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설계회사에 47억 배상

가집행시 기업 죽이기

항소심 결과후 결론내야

한국전력기술이 아프리카 가나 발전플랜트사업에서 본 손실을 하도급사가 떠안으면서 중소 설계기업이 파산 위기에 몰렸다.

16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대구지법 김천지원 민사합의1부는 한국전력기술이 가나 타코라디발전소 건설과정에서 손해를 본 476억원의 10%인 47억6000만원을 하도급업체 H사가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한국전력기술은 배상금 가집행을 검토 중이다.

H사는 과도한 배상책임이라며 항소할 뜻을 밝혔다. 특히 한국전력기술이 배상액을 가집행할 경우 파산위기에 처한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H사는 한전기술로부터 구조물 설계 16억원, 해상시공기술지원 28억원 등 모두 44억원을 수주했지만 가집행당할 경우 수주액보다 많은 47억원을 확정 판결 전에 먼저 물어줘야 한다.

이 때문에 H사는 법원의 최종 판결을 받을 때까지 집행을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2심에서 H사가 승소할 경우 한국전력기술은 가집행한 금액은 물론 이로 인한 손해까지 다시 물어줘야 한다.

한국전력기술 관계자는 "법원 판결로 가집행 권한이 생겼기 때문에 집행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면서도 "상대회사의 경영상태 등을 봐 가면서 어떤 방식으로 집행할 지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건설 분쟁에서 1심 판결을 가집행하는 것을 놓고 의견이 갈리고 있다. 민사소송이 항소심에서 완전히 뒤집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하더라도 손해배상 비율이 상당부분 바뀔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가집행한 후 그에 따른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통상 채무를 진 회사가 가집행으로 인해 경영상 어려움이 예상된다면 항소심까지 기다려보는 것이 순서다. 하지만 한국전력기술 입장에서 보면 법원 판결로 가집행 권한이 생겼는데 이를 집행하지 않을 경우 경영진의 배임 문제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한국전력기술의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건설 전담 재판부의 한 부장판사는 "배상청구 소송에서 가집행이 부당하거나 1심판결이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경우 강제집행정지 신청을 할 수 있는데, 가집행을 할 경우 H사로서는 집행정지 신청 방법 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한국전력기술은 2011년 가나 발전플랜트 공사를 수주했지만 1000억원대 손실을 봤다며 지난해 5월 하도급업체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양측은 타코라디발전소 확장 해상공사 중 일어난 사고에 대해 책임 범위를 놓고 공방을 벌여왔다. 한전기술은 "당시 종합적인 감리기능을 한 H사도 사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해 배상을 청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H사는 "해양공사 경험이 전무한 한전기술이 건설사와 설계변경을 합의해놓고 손해는 사고와 직접 관련없는 하도급사에게까지 전가한 전형적인 공기업 갑질이자 중소기업 죽이기"라고 반발했다.

가나 타코라디 T2 발전소 확장공사는 2011년 타코라디인터내셔널컴퍼니(TICO)가 발주하고 한전기술이 수주한 사업이다. 해양공사 경험이 전무한 한전기술은 자격조건을 갖추기 위해 일본 미쓰이와 9대 1 지분으로 합작해 입찰에 참가했다. 당시 이명박정부의 해외개발사업 추진에 몰려 무리하게 진출한 사업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종합시공은 800억원에 포스코엔지니어링(현 포스코건설)이 맡았다.

2014년 6월 해양공사 중 바다에 매립한 취배수 파이프가 물 위로 떠오르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어 12월에도 같은 해양사고가 났다. 바다에 매립한 취배수관 위로 모래 자갈 등을 덮는 되메움공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6개 파이프 중 4개가 물 위로 부상한 것이다.

이 사고로 약 820억원의 복구 비용 등 1000억원대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한전기술은 이 손실에 대해 우선 포스코엔지니어링을 상대로 배상하라며 대한상사중재원에 조정신청을 내기도 했다. 2016년 12월 최종 중재결과 포스코엔지니어링은 복구비용으로 350여억원을 지급했다. 한전기술은 2017년 자체감사를 벌여 직원 12명을 징계했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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