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을 짓눌려 사망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미국의 유혈 폭력 시위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미 전역 75개 도시에서 대규모 항의 시위가 벌어지며 방화와 약탈 등 폭동 양상까지 빚어지는 양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 차원의 군 투입 방침을 밝히며 시위 주도세력을 극좌파로 몰아붙이며 테러조직으로까지 거론해 국론분열을 심화시킨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례 없는 코로나19 확산 사태에 실업률 폭등으로 몸상을 앓는 가운데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은 방화와 약탈을 동반한 전국적 시위를 촉발, 미국 사회 전반을 대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 '흑인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대 |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브루클린 지구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미니애폴리스 경찰의 가혹 행위로 숨진 사건에 분노한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욕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시위는 지난 25일 편의점에서 위조지폐 사용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인근에 있던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경찰관이 무릎으로 플로이드의 목을 8분 넘게 짓누르면서 숨 쉴 수 없다고 고통을 호소하던 플로이드는 결국 목숨을 잃었다.

당시 상황을 찍은 동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되면서 사람들이 분노했고 사건이 벌어진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시작된 시위는 들불처럼 빠르게 각지로 번졌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으로 전국 곳곳 무법천지 = 이번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는 31일(현지시간) 미국 전역 75개 도시로 번졌다. 곳곳에서 약탈과 방화를 동반한 폭동이 일어났고, 총격 사건까지 잇따르며 현재까지 최소 4명이 숨졌다.

'흑인 사망'에 성난 미국 미니애폴리스 시위대 대형마트 약탈 | 미국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서 27일(현지시간) 시위대가 대형마트 타깃(Target) 매장에 난입해 망치로 금전 등록기를 부수고 물건을 약탈하고 있다 미니애폴리스 AP=연합뉴스


체포된 시위대는 1600명을 넘었다. 폭력 시위로 미 전역이 무법천지 상황이 되자 미니애폴리스는 물론 한인타운이 있는 로스앤젤레스(LA)를 포함해 25개 도시는 대략 저녁 8시부터 야간 통행금지령을 발동했다. 수도 워싱턴DC와 캘리포니아주 등 12개 주는 방위군을 소집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전국의 많은 지방 행정당국이 동시에 통금령을 내린 것은 1968년 마틴 루서 킹 목사 암살 사건 이후 처음"이라고 전했다. NYT는 "코로나19 봉쇄조치와 경제 둔화, 대규모 실직사태 이후 (미국인들이) 플로이드 사건과 관련해 불평등에 대한 고통을 분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위는 전날 워싱턴DC를 비롯해 서부 캘리포니아주 LA부터 동부 뉴욕에 이르기까지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일제히 일어났다.

워싱턴DC에서는 시위대와 백악관을 지키는 비밀경호국(SS) 직원이 충돌했고, 백악관 외곽에 방위군이 배치됐다. 시위대는 취재를 나온 보수 성향 매체 폭스뉴스 기자를 공격했고, 백악관 인근 라파예트 공원도 불탔다.

백악관 인근의 연방정부 건물인 보훈처는 시위대에 의해 손상됐고, 산산조각이 난 유리창 파편이 인도를 뒤덮었다. 시위대는 건물 벽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욕설을 담은 낙서도 휘갈겼다.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시작한 약탈과 방화는 서부로도 번졌다.


시위대는 고급상점이 밀집한 LA 멜로즈·페어팩스 애비뉴와 베벌리 힐스 일대 상가를 약탈하고 불을 질렀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LA에 주방위군을 투입하고, 야간 통행금지령을 발동했다. 뉴욕에서는 수천명의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면서 33명의 경찰관이 다치고 345명이 체포됐다. 월가와 뉴욕증권거래소가 위치한 로어맨해튼 지역에서는 상점 10여곳이 약탈당했다.

플로리다주에서는 경찰관이 시위 현장에서 목에 칼을 찔려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고,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는 시위 도중 총격 사건이 발생해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다쳤다. 이로써 지난 26일 미니애폴리스에서 첫 항의시위가 발생한 뒤로 현재까지 모두 4명이 총격 사건 등으로 사망했다고 NYT는 전했다.

일반 시민과 시위대간 유혈 사태도 일어났다. 텍사스주 댈러스에서는 한 남성이 시위대를 향해 마체테(날이 넓은 긴 칼)를 휘둘렸고, 수십명이 달려들어 이 남성을 구타했다. 곧이어 이 남성은 머리를 피를 흘리고 사지가 뒤틀린 채 실신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또한,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의 한 백인 남성은 시위로 인해 도로가 막히자 활과 화살을 들고 차량 밖으로 걸어 나와 시위대를 겨냥했고, 시위대는 이 남성을 집단 구타했다.

백인 우월주의를 상징해온 남부연합 기념물도 시위대의 공격 대상이 됐다. 남북전쟁 당시 옛 남부연합 수도였던 버지니아 리치먼드와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에서는 시위대가 남부연합 기념 동상 등을 훼손하고, "영혼의 대량학살", "반역자",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낙서를 남겼다. 대형마트 체인 타깃(Target)은 시위대의 약탈이 잇따르자 미네소타 등 13개주 175개 매장을 일시적으로 폐쇄했다.

미 전역을 뒤흔드는 시위 사태는 대규모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사태에 대한 우려도 낳고 있다. 미 보건당국은 대규모 시위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코로나19 테스트를 받아야 할 것이라며 다소 수그러들고 있는 미국의 코로나19 감염자들이 재개방 시기와 맞물려 대재앙 수준으로 악화되지나 않을지 크게 우려하고 있다 .

◆트럼프, 초강경 대응 속 '이념대결' 몰아가기 = 트럼프 대통령은 이처럼 항의시위가 건잡을 수 없이 확산하자 31일 시위 주도 세력을 '극좌파'라며 '안티파(ANTIFA)'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안티파는 극우 파시스트에 반대하는 극좌파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그동안 시위대를 "폭도", "약탈자"로 비난하며 연방 차원의 군 투입 등 강경대응 방침을 밝혀온 연장선상에서 초강경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시위 확산 사태 와중에서도 이념 대결 구도를 시도하며 강경 진압을 부추기는 듯한 모양새여서 대통령이 국론 분열을 심화시킨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미국은 "안티파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떤 인사들을 안티파로 규정, 테러조직으로 지정할지 등에 대한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부연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함께 "주 방위군이 지난밤 미니애폴리스에 도착하자마자 즉각적으로 한 훌륭한 일에 대해 축하를 전한다"며 "안티파가 이끄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신속하게 진압됐다"고 밝혔다. 이어 "첫날밤 시장에 의해 이뤄졌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인사가 이끄는 시와 주들은 지난밤 미니애폴리스에서 이뤄진 급진좌파 무정부주의자들에 대한 완전한 진압을 살펴봐야 한다. 주 방위군은 훌륭한 일을 했다"며 다른 주들도 너무 늦기 전에 주 방위군을 투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 현재 5000명의 주 방위군이 15개 주 및 수도인 워싱턴DC에 투입된 상태로, 2000명의 주 방위군이 추가로 대기 중이라고 주 방위군 측이 성명에서 밝혔다고 미 언론들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이날 트윗을 통해 "변변치 않은 주류 언론은 증오와 무정부주의를 조장하기 위해 그들의 권한 범위 내에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고 거듭 언론 탓을 한 뒤 "모든 이가 그들이 하고 있는 것, 즉 그들은 가짜 뉴스이며 역겨운 어젠다를 가진 진짜로 나쁜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한 우리는 그들을 누르고 위대함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첫 민간 유인 우주선 발사를 축하하기 위한 연설에서도 현재 벌어지는 일이 "정의와 평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플로이드에 대한 추모가 "폭도와 약탈자, 무정부주의자에 의해 먹칠을 당하고 있다"고 폭력 시위를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무고한 이들에게 테러를 가하는 안티파와 급진 좌파 집단이 폭력과 공공기물 파손을 주도하고 있다"며 "정의는 성난 폭도의 손에 의해 결코 달성되지 않고, 나는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장관은 성명을 내고 "많은 장소에서 폭력이 안티파 같은 전략을 사용하는 무정부주의 집단과 좌파 극단주의 집단에 의해 계획되고 조직되고 추진되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이들의 다수는 폭력을 부추기기 위해 그 주(미네소타주)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라며 이들에 대한 엄벌을 경고한 바 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날 CNN방송과 ABC방송 인터뷰에서 안티파를 포함한 "폭력적인 폭도들"과 거리로 나갈 권리를 가진 "평화로운 시위자들"을 구분해야 한다며 "이것은 안티파에 의해 추동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가 마찬가지로 '안티파 과격분자 책임론'에 가세한 것이다.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나는 극우 그룹에 관한 보도는 보지 못했다. 이것은 안티파에 의해 추동되고 있다. 그들(안티파)은 시애틀, 포틀랜드, 버클리에서 그렇게 했다"며 "이는 파괴적인 급진주의자 세력"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진상을 규명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이로 인해 격노한 상태이며 우리 모두 그렇다. 이는 멈춰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경찰 내 인종주의 논란과 관련, "나는 조직적인 인종주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나는 법 집행 관리들의 99.9%는 훌륭한 미국 국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많은 이들은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계라고 덧붙였다.

이어 "나는 그들이 놀랍도록 훌륭한 미국 국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영웅들"이라며 "그러나 일부 암적인 존재들이 있다. 일부 인종주의적 나쁜 경찰들이 있다. 그리고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한 경찰들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러한 나쁜 경찰들은 뿌리 뽑아야 한다면서 일부 암적인 존재들이 법 집행에 오명을 씌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지 플로이드를 죽인 비열한 경찰과 같은 집행관들은 경찰 시스템에서 근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면택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