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합, 판례 변경

"복직 불가능해도 임금 손실 회복은 가능"

회사와 부당해고 소송을 벌이다가 정년이 지났더라도 소송을 각하해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각하는 소송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본안 판단을 하지 않고 재판을 끝내는 것을 말한다. 정년이 지나 복직이 불가능해도 임금 손실 회복은 가능한 만큼 해고에 대한 부당성 여부를 판단한 뒤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고의 효력을 다투던 중 다른 사유로 근로관계가 종료한 경우, 소의 이익이 소멸된다는 기존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일 A씨가 "회사의 부당해고를 인정하지 않은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각하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행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잡지 발간 및 교육사업 업체인 B사에서 무기계약직으로 근무해온 A씨는 2016년 12월쯤 근무태만 등을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았고, 서울지방노동위원회를 거쳐 중앙노동위원회에까지 구제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냈다.

재판 쟁점은 A씨가 소송 중 정년에 도달해 복직 자체가 불가능해졌는데도 소송을 이어갈 만한 이유가 있는지였다.

정년 규정이 없던 B사는 소송이 진행 중이던 2017년 9월에 만 60세를 정년으로 하는 규정을 신설했는데, 규정 시행 당시 A씨는 이미 60세를 넘긴 상태였다.

이에 1심은 "(A씨는) 취업규칙(정년 규정)의 시행일에 정년이 도래해 당연퇴직 됐으므로 소송의 이익은 사라졌다"며 청구를 각하했다. 2심도 1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 전합은 "해고의 효력을 다투던 중 정년에 이르거나 근로계약 기간이 만료하는 등의 사유로 복직이 불가능해진 경우라도 해고 기간 중 임금 상당액을 지급받을 필요가 있다면 소송의 이익이 있다"고 판시했다.

전합은 "부당 해고 구제 제도 목적은 근로자의 지위 회복뿐 아니라 해고 기간 중 임금 상당액을 지급받도록 하는 데에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복직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소송 이익을 인정해 근로자에게 구제받을 기회를 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종전 판례에 따르면 기간제 근로자는 계약 기간이 끝나면 부당 해고에 대한 구제를 인정받기 어려워져 부당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종래 대법원은 근로자가 구제명령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보아 원직에 복직하는 것이 불가능하면 근로자가 재심판정의 취소를 구할 소의 이익이 없다고 보아 각하해왔다. 이는 해고기간 중의 지급받지 못한 임금을 지급받기 위해 민사소송절차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종례의 대법원 판례를 뒤집는 것으로 해고 소송 중 근로관계가 끝났더라도 소송을 통해 얻을 이익이 있으면 재판절차를 통해 해고의 정당성 여부를 따져야 한다는 의미다.

대법원 관계자는 "부당해고를 당한 근로자가 부당해고 구제명령제도를 통해 구제받을 기회를 확대하였다는 데 판결의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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