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엔 수많은 공공기관이 있다.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공무원 조직으로 운용하기 적절치 못한 역할을 위임해 설립한 기관이다. 대부분의 공공기관장은 집권자(대통령, 광역·기초지방자치단체장)의 뜻에 따라 임면(任免)된다. 시쳇말로 '낙하산 인사', 유식한 말로 엽관제(獵官制: spoils system). 거개 공공기관의 경영 실적이 부실하고 부정부패,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수장 역시 MB의 낙하산 인사에 의해 임명됐다. 박대원. MB의 고향인 경북 포항 출신이자 MB 대선캠프 외교 특보를 지냈다.

같은 낙하산이라도 박 이사장은 유(類)가 좀 다르다. 우선 전문인이다. 외무고시 출신인 그는, DJ·노무현 정권 시절 세계박람회유치위원회 국장, 주(駐) 알제리 대사, 서울시 국제관계자문대사 등 한직(閒職)을 맴돌았다.

박 이사장 취임 후 KOICA는 동력을 받기 시작한다. 그는 KOICA 협력요원의 명칭부터 바꿨다. WFK(World Friends Korea).

그리곤 스스로 지구촌을 앞마당으로 삼아 종횡무진했다. 페루 마추피추 기슭에 우리가 세워준 도자기 공장을 방문하는가 하면(요즘 마추피추를 관광하는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제품이 도자제품이다), 외교관 시절 자신의 주 활동무대였던 아프리카에선 상주하다시피,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권역은 거의내 집 드나들 듯 했다.

지난 몇년 동안 진행된 주요사업만 보자. 중남미 유일의 6·25전쟁 참전국인 콜롬비아에 1150만달러를 들여 '한콜롬비아 우호재활센터'를 세웠다. 이 센터에선 6·25참전 상이용사와 콜롬비아 내전으로 다친 이들을 치료한다.

지구촌 앞마당으로 삼아 종횡무진

역시 참전국인 필리핀엔 2009~2012년 1300만달러를 들여 초현대식 도정공장을 세웠다.

3모작이 가능한 천혜의 기후조건을 가졌으면서도 정미방식의 원시성 때문에 식량 부족에 허덕이는 필리핀 4개 주에 미곡종합처리장(RPC)을 세우고 있다. 이미 완공된 오로라 주에서 도정되는 쌀은 'KOICA 쌀'로 명명돼 시판되는 바, 수도 마닐라 대형마트에서 최고 인기 품목이다.

미국이 '대테러전쟁'으로 폐허를 만든 아프가니스탄 바그람에 공업학교를 세워 절망에 빠진 아프간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하고 있는 것도 포연 자욱한 현지에서 미담으로 회자되고 있다. 최근 이 학교에서 자동차 건축 용접 전기 컴퓨터를 공부한 학생 85명 전원이 전공별 이론과 실습 등 총 720시간의 훈련을 받고 미국 우량기업 플로어에 취업했다.

2007~2009년, 2010~2012년 등 2차로 나눠 실시되고 있는 라오스 교과서 발간사업은 KOICA 활동의 백미(白眉)다. 총 400만달러가 들어간 이 사업은 중학교 국어 교과서, 고교 전과목 교과서를 찍어 전국에 배포하는 사업이다. 지금 라오스에선 중·고교생 전원이 표지에 태극기가 그려진 교과서로 배우고 있다.

KOICA는 올해, 사업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겠다고 한다.

우선 국내외 개발협력 파트너십 강화를 위해선 정부부처 간 파트너십을 최대한 활용하고, 미국 해외개발원조처(USAID), 일본 원조기관(JICA), 독일 원조기관(GIZ) 등 선진 원조기관과의 파트너십 강화도 심화시킬 예정이다. 국제재난 지원, 기후변화 대응, 분쟁 및 취약국가 지원을 통한 국제사회 평화구축 동참, 산학협력단 파트너십 사업 등 민관 협력사업을 통한 공적개발원조(ODA) 확대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실탄이 부족하다. KOICA의 올해 예산은 4853억원. 작년(4898억원)에 비해 45억원 줄어든 규모다. 국민 혈세로 쓰는 정부 및 공공기관의 예산은 타이트하게 운용해야 한다. 하지만 줄일 게 있고 늘일 게 있다.

'따뜻한 코리아' 나눔운동의 교두보

아니, 반드시 늘여야 하는 예산이 있다. 지구촌 나눔운동의 교두보인 KOICA 예산이다. KOICA는 자체 사업만 하는 게 아니다. 비정부기구(NGO)와의 협력도 활발하다.

실정(失政)의 연속인 MB 정권. 하지만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한이 있더라도 KOICA 예산을 2배로 늘이는 거다. 1년 예산 1조원 정도면 아쉬운 대로 지구촌 나눔운동의 추동력을 얻을 수 있다.

예산이 없다고? 22조원을 쏟아부은 '4대강 죽이기 사업', 아니 앞으로도 28조원이 더 들어갈 재앙의 사업에서 푼돈에 불과한 1조원만 빼다 줘도, 우리는 '아름답고 따뜻한 코리아'가 될 수 있다.

윤재석 언론인 프레시안 이사

윤재석 프레시안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