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종 서울 종로구청장
광화문 옆 누구나 한번쯤 궁금해했을 높은 담장에 가려져 있는 공간이 있다. 경복궁과 옛 풍문여고 사이의 대한항공 소유 부지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식산은행 사택 부지로, 광복 후에는 미국 대사관 직원숙소로 사용됐던 곳이다. 대한항공이 관광호텔을 지으려고 매입했으나 ‘학교 인근에 호텔을 지을 수 없다’는 관련 법 규정 때문에 추진하지 못했다.

며칠 전 반가운 뉴스를 접했다. 서울시에서 송현동 땅을 매입해 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정말 오래 기다렸던 소식이다. 2019년 대한항공이 부지를 팔겠다고 발표했고 올해 2월 매각을 결정했다. 이에 서울시가 나서면서 드디어 송현동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경복궁과 창덕궁 잇는 역사적 공간

송현동은 서울 한가운데 위치하지만 정작 시민들은 100여년간 단 한번도 밟아보지 못한 땅이다. 일제강점기는 일본, 독립 후에는 미국, 1997년 이후부터는 대기업 소유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조성되는 것이다.

필자는 2010년부터 서울시에 송현동 땅을 매입한 뒤 공원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송현동은 경복궁과 창덕궁, 광화문광장과 북촌을 잇는 우리나라 정체성과 관련이 깊은 공간으로 개발에 공공성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사되지 못했다. 대한항공측에 송현동 부지와 종로구청 땅을 바꾸자는 제안도 했다. 송현동 부지 일부에 청사를 짓고, 대부분은 숲·문화공원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이 제안 또한 실현되지 못했다.

숲·문화공원이란 지상에는 생태계가 살아 있는 숲·공원을, 지하에는 종로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한 문화시설이나 주민편의시설을 함께 조성하는 것을 말한다.

숲·문화공원에서 더 중요한 것은 숲·공원이다. 도심에 제대로 쉴 수 있는 숲·공원이 없기 때문이다. 2017년 산림청의 1인당 도시 숲 면적 통계를 보더라도 서울은 4.38㎡로 전국 최하위다. 전국 평균 10.07㎡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다음세대까지 고려한 숲·문화공원 기대

종로구는 숲·문화공원 조성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2019년 두차례 토론회를 개최했다.

1차 토론회에서 각 분야 전문가들이 송현동 땅은 공익목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2차 시민토론회에서는 시민 80.5%가 숲·문화공원 조성에 찬성했다. 그러나 숲을 만들면서 어떤 시설을 조성할지는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시민들은 공원이 조성되면 교통·주차 문제가 심각해질 것을 염려했으며, 의견 수렴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서울시에서 이번에 송현동에 숲·공원을 만들겠다고 발표한 데에는 종로구가 2010년부터 추진했던 일련의 노력들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송현동의 토지매입이 확정되면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조성 사업의 추진 경험을 살려 사업 시작단계부터 공론화 과정을 충분히 거치며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음 세대까지 생각해 정말 제대로 된 숲·공원 조성했으면 좋겠다. 종로구의 역할이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고 협조할 것이다.

송현동에 숲·문화공원이 조성된 뒤 따뜻한 어느 봄날 딸과 유모차를 끌고 와 손자 손녀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한가로이 지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