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회와 전면전 불가피 '협치 종결'

지지층 결집 통해 대선판에 힘 보태기

명분·근거 없으면 적폐청산 '역풍'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 바로세우기 선언으로 진영 간 전면전을 예고했다.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권력 재편을 위한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 시장은 13일 "시민 혈세로 유지되는 서울시 곳간이 시민단체 전용 ATM(현금인출기)로 전락했다"며 "잘못된 행정을 바로잡기 위한 서울시 바로세우기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서울시가 지난 10년간 민간보조금, 민간위탁금 명목으로 시민사회와 시민단체에 1조원 가까운 금액을 지원했다"며 관련 사업 전반에 대한 대수술을 예고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서울시자원봉사센터에서 열린 '서울시장-서울동행 봉사자 매칭데이'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 시장의 이날 발표는 그간 태양광사업, 사회주택사업 등 서울시 차원의 과거사업 감사가 박원순 지우기로 비판받는데 대한 반박 성격이 강하다. 그는 "시민 혈세를 주머니 쌈짓돈처럼 생각하고 시민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사익을 쫓는 행태를 청산할 것"이라며 "이것이 왜 박원순 전 시장 흔적 지우기로 매도돼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 시장은 바로세우기라고 강조했지만 사실상 상대 진영을 향한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박 전 시장 재임 10년 사업과 해당 기간 이뤄진 보조금 지급, 민간위탁사업을 헤집는 과정에서 시의회는 물론 친여권 성향 시민단체들 반발은 뻔하다. 시의회 일각에서 "이날 오 시장 발표는 그간 위태롭게라도 유지되던 시의회와 협치에 종결을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오 시장이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권력 재편에 시동을 걸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시 바로세우기 대상 사업은 서울 전역에 걸쳐있다. 시의원은 물론 구의원 등 서울 전체 권력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오 시장은 10년전 민주당 의석이 전체의 70%에 달하는 시의회와 갈등 끝에 시장직을 던졌다. 현재 서울시의회는 당시보다 민주당 의석수가 훨씬 많은(110석 중 99석) 상황이다. 내년에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의회 권력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오 시장은 또다시 손발이 묶이게 된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연구소장은 "야당이 시의회 의석수를 최소 절반까지 끌어올리지 못하면 오 시장이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식물시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며 "오 시장이 안정적 서울시 운영을 위한 의회 권력 개편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고 말했다.

대선 국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구상도 읽힌다. 서울시 바로세우기는 그간 협치, 중도 강화 등에 기울었던 오 시장 노선의 '우클릭'을 의미한다. 재건축, 재개발 등 당초 기대했던 성과가 나지 않는 상황에서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는 것이란 해석이다. 야당 최대 단체장으로 대선 정국에 힘을 보태고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속내가 담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풍 우려도 있다. 오세훈판 '적폐청산'의 명분과 근거가 뚜렷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상철 서울시민재정네트워크 연구위원은 "민간위탁과 민간단체 지원은 전혀 다른 맥락"이라며 "서울시 민간위탁은 대부분 시설운영과 관련된 것이고 이에 대해서는 민간위탁 평가제도를 통해 검증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또 "시민단체 출신이 위탁업체 선정이나 계약까지 좌우했다는 것은 행정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것"이라며 "공공계약은 계약부서 검증을 거치고 민간위탁 역시 심의위원회와 시의회 동의를 거치도록 돼있어 비밀리에 밀실에서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고 말했다.

내로남불 비판도 나온다. 오 시장은 과거 문재인정부의 과거청산에 대해 "적폐청산을 빌미로 사정 정국으로 가다보면 공무원도 움츠러들고 사회 전반이 활기를 잃게 되는 법"이라며 "적폐를 빙자해 정치보복을 계속하는 것에 분노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것을 막고 생활정치를 보듬는 그런 당을 만들고 싶다는 게 저의 생각"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배 소장은 "오 시장 말대로 바로세우기가 성공하려면 객관성과 중립성 확보가 필수"라며 "정치적 접근이란 의심이 뻔한 상황에서 무분별한 과거 뒤집기는 또다른 적폐청산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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