 번영하는 부유한 계급에게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근근이 먹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들은 물가가 하락하고 저렴한 오락거리가 점차 늘어나는 데 위로를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가장 암울한 디스토피아 지지자들은 인공지능(AI)과 유전공학을 거론한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AI를 인류가 직면한 가장 거대한 존재론적 위협으로 본다. 저명한 역사학자 유발 노아 하라리는 베스트셀러 '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에서 알고리즘으로 인한 시민적 붕괴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하라리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와 기타 모든 가치 시스템이 정보흐름의 숭배 앞에서 무너질 것"이라며 인간이 데이터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면서 종교로 변질됐다는 의미에서 '데이터교'(dataism)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는 "만약 인류 자체가 하나의 단일한 데이터 프로세스 시스템이라면, 그 산출물은 무엇일까. 데이터주의자들은 그 산출물이 새롭고 효율적인 또 다른 데이터 프로세스 시스템이라고 본다. 따라서 인류가 그 임무를 완수한다면, 호모 사피엔스는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원하는 사회를 요구해야

자동화에 대한 그 어떤 전제나 주장도 100% 정확하진 않았다. 1950년대와 60년대 예견자들은 부분적으로 맞고, 부분적으로 틀렸다. 거기서 배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20세기 중반 사상가들은 생산성 측면에서 옳았다. 전반적으로 미국 경제는 생산성에 관한 한 지지부진했다. 1960년대 이래 노동생산성은 매년 2% 이하의 미약한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자동화가 쉽게 장착될 수 있었던 제조업의 경우 생산성 성장률이 3% 가까이 근접했다. 따라서 60년대 자동화 낙관론자들은 크게 흥분했다. 그 시대 이후 미국 제조업의 산출물은 크게 상승했다. 하지만 제조업 일자리가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줄었다. 2000년 닷컴버블 붕괴 동안 일자리 수는 절대적 기준에서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자리 감소는 자동화보다는 국제무역, 그리고 아웃소싱의 영향력을 더 크게 받았다.

또 20세기 중반 예견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노동 대신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봤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노동참가율은 계속 상승해 현재 61% 정도다. 이는 20세기 중반보다 5%p 높다. 평균 주당 노동일 수도 지난 50년 간 거의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한 그룹은 여가시간이 크게 상승했다. 바로 노년층이다. 노년층은 과거보다 더 오래 살고 전체 인구에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65세 이상 인구는 20세기 중반에 비해 거의 2배 많아졌다. 3가지 혁명 특위가 활동할 때 총인구 대비 노년층은 9%였지만, 지금은 16%에 달한다.

사실 인공지능은 인류에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도전과제를 제기한다. 20세기 중반부터 희망과 악몽을 번갈아가며 선사했던 자동화가 마침내 그 위용을 드러내겠다며 위협하고 있다. 예일대 사회학 교수 데이비드 리스먼이 화이트칼라 전반을 휩쓸어버릴 것으로 봤던 자동화가 마침내 들이닥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예측력과 상상력은 지난 70년 동안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을 수 있다.

그렇다면 20세기 중반 자동화의 예언가들에게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첫째 '미래는 오늘날과 다를 것'이라는 점이다. 많은 예언자들은 급격한 미래 변화를 강조하면서도 몇가지 핵심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표적으로 급격한 생산성 증가가 미국 경제의 영구적 특성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종종 되풀이되는 오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대침체로 미국의 실업률이 높게 유지됐을 때, 미래학자 상당수는 기술적 변화로 인해 향후 실업률이 크게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 실업률은 현재 3.6%다. 20세기 중반 이후 보지 못했던 낮은 수치다.

둘째 '모든 것은 생각보다 오래 유지된다'는 점이다. 변화는 종종 기대보다 더 느리게 진행된다. 그리고 그에 적응하는 건 더 쉽다. 자동화로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축출될 것이라는 경고는 수십년 전 나왔다. 물론 오늘날엔 보다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저 멀리 지평선에 걸려 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엔 시간이 걸리고 그 기술이 경제에 통합되는 데 또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그 기술 중 일부는 중도에 실패한다. 자율주행차가 곧 도로를 점령할 것처럼 보였지만, 그 모습은 계속 미래로 후퇴하고 있다.

반면 기업들은 기술에 투입하는 돈을 과거보다 줄이고 있다. 정보프로세스 장비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기업들의 투자는 20년 전 닷컴버블이 붕괴한 이후 하락했다. 아직 상승 추세로 반전되지 않고 있다.

셋째 '변화는 불균형하게 배분된다'는 점이다. 열광적인 기술 지지자들은 공상과학 소설가 윌리엄 깁슨의 말을 즐겨 인용한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그같은 주장은 미래의 모습이 곧 모든 곳에 퍼질 것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1차 자동화 논쟁이 시작된 지 7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지 않고 있다.

넷째 '가속화'(acceleration)는 유행어로 봐야 한다. 사람들은 산업혁명 이후 기술적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며 흥분한다. 물론 특정 기술이 폭증하며 발전하는 경우가 있다. '무어의 법칙'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1950년 이후 현재까지 70년 동안의 세계 변화, 그리고 1880년부터 1950년까지의 70년 동안의 세계 변화를 비교해보라. 어느 기간이 더 거대한가. 1880~1950년엔 자동차와 전기, 비행기 등 획기적인 발명이 이뤄졌던 시대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우리 시대 혁신의 정도가 사실상 둔화했다고 주장한다.

기술발전의 가속도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찌 보면 '오늘 이 호텔을 36명이 예약했다. 마감되기 전 빨리 예약하라'고 알리는 여행사이트의 팝업창과 비슷하다. 즉 수용자의 발빠른 자극을 이끌어내기 위한 용도다. 그저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다섯째 자동화는 '추상'이다. 자동화라는 큰 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다뤄야 할 때가 많다. 그래야 그 도전과제를 관리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많은 일자리를 없앨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일을 기계에 넘겨줄 것인지, 알고리즘 설정과 관련해 도덕적·윤리적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를 다뤄야 한다. 안면인식 기술이나 자율주행차 프로그램, 의학에서 인공지능을 어떻게 규제할지 등은 우리가 꼭 내놔야 할 대답이다. 각각의 질문과 답엔 그에 걸맞은 상쇄효과와 딜레마가 늘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기술은 '종착점'이 아니다. 명백한 말이지만 종종 망각되는 것이다. 어떤 신기술이 등장했다고 해서 그것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아예 외면하거나 할 것은 아니다. 전 세계는 민간의 핵발전을 봉쇄했다. 또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과속단속 카메라를 아예 허용치 않는다. 기술적 변화의 광범위한 힘을 부정할 수 없지만, 개별 기술의 모양은 인간이 재지정할 수 있다. 대런 애쓰모글루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기술로도,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기술을 창조하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다"고 썼다. 그는 "노동자 말살을 혁신으로 보는 소수의 기술기업들이 시장을 지배하면서 '시장실패'가 야기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20세기 중반 워싱턴국립대성당의 주임사제 프랜시스 세이어는 "기술적 변화는 우리에게 어떤 종류의 사회를 원하는지 결정할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그의 말은 지금도 옳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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