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소파 방정환 선생이 세계 최초로 아동인권선언을 선포했고, 1989년 아동의 생존·발달·보호·참여에 관한 기본권리를 명시한 유엔 아동권리협약이 채택됐다. 이는 아동이 독립된 주체로서 행복하고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전세계가 노력한 역사적인 흐름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지난해 10월 서울 양천구에서 일어난 두살 어린 생명 학대 사망사건(정인이 사건)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아동학대 사각지대가 존재함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학대 의심 행위자 변명이 우선시 돼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인식의 전환, 즉시분리 조치, 공적 개입의 적극화와 제재강화 등을 주장한다. 2013년 칠곡과 울산의 아동학대 사망사건 이래 2014년 아동복지법이 개정되고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도입되면서 보호조치 친권정지와 같은 법적 장치들이 강화되었다.

그러나 법은 범죄를 따라가기 급급하고, 훈육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학대는 그 끝이 요원하다. 근본적인 대책은 없는 것일까?

수차례 신고가 있었지만 정확한 판정의 어려움 때문에 학대 아동이 중상해 또는 사망에 이르는 사건은 이미 상당수 존재한다. 이는 학대 의심 행위자(대부분의 경우 법적인 보호자)의 적극적 항변이 아동피해 우려보다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아동은 성인에 비해 감정적 신체적 상태를 명확히 표현할 수 없기에 학대 입증은 겉으로 관찰되는 상흔이나 골절 등 외적인 증거를 통한 역추적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실제 아이의 온몸을 폭행한 의심을 받는 피고인이 ‘멍’이 아니라 ‘때’라고 주장하며 때를 미는 영상을 제출한 경우도 있었다. 어른들의 이런 황당한 주먹구구식 변명이 현장에서 객관적 입증이라는 진흙탕 속에 발목잡혀 있는 동안 아이를 구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져간다.

정인이 사건에서 양부모가 증거로 제출한 동영상에는 ‘네다리로 걸어오라’며 소리지르는 부모를 향해 골절된 다리를 끌고 부들부들 떨며 다가오는 피해 아동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고 한다. 급히 삭제한 800여개의 동영상에는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학대 상황들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이와 유사한 학대사건에서, 가해자 부모는 겁에 질린 아이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훌쩍이며 골절된 다리를 질질 끌며 걸어오는 영상을 학대에 대한 반박자료로 제출했다. 이러한 영상을 보면 가해자 부모는 학대 여부에 대한 인지조차 없다. 이런 부모를 파렴치하다고 규탄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국가의 적극적인 조사와 개입의 범위를 넓히는 것만이 아동학대를 막을 수 있다.

잊혀질 만하면 새로운 아동학대 사건이 터지고, 그 진상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피해자는 물론이고 전국민의 마음 속에 생채기가 남는다. 양형기준과 처벌법령의 강화, 아동을 돌보는 사회적인 시스템의 개선이 큰 과제로 대두되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나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에 비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더 나아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은 분명히 존재한다.

어른의 관심만이 아이 구할 수 있어

사람이 만든 시스템의 허점을 메워나갈 수 있는 것은 사람의 관심이다.

오늘의 피해자는 내일의 가해자가 된다고 한다. 물론 내일을 맞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른의 시선, 그리고 아이들의 시선에서 끊임없이 주변을 살펴야 하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