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오랜만에 간 전자제품 매장 한쪽에 쭉 늘어서 있는 벽걸이TV는 100만원부터 1000만원이 넘는 것까지 천차만별이었다. 크기가 10배까지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닌데 어쨌든 매장에서 가장 큰 TV는 1000만원이 넘었다.

주택시장에서 재개발·재건축을 통해 공급되는 신축 아파트는 TV로 치면 1000만원 짜리와 비견되는 고가의 신상품이다. 강남구 대치동 청실아파트는 2015년 래미안대치팰리스(1608세대)로, 서초구 신반포1차한신아파트는 2016년 아크로리버파크(1612세대)로 재건축되었다. ‘신상’인 이 아파트들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다.

고가 신축 아파트가 시장에 대량 공급되면, 지역의 주택가격은 평균값, 중위값 모두 올라간다. 가까운 미래에 재건축이 될 오래된 아파트의 가격도 덩달아 뛴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동일한 가격으로 한꺼번에 수백, 수천채의 아파트를 공급하기 때문에 주택가격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

비주택가구, 2010년 13만에서 2015년 39만으로

박근혜정부는 40년이었던 재건축 연한을 30년으로 줄이고,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실질적으로 폐지하고,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유예함으로써 개발의 속도를 높였다. 문재인정부에서도 큰 변화는 없었다. 재건축 연한은 여전히 30년이고, 유예에 유예를 거듭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는 올해 7월에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일부 투기과열지구에서 시행될 예정인 분양가상한제의 적용 범위는 전국적으로 의무 시행되었던 참여정부 때에 비해 크게 축소되었다. 전국 곳곳에서 고분양가가 책정될 우려가 크다.

2019년 12월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판결을 받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는 그나마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올해 7월 초까지 진행될 법령 정비 후 본격적으로 부담금이 징수되는데, 국가로 귀속되는 초과이익환수금은 지자체에 배분되어 주거복지 향상에 사용될 예정이다.

전자제품 매장이 1000만원이 넘는 TV로 가득차도 큰 문제는 없다. ‘뭐가 이렇게 비싸?’하고 지나치면 그만이다. 소비자는 소득에 맞는 TV를 사고 싶을 때 살 선택권이 있다. 하지만 재개발·재건축으로 저가주택이 전면적으로 철거되고, 10억원, 20억원이 넘는 신축 아파트들로 빠르게 대체되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개발의 속도가 빨라진 2015년 이후 시장에 고가 신축 아파트가 쏟아지면서, 강남을 중심으로 서울의 주택 가격은 폭등을 거듭하고 있다.

시장은 필요한 만큼 저가 TV를 생산할 수는 있지만 저렴한 주택을 필요한 만큼 생산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에게 소득에 맞추어 집을 살 수 있는 선택권은 주어지지 않는다. 소득으로는 높은 집값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과도하게 빚을 내서 집을 사야 한다. 집값에 따라 전월세 가격도 상승하기 때문에 세입자의 삶도 팍팍해진다. 집값이 터무니없이 비싸져도 ‘뭐가 이렇게 비싸?’ 하면서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우리 사회에 부족한 집은 소득으로 감당하기 힘든 고가 신축 아파트가 아니다. 집값을 감당할 수 없어, 고시원처럼 집도 아닌 집에 사는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오피스텔을 제외한 주택 이외의 거처가 전국적으로 2010년 13만 가구에서 2015년 39만 가구로 급증했다.

부재지주의 투기수단으로 전락한 재개발·재건축

폭등을 거듭하고 있는 주택가격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없다. 하지만 재개발·재건축에 대한 규제강화가 문제 해결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재개발·재건축 구역에서 구역 안에 거주하지 않는 조합원 비율이 70%가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부는 거주민의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사업의 본질적인 목적은 온데간데 없이 부재지주 조합원들의 투기수단이 된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속도 조절과 분양가 규제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재건축 연한을 40년으로 원상회복시키고,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전국적으로 의무 시행해야 한다. 정부의 분명한 신호만큼 좋은 약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