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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에이즈는 세상을 어떻게 바꿔놓았나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악의 팬데믹은 넘겼지만 파장은 여전 … 코로나19에 교훈"

등록 : 2020-07-01 11:41:02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 따르면 1990년대 초 남아프리카 보츠와나의 보건부장관이었던 맛쉬디소 모에티는 하루 일과가 끝날 때마다 특정 노트를 늘 책상서랍에 넣고 열쇠로 잠갔다. 이 노트에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양성 반응을 보인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는 이코노미스트에 "'후천선면역결핍증'(AIDS)을 일으키는 HIV에 감염됐다는 건 당시 끔찍한 낙인이었기에, 반드시 숨겨야 하는 비밀이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얼마 안돼 한 권의 노트로는 충분치 않았다. 1990년대 말 보츠와나 15~49세 국민의 1/4 이상이 에이즈에 걸렸다. 전 세계 최고의 감염률이었다. 1986~2001년 이 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은 61세에서 50세로 10년 이상 짧아졌다. 1966년 독립을 쟁취한 때보다 더 낮은 기대수명이었다.

이코노미스트는 "당시의 에이즈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현재 코로나19에 대한 해법을 찾는 수많은 의사들에게 귀중한 체험이었다"고 전했다. 모에티 전 장관은 현재 세계보건기구(WHO) 아프리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보좌하는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은 미주 지역 에이즈 팬데믹 당시 직업적 소명을 발견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을 보좌하는 전염병학자 살림 압둘 카림은 "우리의 모든 코로나19 대처는 에이즈 팬데믹 당시에 기반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반세기 최악의 팬데믹이 두 번 발생했다. 에이즈와 코로나19다. 에이즈는 일반적으로 성접촉을 통해 확산된다. 병으로 발전하는 데 수년이 걸리기도 하고 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치명률이 매우 높다. 카메룬에서는 에이즈를 '서서히 퍼지는 독'으로 일컫는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그보다는 덜 치명적이다. 하지만 훨씬 빨리 확산된다.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에이즈 바이러스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지속적인 참조사례다. 모에티 국장은 최근 코로나19 확진 숫자들 보면서 90년대 초 자신이 작성한 노트를 떠올렸다.

이코노미스트는 "에이즈 바이러스를 이해하는 것은 다른 이유로도 중요하다"며 "팬데믹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깨우쳐 준다"고 지적했다.

일평생 지속하는 치료로 에이즈는 이제 만성질환으로 바뀌었다. 신규 감염은 지난 25년 동안 감소했다. 하지만 2018년 신규 확진자는 170만명으로 여전히 많다. 전 세계적으로 3200만명이 에이즈로 사망했다. 생체의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에이즈 치료제나 백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따라서 인간의 행동과 규범이 바뀌어야 했다. 수천만명이 여전히 에이즈 바이러스의 간접 영향권에 놓여 있다. 특히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가 취약 지역이다. 최악의 팬데믹은 끝났을지 모르지만, 그 여파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에이즈 바이러스의 역사는 약 1세기 전 시작됐다. 과학자들은 그 바이러스가 1920년대 또는 그 이전, 중앙아프리카에서 침팬지로부터 사람으로 종간 이동을 했을 것으로 추산한다. 수십년 동안 느리게 확산하다가 1970년대 들어 전 세계로 빠르게 퍼졌다.

1981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동성애자들 사이에 폐렴과 피부암, 카포시 육종(암의 일종),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발생하는 기회 감염성 질병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곧 이어 아이티 이주민과 혈우병 환자, 헤로인 중독자는 물론 감염된 여성의 자녀들 사이에서도 그같은 질병이 보고됐다. 동성애자 관련 면역결핍 질병은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으로 전환됐다. 전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질병의 진단이 이어졌다. 1983년 HIV가 에이즈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에이즈 팬데믹의 초기 수년 동안 혼란과 공포가 지배했다. 일단 에이즈 증상이 발현하면, 보통 12개월 내 사망했다. 1980년대 말, 수많은 선진국에서 에이즈는 젊은이들의 사망 원인 1위였다. HIV 양성반응을 보인 동성애 언론인 앤드루 설리번은 "다른 이들이 아파하고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상태가 괜찮았지만 '다음엔 내 차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역병에서 살아남는 법'(How to Survive a Plague) 저자 데이비드 프랑스는 책에서 "피부에 흐릿한 자국만 생겨도 의사를 찾아 헤맸다"고 썼다.

에이즈에 걸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성간 성접촉으로 감염됐다. 하지만 선진국의 경우 에이즈 감염자 다수는 동성애자였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보좌관이었던 팻 부캐넌은 "가난한 동성애자들은 자연적 질서에 전쟁을 선포했다. 이제 자연이 그들을 상대로 끔찍한 보복을 감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성애자에 대한 앙심은 히스테리와 결합했다. 뉴욕시에선 단 한 명의 장의사가 에이즈 사망자의 시신을 처리해야 했다.

미국 레이건 행정부는 에이즈 대처에 태만했다. 연방정부는 에이즈를 막고 대처하고 연구하는 노력에 별 다른 관심을 쏟지 않았다. 레이건 대통령은 1985년까지 공식석상에서 에이즈를 언급하지 않았다. 영국 마거릿 대처 총리도 '안전한 섹스' 캠페인에 결벽증이 있었다. 결국 보좌관 노먼 파울러가 나서야 했다. 그는 1986년 '무지로 죽지 말자'는 에이즈 예방 캠페인을 벌였다.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

결국 에이즈 대처의 물결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한 사람들은 에이즈 환자 본인들이었다. '안전한 섹스' 캠페인을 벌여 콘돔의 사용을 대중화했다. 에이즈 관련 활동가들은 치료약을 승인하고 임상시험을 촉진하도록 미국식품의약국(FDA)을 압박했다. 당시에도 파우치 박사가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이었다. 그는 활동가들의 타깃이었다가 동지로 변했다. 지난 5월 27일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에이즈 행동주의' 창립자인 래리 크레이머는 처음에는 파우치 박사를 '무능력한 바보'로 여겼다가 나중에는 '진실하고 위대한 공직사회의 유일한 영웅'이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1996년 항레트로바이러스 요법(ART)이 에이즈 환자의 상태를 급격히 호전시킬 수 있다는 첫 번째 증거가 나왔다. ART로 에이즈 사망자가 급격히 줄었다. 환자들은 '나사로 효과'라고 표현했다. 성서에서 죽었다 살아난 이가 나사로다. 부유한 선진국에선 ART가 전환점이 됐다. 미국 에이즈 팬데믹은 당시를 기점으로 급격히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프리카에 산다. 에이즈 바이러스가 이성간 성접촉을 통해 엄청나게 확산하는 곳이다. 1996년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대륙에서 에이즈가 사망 원인 1위였다. 짐바브웨 국민의 기대수명은 2003년 43세까지 하락했다.

아프리카의 극심한 에이즈 팬데믹에 대한 단일한 설명은 없다. 생물학적 이유들이 제시되곤 했다. 아프리카에 만연한 결핵이 증폭자 역할을 한다는 설명부터, 기타 성 전염병 비율이 높다는 설명, 아프리카인 게놈이 에이즈에 취약하다는 설명, 아프리카에서 일반 바이러스 아류형이 많다는 설명 등이다. 반면 영국 케임브리지대 존 아일리프 교수는 논리적으로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2006년 발간 저서 '아프리카 에이즈 전염병'에서 "아프리카에서 맞는 첫 번째 전염병이기 때문에 최악의 전염병이 됐다"고 서술했다.

다양한 이론들이 전개됐고 각각의 이론은 일부의 진실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빈곤은 중요한 요인이다. ART 요법은 환자 1인당 연간 최소 1만달러가 들었다. 부유한 엘리트들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가난함만으로 이미 에이즈가 고도로 만연한 이유를 설명할 순 없었다. 1990년 기준 우간다 수도 캄팔라와 잠비아 수도 루사카에 거주하는 성인 1/5 이상이 에이즈 양성 반응을 보였다. 중앙아프리카와 남아시아,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을 포함한 전 세계 다른 빈곤지역에선 에이즈 감염 정도가 덜하다. 보츠와나와 남아공은 아프리카대륙에서 손꼽히는 부자국가다. 그럼에도 두 나라의 에이즈 확산은 매우 심각했다.

상거래와 이주의 패턴도 중요하다. 아프리카에서 상품은 장거리 저속 트럭으로 운반된다. 각종 연구에 따르면 트럭 운전사들과 정류소 부근 매춘부 사이에 에이즈 감염률이 높다. 특히 남아프리카에서 에이즈 확산을 촉진한 또 다른 요소는 제국주의 시대 시작된 이주노동 시스템으로,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광부들은 가족과 떨어져 수개월 동안 외지에서 지낸다. 종종 그들은 독신 기숙사에서 거주한다. 주변엔 광부들의 안정적 임금에 끌린 매춘부들이 가득하다. 광산촌에 대한 연구를 보면, 이곳의 에이즈 감염율이 매우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한때 엄청난 편견이 유행했다. 아프리카인의 '난잡한 성생활'이 에이즈의 원인이라는 것. 하지만 다양한 국가를 상대로 한 연구를 보면 보편적으로 아프리카 남성들이 다른 대륙의 남성들보다 더 많은 섹스 파트너를 갖고 있다는 증거는 없었다.

핵심은 디테일에 있다. 워싱턴대 마티나 모리스 교수는 일부 아프리카 국가에서 상대적으로 일부다처제가 보편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감염의 위험을 높인다. 우간다는 에이즈 감염률을 성공적으로 낮춘 나라다. '비방목 사육'이라는 캠페인을 벌인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즉 남자들에게 '혼외정사 빈도를 줄여야 에이즈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로 설득했고 이것이 적중했다.

성적 불평등을 이해하지 않고 아프리카의 에이즈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콩고 수도 킨샤사로 이주한 시골 여성들을 조사한 결과 나이 들고 부유한 남성들과의 성매매 과정에서 에이즈에 걸린 경우가 많았다. 현재까지 아프리카 전역에서, 젊은 여성의 에이즈 감염률은 젊은 남성보다 훨씬 높다. 일부 사례를 보면 여성들은 상대 남성들에게 콘돔 사용을 주장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또 다른 확산 요인은 아프리카 국가 지도자들의 대응이었다. 우간다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과 같은 일부 지도자들은 에이즈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관심을 촉구했다. 반면 다른 지도자들은 에이즈를 서구의 음모로 치부하거나 아프리카엔 동성애자가 없기 때문에 에이즈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최악은 1999년 넬슨 만델라를 승계한 남아공 타보 음베키 대통령이었다. 그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HIV가 에이즈의 원인이 아니라'는 의견을 접하고 이를 신봉하게 됐다. 그는 가난한 남아공 국민이 국가가 돈을 대는 ART 요법 치료를 받는 것을 막았다. 대신 대체의약품을 개발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 대체재는 결국 산업용 용액으로 판명났다. 활동가들이 나서 합리적인 HIV 정책을 도입할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34만명이 허망하게 사망한 이후였다.

종교도 주요한 역할을 했다. 때론 좋은 쪽이었지만 그보다는 나쁜 쪽이 더 많았다. 여론조사업체 '아프로바로미터' 자료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종교 지도자들은 다른 부문 지도자들보다 존경을 받는다. 아프리카의 많은 이들은 에이즈를, 죄를 지은 형벌로 봤다. 일부 교회에선 콘돔 사용을 거부해야 한다고 설교했고, 에이즈 사망자를 매장하는 걸 반대했다. 토속종교 역시 도움이 안됐다. 말라위에서 수십만명의 에이즈 환자들이 한 주술사에 모여들었다. 그 주술사는 조상의 영혼들이 자신에게 '나무껍질을 사용해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을 깨끗게 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동성애자에 대한 비난, 에이즈에 걸렸다는 오명, 과학적 사실을 무조건 반대하는 분위기 등이 합쳐져 에이즈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와 토론을 막았다. 콩고에서 에이즈는 'SIDA'로 불렸다. '연인을 방해하는 상상 속의 질병'이란 뜻의 프랑스어 두음문자다. 우간다 인기 가수 필리 루타야와 같은 이름 난 아프리카인들은 자신의 에이즈 양성반응을 솔직하게 밝혔지만, 나이지리아 음악가 펠라 쿠티와 같은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HIV 진단이 가족에게 부정적 의미를 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만연했다. 일부 토속 종교에서는 조기 사망을 조상과의 연계가 끊어지는 것으로 간주한다. 가족 중 첫 번째로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게 되면 가족 내에 질병을 끌어들였다는 비난을 받기 일쑤였다. 여성들이 에이즈 검사를 더 많이 받았고, 또 에이즈 바이러스를 태아에게 전염시킬 가능성이 있었기에, 사회적으로 낙인 찍힐 가능성이 매우 컸다.

1990년대 에이즈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널리 퍼졌음에도, 아프리카에서는 HIV에 걸린 소수의 사람들만 검진을 받았다. 적절한 치료법이 없는데, 검진을 받는 게 무슨 의미냐는 생각이 강했다. HIV는 수많은 이슈 중 하나였다. 아프로바로미터 자료에 따르면 보츠와나를 제외하고 아프리카 국가의 선거에서 에이즈가 주요 이슈로 등장한 적이 없었다.

그 결과 에이즈는 노동자들을 쇠약하게 만들었다. 1997~2002년 케냐 찻잎 농장에 대한 연구를 보면 에이즈에 걸린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보다 하루 4~9킬로그램의 찻잎을 덜 땄다. 남아공 경제학자 앨런 화이트사이드는 광산촌이나 시멘트공장, 섬유공장 등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에이즈에 걸린 농부들은 경작 규모가 적었다. 연구자들은 농업에 대한 누적 효과를 보면서 에이즈가 2000년대 초 아프리카 기근을 악화시킨 원인이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됐다.

죽음은 더 심한 고통을 몰고 온다. 장례식을 치르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 콩고 수도 킨샤사에서의 연구에 따르면 장례식 비용은 거의 1년 소득에 맞먹는다. 그것도 돈을 벌던 사람이 죽은 상황에서 치러야 하는 비용이다. 2008년 탄자니아 가족에 대한 한 연구를 보면, 에이즈로 사망한 어른을 둔 가족의 5년 동안 소비는 평균 가족보다 19% 낮았다. 또 2012년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부모 모두 사망하거나 한 명의 부모가 사망해 고아가 된 아이들은 5600만명으로 추산됐다. 그중 1500만명의 고아는 부모의 사망 원인이 에이즈였다. 고아들은 평균적으로 뒤늦게 취학하고 일찍 퇴학한다. 이는 이중의 부정적 효과를 낸다. 우선 교육을 덜 받는다. 그리고 여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는 시간이 길수록, 성접촉에 노출되는 시기가 미뤄진다. 그래서 에이즈에 걸릴 가능성이 줄어든다.

에이즈는 정치적 효과도 있다. 가장 명확한 건 에이즈는 정치인들도 저세상에 보낸다는 사실이다. 1984~2003년 20년 동안 잠비아에서 모두 59번의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있었다. 대개가 에이즈로 인한 사망 때문이었다. 그 이전 20년 동안엔 보궐선거가 14번에 불과했다. 남아공에서 에이즈 팬데믹의 시기는 특히 잔인했다. 만델라는 1994년 남아공 대통령이 됐다.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했다. 하지만 그같은 축제의 절정의 순간, 에이즈가 남아공 전 사회를 강타했다. 만델라 본인은 훗날 대통령으로서 에이즈를 우선순위에 놓지 못한 것을 사과했다. 그는 재임 시절 에이즈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에이즈는 일부에서 두려워한 국가와 경제의 붕괴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다. 첫 번째는 에이즈 예방 노력이 많은 사람들이 당시 기대했던 것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예를 들어 우간다에서 에이즈 감염 절정은 1980년대 중반이었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지나갔다. 많은 나라에서 여성들이 이끄는 풀뿌리 조직들이 에이즈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콘돔 사용과 남성의 포경수술이 늘어난 것도 중요했다. 감염 리스크가 60%나 줄어들었다.

두 번째 이유는 치료법이 상당히 저렴해져 보다 많은 에이즈 환자들이 이용할 수 있게 됐다. ART 요법 비용은 1년 최소 1만달러에서 2000년대 초 100달러 이하로 줄었다. 제약사들이 가난한 국가들도 이용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대중의 강력한 압박에 손을 들면서다.

새로운 감염과 사망률이 하락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에이즈에 걸리고 죽는다. 유엔은 2030년까지 공공보건의 위협인 에이즈를 근절하자고 촉구하며 '95-95-95 전략'을 내세웠다. 전 세계적으로 에이즈에 감염된 95%의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그런 사람 중 95%가 ART 요법을 치료받고, 그중 95%가 HIV를 효과적으로 억제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추세라면 그같은 목표는 달성이 어렵다"며 "특히 코로나19로 사람들이 HIV 치료를 덜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기쁨의 시대, 슬픔의 시대

에이즈 팬데믹은 앞으로도 치명적 존재감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에이즈의 부담은 한계에 몰린 소외된 사람들에게 더 크게 다가온다. 왜 국가적 붕괴로 이어지지 않는지 세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에이즈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쓴 경제학자 마커스 해커는 "개별 가정과 국가가 받는 경제적 충격 사이에 거대한 불일치가 있다"고 지적한다. 아프리카 여성들은 에이즈 팬데믹으로 인한 파장 대부분을 온몸으로 받아안고 있다. 인류학자인 재닛 실리는 "우간다와 남아공의 할머니들은 고아와 아픈 사람들 돌봐야 한다는 사회와 대중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엄청난 죄책감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와 최소 수년 동안 동거해야 한다는 생각은 현재 시점에서 일반적이지 않다. 하지만 에이즈 사례는 과학적 돌파구가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오랜 기간 걸릴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HIV 백신은 수십년 동안 '수년내 개발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곤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궁극적인 교훈이 있다면, 인간의 행동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안전한 섹스에서 주사바늘 교체와 헌혈에 대한 검사 등이다. 팬데믹을 막을 수 있게 더 많이 주의해야 하는 지침들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런 변화가 느리다 해도 약물요법으로 에이즈를 억제했고 각 나라들은 어떻게든 그에 적응했다"며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과 씨름하는 현재, 에이즈는 '팬데믹은 줄어들 수 있지만, 완전히 종식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알려준다"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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