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사례 입수, 세계 석학 설득해 재판서 증언

30대 판사시절 '손해배상계산프로그램' 개발

미국서 독과점금지 공부, 공정거래 철학 배워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피해가 발생한 지 12년째다. 1000개가 넘는 기업이 피해를 입었다. 가장 큰 피해 집단은 한국경제 허리를 담당하던 수출중소기업이었다. 세계시장을 호령하던 이들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키코피해 기업들은 2008년 첫 소송에 나섰다. 2013년 대법원은 은행 손을 들어줬다. 키코피해 기업들은 다시 세계시장으로 나아갈 기회를 잃었다.
김성묵 변호사가 지난달 27일 법무법인 대륙아주 사무실에서 키코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김형수 기자


지난해 12월 13일 반전이 일어났다.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은행의 불완전판매 책임을 인정했다. 키코상품을 판 은행 6곳은 분쟁조정을 신청한 4개 기업에 키코피해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금융당국이 은행 잘못을 처음으로 적시한 결정이다.

은행들은 반발하고 있다. KDB산업과 씨티은행은 금감원 권고를 거부했다. 신한·KEB하나·DGB대구·씨티은행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이렇게 키코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금융권은 잊고 싶은 흔적이다. 정부와 정치권, 법조계에서도 달갑지 않은 문제다.

누구도 나서기 꺼려하는 '키코사건'를 12년간 부여잡고 있는 법조인이 있다. 법무법인 대륙아주 김성묵(63) 변호사다.

그는 2008년 11월 첫 키코소송이 제기되기 이전부터 '키코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에 참여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진행된 모든 키코소송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김 변호사는 해외사례 발굴 등 변론논리를 뒷받침할 주요 자료를 뽑아내고, 변론논점을 잡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F. 엥글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석좌교수가 키코재판 증인으로 출석한 배경에는 김 변호사 노력이 작용했다. 2017년 키코소송에서 은행에 100% 배상 결정을 내린 독일 연방대법원 판결문을 입수해 공개한 것도 그다. 지금도 키코피해공대위 운영위원으로 공대위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키코사건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법조인의 양심을 걸고 키코는 사기다." 그의 대답이다. 고위험 외환파생상품을 수출기업을 속여 환헤지상품으로 판매했다는 것이다. 특히 은행은 프리미엄(수수료)이 있는데도 이를 감추고 '제로 코스트'(Zero Cost)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은행에 면죄부를 결정한 대법원 판결에 승복하지 않는다. 재판과정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2018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 키코사건 판결을 거래했다는 문건이 공개됐다. '청와대(박근혜 전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키코사건 등의 판결을 권한과 재량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했다'는 내용이다. 키코판결을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뒷거래 한 것이다.

검찰도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실을 접근하는데 훼방을 놓았다. 키코피해 기업들이 은행과 임직원을 사기판매로 고발한 사건에서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사건 첫 담당 검사와 수사관은 수사에 적극적이었다. 은행 기소를 담은 공소장 초안도 작성했다. 최종 보고를 앞두고 검사와 수사관이 인사발령이 났다. 후임 검사는 수사를 차일피일 미루더니 은행과 임직원들을 무혐의 처분했다. 그가 '검찰개혁'에 적극 동조하는 배경이다.

김 변호사에게 키코는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발생한 해외금리연계파생결합상품 DSL/DLF 사태에 대해 "키코사건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아 일어난 인재"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DSL/DLF 구조가 키코와 거의 똑같다"며 "키코는 환율, DSL/DLF는 해외금리 중심이라는 것만 다를 뿐"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DSL/DLF는 또다른 키코인 셈이다.

그는 "'징벌적 손해배상'과 '집단소송' 도입은 또다른 키코사태를 방지하는 최소한의 대안"이라고 호소했다. 해외 선진국은 고위험 파생상품에 대해 엄격히 관리한다. 고의로 대규모 피해를 입힌 경우는 징벌이 매우 무겁다.

김 변호사는 "법률로 남의 물건을 훔쳤을 때는 물건 값의 12배를 배상하도록 한 부여의 1책12법(一責十二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키코피해 기업은 단순한 경제적 약자가 아니다. 국가권력의 방관 속에 금융횡포에 당한 피해자다.

김 변호사는 공정거래법 전문 변호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대학때 부친사업의 실패로 생계를 걱정해야 했다. 검사를 꿈꾸며 연세대 법대에 입학했지만 사시를 미루고 대우그룹에 취업했다. 월급이 훨씬 많은 리비아 건설현장 근무자를 자처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사시공부에 매달렸다. 1987년 사시에 최종 합격했다. 1990년 판사로 임용됐다. 광주지법 근무 당시 '손해배상계산프로그램'을 개발해 유명세를 탔다.

판사를 내려놓고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뉴욕 맨하튼의 포드햄대 법학전문대학원(Fordham Law School)에서 미국의 독점금지법(Anti-trust law), 국제무역 관련 과목, 파산법 등을 공부했다.

유학때 배운 게 지금의 길을 걷게 한 밑바탕이 됐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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