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풀빛/1만6000원

'김영란의 헌법이야기'는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를 먼저 소환했다.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선고한 나라'인 그리스의 2400여년 전 모습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스파르타에게 패한 아테네에 스파르타의 입김을 받는 30인 참주정권이 들어섰고 이들은 공포정치를 했으며 그 후유증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제물이 됐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러고는 첫 질문이 나온다. '좀 낯선 이론인데요'. 이렇게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법관인 김영란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 따온 민주시민을 위한 공연을 시작했다.

헌법은 시대와 연결돼 있다. 그 안에는 고스란히 시대정신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로빈후드의 모험' '레 미제라블' '주홍글자'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 '1987' 등 문학작품과 예술작품을 내세워 시대상과 함께 당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의식 흐름을 짚어냈다.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 헌법이 제시됐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전제군주제의 치명적 결함은 20세기초 왕의 권력을 헌법으로 제한하고 공화정을 세우려는 움직임의 발아였다. 영국의 존 왕과 맞붙은 귀족들은 왕이 아닌 법의 지배를 요구하며 대헌장에 서명하도록 강제했다. 인권선언을 만든 프랑스 혁명은 제3신분을 중심으로 한 다수의 민중에게서 나왔고 루이 16세는 구세대와의 이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 없는 곳에 과표 없다'는 선언과 함께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 영국 프랑스 미국의 대중들은 구체제를 고수하려는 세력과 맞섰고 "왕이 불합리한 권력을 휘둘러 신하를 탄압하면 신하는 얼마든지 이에 저항할 권리가 있다"고 외쳤다.

김 교수는 가장 젊고 현대적인 헌법이라는 찬사를 들었지만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못한 민주주의라는 평가를 받는 독일 바이마르 헌법 사례를 구태여 끼워 넣었다. '새로운 흐름'을 절대선으로 보는 시각을 경계한 조치다. 젊음과 새로움에 앞서 '경의' '정의' '숙고'의 필요성을 웅변했다.

우리나라 헌법이야기를 맨 뒤로 둔 것은 '반면교사'를 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에 의해 수혈된 하향식 민주주의가 1987년 민주화 운동이후 절차적 민주주의 확립으로 이어지면서 비로소 '변화의 준비'를 마쳤다.

6.19 선언 이후 4개월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개헌안 작성, 국회 본회의 통과, 공포까지 진행한 현재의 헌법은 심도 있고 깊은 논의가 생략된 채 발효됐다. 부실한 개정과 시대의 변화는 헌법 11호를 요구하고 있다. 저자는 현재 헌법의 부실함을 인정하는 것부터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고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한 앎'이라고 한 공자와 '너 자신을 알라'고 한 소크라테스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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