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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경제시평]

재정건전화법률 제정의 필요성

등록 : 2021-09-14 11:18:41

이준원 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2022년 정부의 예산안 제출과 20대 대선을 앞두고 재정건전성 문제가 큰 이슈다. 내년 정부 예산안은 604조4000억원으로 2017년 400조7000억원에 비해 204조원 증가한 수준이다. 이에 따라 국가채무는 5년간 660조원에서 1068조원으로 늘어나고, GDP 중 채무 비율도 36%에서 50%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구나 대선 후보자들의 공약도 복지 포퓰리즘과 국가 만능주의 내용이 대부분으로 재정건전성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5년 전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2016년 4월 재정전략회의에서 '재정건전화법'을 제정키로 발표한 후 부총리가 위원장인 재정전략협의회에서 협의했다. 당시 차관으로서 이 협의회에 수차례 참석한 바 있다. 2016년 10월 말 정부가 제출한 재정건전화법안의 주요 내용은 국가채무를 GDP의 45% 이하로 관리하고, 재정지출 법안을 낼 때 재원확보 방안을 반드시 첨부(Pay-Go)토록 했다. 2017년 시행을 목표로 수차례 논의했으나 정국 혼란 속에 중단되고 말았다. 정권이 바뀐 후 재정건전화법 제정은 사실상 폐기되었다.

채무 증가속도는 세계 최고, 잠재적 채무도 많아

법안을 제출했던 기획재정부는 재정준칙의 근거라도 마련하기 위해 2020년 말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제출했으나 이마저도 방치되고 있다. 이번 정부가 제시한 재정준칙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25년부터 60%로 과거보다 15%p나 높은 수준인데도 반발에 부딪힌 것이다.

정치권은 재정준칙이 국가채무의 증가를 효과적으로 제어하지도 못하면서 재정의 적극적 역할만 제약할 우려가 있다고 반대한다. 그러면서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이 50% 수준을 돌파하더라도 OECD 평균 110% 수준보다는 양호하다는 이유를 든다. 야당일 때 유사한 재정건전화 법안을 발의하고도 지금은 코로나를 이유로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심지어 관련 법을 설계한 국가연구기관조차 정부의 눈치를 보며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만 강조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미래세대를 위해 재정건전화법률 제정은 시급한 과제다.

한국의 국가채무가 상대적으로 양호하다고 하나 증가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잠재적 채무도 많다.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과 고령화를 경험한 선진국과 단순 비교할 수 없다. 한국의 2020년 출산율은 0.84명으로 세계 최저이고, 65세 이상 고령화율은 15.7%로 OECD 중 29위이나 그 속도는 1위다. 또한 국가채무에 포함되지 않으나 급증하는 공공기관 부채(2020년 545조원)도 결국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국가채무 한도를 법으로 설정해 재정건전성을 제고한 사례도 있다. 독일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가채무가 급증하자 연방정부의 신규채무를 GDP의 0.35% 이내로 통제하고, 주 정부 적자는 GDP의 0%로 제한하는 '재정수지준칙'을 2009년 헌법을 개정해 도입했다. 그 결과 독일의 국가채무비율이 2012년 GDP의 88.9%에서 2019년 68.2%로 하락했고, 2026년 57% 수준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미래세대 위해서도 법적 장치 마련해야

사실 재정지출을 제도적으로 통제하지 않고는 복지 포퓰리즘의 쓰나미를 누구도 막을 수 없게 됐다. 과거 관료들이 나라 곳간을 지키는 역할을 했으나 이제 전설일 뿐이다. 유권자들은 현금성 복지를 나눠주는 후보를 더 지지한다. 사법부도 선거 전 재난지원금 지급은 금권선거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결국 폭증하는 재정지출을 제어하기 위한 수단은 법적인 장치밖에 없다는 얘기다.

재정건전화법률은 집권자에게 마이너스 통장을 주되 한도를 설정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나라 곳간을 열어 퍼주는 데만 혈안이 되고, 채우는 노력을 외면한다면 그리스와 같은 국가부도 사태는 시간문제다. 여야가 진정 나라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당리당략을 떠나 재정건전화법률의 입법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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