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대미담화 의미 … 한미연합훈련 중단 등 1단계 거쳐야 2단계서 핵협상

연내에 3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부정하면서도 비핵화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는 내용을 담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10일 담화는 미국의 대선 국면과 그 이후까지를 고려한 북한의 장단기 정세대응책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힌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김정은-트럼프 신뢰와 그에 기반한 북미대화의 틀은 유지하되, 미국이 '선 적대정책 철회'에 나서는 근본적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는 한 판을 깨는 전략도발도 없겠지만 대화 재개도 없다는 것이다.
김일성 26주기 추모하는 북한 주민들 | 북한 주민들이 8일 김일성 주석 사망 26주기를 맞아 전국 각지의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찾아 헌화하고 경의를 표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 제1부부장은 "조미 사이의 심격한 대립과 풀지 못할 의견차이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미국의 결정적인 입장 변화가 없는 한 올해 중 그리고 나아가 앞으로도 조미(북미)수뇌회담이 불필요하며 최소한 우리에게는 무익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미국이 대화의 문이나 열어놓고 우리를 눅잦히면서(누그러뜨리면서) 안전한 시간을 벌기를 원하는 것"이란 인식도 드러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우여곡절 끝에 열린 스톡홀름 북미실무협상이 결렬된 뒤 비핵화-제재완화의 동시병행 방식 대신 미국이 '선 적대시정책 철회'를 실행하기 전에는 북미협상 자체에 응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당시 북한은 중장거리 핵·미사일 시험을 중단할 것임을 밝히고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와 미군유해 발굴 송환 등 선의의 조치를 취했으나 미국은 아무런 상응조치 없이 협상을 정치적 도구로만 이용한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북한은 비핵화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협상 이전에 대화 재개 자체의 전제조건으로 적대정책 철회를 내세웠다.

김 제1부부장은 이날 담화에서도 이같은 입장을 재확인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6월30일 트럼프-김정은 판문점회동과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북조선경제의 밝은 전망과 경제적 지원을 설교하며 전제조건으로 추가적인 비핵화조치를 요구"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이에 대해 "급속한 경제번영의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 제도의 안전에 대한 담보도 없는 제재해제 따위와 결코 맞바꾸지 않을 것이고, 미국 주도의 제재봉쇄를 뚫고 우리 힘으로 살아나갈 것임을 분명히 천명했다"고 공개했다.

김 제1부부장은 "이후 우리는 제재해제 문제를 미국과의 협상의제에서 완전 줴던져버렸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주장한 것이 북미협상의 기본 틀을 '비핵화조치 대 제재해제'가 아닌 '적대시철회 대 북미협상재개'로 바꿔야 한다는 요구다. 적대시철회는 북한이 미국에 대해 보여 온 근본입장으로, 체제안전보장 및 군사위협 해소를 뜻한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중지, 미국 전략무기의 한반도 반입 중단이 대표적 사안이고 넒게는 북한의 '발전권'과 '생존권'을 제한하는 제반 조치들의 철폐를 의미한다. 김 제1부부장은 담화에서 현재 미국이 취하고 있는 적대시정책의 살례로 △대조선제재와 관련한 대통령 행정명령의 1년 추가 연장 △인권실태 비난 등 인권문제 제기 △인신매매국 및 테러지원국 재지정 등도 지목했다.

김 제1부부장은 대화·협상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이같은 적대시철회를 요구하면서도 "결코 비핵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자면 우리의 행동과 병행하여 타방의 많은 변화 즉 불가역적인 중대조치들이 동시에 취해져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고 밝혔다. 적대시철회와 대화재개의 1단계가 성사되어야 그 이후 비핵화를 주제로 2단계 협상이 가능하며, 2단계 비핵화협상에서는 '완전한 비핵화'와 그 상응조치로서 '평화체제 보장' 및 '북미관계 정상화'가 동시병행적으로,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이행돼야 한다는 뜻이다.

김 제1부부장은 또 "우리는 미국에 위협을 가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이에 대해서는 위원장 동지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분명한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면서 "그저 우리를 다치지만 말고 건드리지 않으면 모든 것이 편하게 흘러갈 것"이라고 해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북미정상회담 등 대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고, 동시에 대화 재개를 압박하기 위한 군사행동 등도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미국의 대북제재는 자력갱생과 장기전으로 버틸 수 있으니 트럼프든 조 바이든이든 미국 차기 정부가 새 판을 짤 의사가 분명해지면 대화 재개를 가져올 선제조치에 나서라는 뜻이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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