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 아시아국가가 이달 초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맺었다. 경제통합을 위한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가운데 RCEP에 일찌감치 불참을 선언한 인도에서 외교관과 학계 인사를 중심으로 논쟁이 치열하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4일 전했다. 인도가 RCEP에 참여하지 않고도 아시아의 성장 스토리를 따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SCMP에 따르면 인도 전 총리 만모한 싱의 보좌관인 산자야 바루는 최근 현지언론 '더 힌두'와의 인터뷰에서 "인도는 올라타고 싶어하면서도 거듭 아시아 버스를 놓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상황을 1990년대와 비교했다. 당시 인도는 21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또 다른 경제협력기구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가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APEC에 가입하지 않기로 한 결정은 인도의 경제개혁 속도를 둔화시켰다. 게다가 APEC 회원국 상당수는 '인도가 자국산업을 지나치게 보호한다'며 경계하게 됐다. APEC이 새로운 회원국을 받아들이기 위해 설정한 유예 조항이 2010년 해제됨에 따라 인도는 가입의사를 전달했다. 하지만 APEC 회원국들은 인도 가입여부 투표에서 만장일치를 내놓지 않았다.

RCEP은 전 세계 인구의 1/3인 22억6000만명, 전 세계 GDP의 1/3인 26조2000억달러를 포괄한다. 13억명 인구에 2조7000억달러 GDP의 인도가 포함됐다면 RCEP은 더 거대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인도는 회원 자격 조건을 놓고 7년 동안 협상을 벌이다 결국 지난해 11월 결국 출범 논의에서 빠졌다. 인도는 자국의 핵심 우려사항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인도는 더 엄격한 원산지규정을 원했다. 값싼 중국상품이 자국시장에 물밀듯 쏟아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였다. 또 농업분야를 보호하기 위해 더 많은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원했다. 인도는 '중국이 더 많은 양보를 하지 않는다'며, '다른 나라들이 비관세장벽을 세우려 한다'며 불만을 드러내다 협상장을 박차고 나갔다.

인도 전 외교관이자 현재 뉴델리 소재 싱크탱크 '개발도상국 정보연구원' 원장인 모한 쿠마르는 "인도가 중국으로부터 얻어내려 한 양보안은 사실상 세이프가드였다"고 말했다. 인도는 중국산 상품이 자국시장을 점령하게 될 경우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

일본이 중재에 나섰지만 결국 실패했다. 중국이 인도의 조건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쿠마르 원장은 "우리는 그 문제가 결국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고 말했다.

협상의 결렬을 낳은 또 다른 요소는 중국에 대한 인도의 불신이다. 히말라야 국경에서 중-인도 양국이 수개월째 대치하면서 불신은 커져갔다. 찬 바람이 부는 겨울이 오고 있지만 양국 간 감정의 골은 메워질 기미가 없다.

양국은 1962년부터 지도에 기록되지 않은 3488킬로미터 국경을 놓고 갈등을 빚었지만 현재처럼 최악으로 발전하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인도는 자국 생산과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하고 있다. 또 중국 상품 수입과 중국 자본의 투자를 제한하고 있다. 인도가 RCEP에 참여했더라도 규정에 저촉될 수 있는 조치들이다.

인도의 전 상공부 장관인 아난드 샤르마는 "RCEP에 참여하지 않은 건 엄청난 뒷걸음질"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다른 나라들이 인도를 믿음직한 교역국으로 간주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다. 그는 2012년 인도의 RCEP 참여 논의를 주도했다.

자와할랄네루대학교의 경제연구계획과 교수인 비스와지트 다르는 "인도는 중국과 연계된 경제와 정치 사이에 방화벽을 구축할 수도 있었다"고 아쉬워하면서도 "RCEP 불참 결정은 불가피했다. 인도의 주요 제조업과 농업, 낙농업 종사자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RCEP 가입 반대를 주장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RCEP 참여가 이젠 어려울 수 있다. 국경분쟁 이후 인도 대중들이 완전히 반중정서로 돌아섰다. 하지만 RCEP는 인도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시도할 만한 옵션"이라고 말했다.

인도 정치권은 RCEP 불참 결정을 정당화하려고 노력중이다. 외무장관인 수부라마냠 자이샨카르는 지난주 인도경영대학원이 주최한 '데칸 다이얼로그' 행사에서 중국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해외의 불법 보조금 지급 상품이 인도의 시장을 점령했다"며 "과거 무역협정의 효과는 인도의 일부 공업분야를 쇠퇴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도는 자립적인 경제를 추구하지만, 그것이 전 세계와 등을 지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우리가 결정해야 할 것은 인도가 1등급 산업강국이 되느냐 여부"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직 재무장관인 팔라니아판 치담바람은 트위터에 "자이샨카르 장관은 1970년대 상황에 갇혀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1960년대부터 1990년까지 인도가 경제개방에 주저하면서 연평균 GDP 성장률 3.5%를 기록하는 데 그친 반면 싱가포르와 홍콩 대만 한국 등 무역을 개방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연평균 7% 성장률을 구가했다고 지적했다. 인도는 1991년 경제자유화 조치를 시작했고 이후부터 연평균 8% 성장률을 기록했다. 다른 나라와 체결한 자유무역협정이 위력을 발휘한 덕분이었다.

뉴델리 소재 SAU대 법학교수인 프라브하쉬 란잔은 "인도는 다른 주요 경제국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여전히 폐쇄적"이라고 말했다.

란잔 교수에 따르면 인도가 적용하는 최혜국 수입관세는 13.8%다. 주요 경제국 중 가장 높다. 인도는 또한 UN무역개발회의가 산정하는 무역개방성 지수에서도 '매우 제한적' 범주에 속한 나라다. 덧붙여 1995~2019년 인도가 국내산업 보호를 이유로 반덤핑 조치를 내린 사례는 972건으로, 전 세계 가장 많았다.

그는 SCMP에 "RCEP 가입을 거부하면서 인도는 이제 지역경제권, 세계경제권의 주변부에 머무르게 됐다"며 "인도가 중국에 맞서 글로벌 공급망의 허브가 되겠다는 다짐은 심각한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RCEP 15개국에 수출하는 공급망에 포함되려는 제조업체들은 특혜관세를 누릴 수 있는 나라에 공장을 설립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 정보연구원 쿠마르 원장은 낙관적이다. 인도의 내수시장이 거대하기 때문에 RCEP 불참의 파급력을 상당히 줄여줄 것이라 보고 있다. 그는 "인도는 유럽연합과 미국, 중동 지역의 거대 수출시장을 갖고 있으며, 인도의 목표는 개별국가와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상황에서, 회복탄력성과 신뢰가 가치사슬보다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RCEP 회원국들은 향후 인도가 가입을 원할 경우 이를 위한 옵션을 열어둔 건 의미가 크다. 하지만 인도가 아시아 주요국이 참여하는 다자무역협정에 개방적인 입장으로 돌아설지는 미지수다.

인도 전 외무장관 시암 사란은 '더 힌두'와의 인터뷰에서 "다자협접을 계속 거부하면 인도는 추위가 몰아치는 한데에 있게 될 것"이라며 "다른 나라들이 우리의 조건대로 따를 것이라는 추측들이 많다. 하지만 이는 상당히 낙관적인 생각"이라고 경고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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