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교통사고 후 달아난 혐의로 벌금 500만원

검사, '양형부당' 항소 … 2심, 징역 6월에 집유 2년

대법원, 파기환송 … "이유 구체적으로 기재 안돼"

검사가 '양형부당' 이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하지 않고 항소했는데도 2심이 형량을 높이는 것은 안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또 나왔다. 검사가 구체적인 양형부당의 이유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항소심이 양형에 대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은수미 성남시장 재판 때와 같이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입장 밝히는 은수미 성남시장│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가 대법원의 원심 파기환송으로 시장직을 유지하게 된 은수미 성남시장이 지난 7월 9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청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이날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은 시장의 상고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성남=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1·2심, 유무죄 판단 동일 … 형량 차이 =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 도로교통법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지난해 5월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 도로에서 2차로에 멈춰 있던 B씨의 차를 들이받아 운전자와 동승자에 2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입히고, 별다른 조치없이 도주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A씨가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타르타르산염 등을 복용하고 운전을 해 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봤다.

1심은 "A씨가 안전운전 주의 의무를 게을리한 탓에 차량을 충격해 피해자들에게 상해를 입게 하고도 그대로 차량을 운전해 현장에서 이탈했다"면서도 "상해의 정도가 비교적 경미하고 따라온 피해자의 항의를 받고 사고에 대한 조치를 취했다"며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약물을 복용하고 운전한 혐의에 대해서는 1심은 "A씨는 우울증 등으로 진료를 받아왔고 졸피뎀 등이 함유된 약을 처방받았다"라며 "교통사고 발생 전날(오후 9시쯤) 약을 복용했을 뿐 발생일에는 약을 먹은 바 없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 약물의 영향에 의해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 판단했다.

2심은 A씨가 약물로 인해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운전했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이를 무죄로 판결한 1심이 옳다고 봤다.

그런데 2심은 A씨의 형량이 지나치게 가볍다는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2심은 "A씨가 사고를 일으켜 운전자와 동승자에 상해를 입혔는데 현장을 벗어난 점,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한 점,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1심의 형이 너무 가볍다"며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유없이 무거운 형 선고 안돼 = 하지만 대법원은 검사가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하면서 구체적인 이유를 기재하지 않았으므로, 1심을 파기하고 그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항소이유서에는 '약물의 영향에 의해 운전하지 못할 상태에 있었으므로 1심은 사실을 오인해 그르친 위법이 있다. 그 죄질에 비해 1심 선고형은 과경하다'고 기재돼 있을 뿐"이라며 "이는 무죄 부분이 유죄로 인정될 것을 전제로 한 양형부당 주장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형사소송법(제361조의5 제15호)과 형사소송규칙(제155조)에 따르면 항소이유서에 항소이유를 구체적으로 간결하게 명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검사가 항소장이나 항소이유서에 단순히 '양형부당'이라는 문구만 기재하였을 뿐 그 구체적인 이유를 기재하지 않았다면 이는 적법한 항소이유의 기재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검사가 항소하는 경우 양형부당의 사유는 직권조사사유나 직권심판사항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따라서 이 경우 항소심이 1심 판결의 유죄 부분 형이 너무 가볍다는 이유로 이를 파기하고 그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양형이 부당한지 여부를 심리·판단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은수미 성남시장 상고심과 동일 = 한편 대법원은 지난 7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은수미 성남시장의 상고심에서도 "검사가 양형부당 이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하지 않아, 2심이 벌금액을 증액한 것은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에 반한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은수미 시장은 △정치자금법에서 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불법 정치자금인 '차량' 자체를 제공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제45조 1항 위반)와 △법인 코마트레이드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제45조 2항 5호 위반)로 기소됐다.

1심에서 무죄가 난 혐의(법인으로부터 정치자금 수수)가 유죄라는 전제아래 검사가 벌금 90만원(시장직 유지)에 대한 양형부당을 주장했는데, 무죄는 그대로인데 유죄(차량 제공 받은 혐의) 혐의에 대한 다른 이유 없이 2심이 형량(벌금 300만원·당선무효형)만 높이는 것은 안된다는 취지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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