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택 플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 전무이사

신입생 A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온라인 쇼핑몰 검색을 한다. 수강용 노트패드로 새로 출시된 S사와 L사 신제품을 비교하고 최저가 제품을 선택해 클릭했다. 사용자 리뷰도 좋고 배송도 빨라 나름 만족한 거래였다고 생각한다. MZ세대의 흔한 모습이다. 만일 가격도 모른 채 먼저 택배로 보내고 한달 뒤에 가격을 알 수 있는 쇼핑몰이었다면 A가 클릭을 했을까?

최첨단 산업답지 않은 유통과정

4차산업혁명과 코로나로 인한 전자상거래의 혁신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격도 모른 채 먼저 납품받고 한달 뒤 가격이 정해지는 제품이 있다. 플라스틱 포장용 필름을 생산하는 업체 B는 대기업 C로부터 원료를 공급받아 지난달과 같은 가격으로 대기업 D에 제품을 납품했다. 월말에 계산서를 받아보니 원료가격이 10만원이나 올랐다. 첨단 석유화학산업의 산물로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합성수지가 바로 그렇다. 합성수지는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같은 열가소성 수지로 플라스틱제품의 원료다.

국내 플라스틱산업은 1964년 울산에 정유공장이 들어선 것을 시초로 1972년 울산석유화학단지가 완공되면서 본격적인 성장의 길로 들어섰다. 1978년 여수석유화학공업단지 조성, 1991년 대산석유화학단지 조성 등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 규모는 에틸렌 생산 1000만톤 이상으로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 나가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생산하는 최첨단 소재라는 화려한 수식어와는 어울리지 않게 그 유통과정은 전혀 첨단스럽지 않을 뿐만 아니라 2만여 중소기업들에게 기울어진 운동장, 생존을 위해 피를 말리는 오징어게임과 같다는 데 있다.

국내 합성수지 거래는 통상 대기업과 중소기업, 또는 대기업 대리점과 중소기업 거래관계로 구분된다. 중소기업은 부동산 보증보험증권으로 담보를 설정하고 담보범위 내에서 원료를 공급받아 제품으로 가공해 주로 대기업에 납품하는데, 공급받는 시점에는 가격을 알 수 없고 월말 세금계산서를 받아봐야 안다.

문제는 공급가격이 전월보다 크게 오르는 경우다. 중소기업은 가격 결정 전에 이미 납품을 했고 납품받은 대기업도 인상해 줄 생각이 없다. 원료가격 인상분만큼 중소기업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24만명 종사하는 중소기업 입장 고려를

플라스틱 중소기업과 납품거래를 하는 대기업들은 대부분 전년도 평균 합성수지가격에 가공비 정도를 얹어 납품가격을 정한다. 물론 계약서에 합성수지가격이 15% 이상 인상되면 납품단가를 조정한다는 문구가 들어가 있지만 중소기업 대부분에게는 사문화된 조항이다.

납품단가 조정을 얘기하는 순간 견적서는 제3의 업체에게 돌아간다. 가동률로 먹고사는 대다수 중소기업에 원료가격 인상보다 더 무서운 것이 납품거래 단절이다. 정부와 사업자단체가 10여년 이상 납품단가연동제 납품단가조정제를 외쳐도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재인정부는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를 표방해왔다. 플라스틱산업은 99%가 중소기업이고 24만명이 종사하는 대표적인 노동집약형 중소기업 산업이다. 정부도 이제는 기울어진 운동장, 오징어게임을 중단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