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소위 21대국회 들어 겨우 두 번 열어

국민동의청원은 단 한 차례 논의도 안돼

운영위 "헌법에선 청원심사 의무 규정"

전자입법창원인 국민동의청원은 '30일내 10만 명 동의'라는 높은 진입문턱을 넘더라도 '국회의원 심사'라는 더 높은 장벽을 돌파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심사를 통해 옥석을 가리지 않고 아예 심사 자체를 외면하고 있는 게 문제다.

2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30일내 100명 동의'를 받아 공개된 국민동의청원 중 '30일내 10만 명 동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게 184건이었다.

문체위 체육관광법안심사소위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체육관광법안심사소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이중 40.8%인 75건은 기준치(10만 명)의 1%인 1000명의 동의도 채우지 못했다. 1%를 넘겼지만 5%(5000명)를 충족하지 못한 국민동의청원은 57건인 31.0%였다. 5%이상~10%미만의 동의를 얻은 것은 21건으로 11.4%였다. 1만 명 미만의 동의를 얻은 게 전체의 83.2%에 달하는 셈이다. 10~49%의 동의를 얻은 국민동의청원은 전체의 14.7%인 27건이었다.

5만 명을 넘어섰지만 10만 명의 동의를 얻지 못해 상임위에 올라가지 못한 국민동의청원은 단 4건(2.3%)에 지나지 않았다.

◆미성립 청원 83%, 1000명 동의도 못 얻어 = 높은 진입장벽을 넘어선 후에는 더 높은 진입장벽을 기다리고 있다. 상임위 심사 한 번 받기 어렵다.

21대 국회 들어 37개의 국민동의청원이 12개 상임위에 배정됐지만 청원소위를 연 것은 단 두 차례뿐이었다. 교육위 청원소위와 환노위 청원소위가 지난해 11월 4일과 올해 2월 24일에 열렸다. 청원소위 위원장은 각각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과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하지만 모두 국민동의청원이 아닌 의원 소개 청원이었다. 교육위 청원소위에서는 한병도 의원과 이낙연 의원이 각각 소개한 '대학 강제폐교 정책의 수정 및 후속처리에 관한 청원'과 '인문사회 분야의 안정적인 연구교육 기반 조성에 관한 청원'에 대해 심사했고 환노위에서는 유상범 의원이 소개한 '보전가치가 낮은 농경지에 대한 국립공원 지정 해제 요구에 관한 청원'을 상정했다.

계류돼 있는 8개 국민동의청원은 단 한 차례의 논의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3개의 국민동의청원이 계류돼 있는 복지위는 '태아 생명을 보호하는 낙태법 개정안 요청'과 '낙태죄 전면 폐지와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에 관한 청원'을 "국회청원심사규칙 제8조 제3항에 따라 제1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법안소위에서는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지역의사제 관련 법안 제·개정 반대 및 한의대 정원을 이용한 의사 확충 재고에 관한 청원'은 "관련 법률의 제개정 및 제도 변경 등과 연관돼서 보다 심도 있는 심사가 필요하다"며 "청원의 심사기간을 관례에 따라서 (21대 국회 임기종료시점인) 2024년 5월 29일까지로 연장"했다.

◆임기말까지 심사기간 연장하기도 = 행안위는 지난해 11월 5일에 회부된 '공무원·교원 정치기본권 보장 관련 법률 개정에 관한 청원'을 올해 2월 18일에야 상정했을 뿐 별도의 논의를 하지 않았다. '4.16세월호참사 관련 박근혜 전 대통령 기록물 공개 결의에 관한 청원' 역시 지난해 11월 17일에 회부됐지만 올 2월 17일에 상정한 후 논의 없이 계류시켰다. 두 법안 모두 청원소위로 넘어가지도 않았다.

교육위는 지난해 11월 15일에 10만 명 동의를 얻어 회부된 '교육공무직원과 방과후학교·돌봄교실의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한 교육관련법 개정에 관한 청원'을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환노위는 지난해 9월 21일에 회부된 '모든 노동자에 대해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도록 하고 노조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및 노동조합법 개정에 관한 청원'을 두 달 후인 11월 21일에야 상정해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로 회부했지만 법안소위는 5개월이 지났는데도 상정절차마저 이뤄지지 않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에 관한 청원과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에 관한 청원은 각각 지난해 7월 8일과 9월 22일에 법사위에 회부됐지만 지금껏 법사위 논의 테이블에도 오르지 못했다.

국회 상임위는 원칙적으로 청원 회부일로부터 90일 이내에 심사를 완료해 심사결과를 의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다만 특별한 경우 중간보고 후 60일 안에서 심사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장기간 심사가 필요한 경우엔 위원회 심사기간을 추가 연장할 수 있다. 심사 제한 시점이 사실상 없는 셈이다.

국회 운영위 전문위원실은 법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헌법 제26조는 모든 국민은 국가기관에 청원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청원에 대하여 심사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해 국민의 청원권을 보장하고 있다"며 "하지만 국회의 청원 접수 처리 현황을 살펴보면 접수된 청원의 70% 이상이 장기간 미처리 상태로 있다가 국회의원 임기만료에 따라 폐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위기의 '국민동의청원'" 연재기사]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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