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전 칼럼니스트

일본이 한국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최근 주목을 끄는 것은 "일본은 20년 후 경제규모에서 한국에 추월당한다"는 보도다. 일본의 석학 노구치 유키오 교수의 칼럼이다. 그는 "1990년대 후반 경제위기 대응에서 한국에 뒤진 것이 발단"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은 대학교육의 내실을 기하고 영어교육을 혁신해 경쟁력을 높인 것이 주효했다고 보았다. 반면에 일본인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다양한 통계와 지표를 근거로 한국이 이미 일본을 앞질렀다고 주장한다. 일본이라는 거울에 비친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먼저 평균임금을 꼽았다. 2020년 기준으로 일본이 3만8515달러, 한국은 4만1960달러로 일본을 제쳤다(OECD). 다음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국가경쟁력 순위도 한국 23위, 일본 31위다. 유엔의 전자정부 순위에서도 한국은 2위, 일본은 14위다. 기업 경쟁력을 상징하는 주식 시가총액도 마찬가지다. 세계 100대 기업 중 한국은 삼성전자가 14위다. 일본 최대 기업 도요타는 36위다. 시가총액 규모도 삼성전자가 2배 이상 많다. 국제화 평가 기준의 하나인 영어 능력은 한국이 아시아 11위다. 일본은 27위로 하위권이다. 이 추세라면 20년 후 한국의 GDP는 8만894달러, 일본은 4만1143달러에 그친다는 것이다.

일본의 가장 큰 실책은 1990년대 디지털화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IT혁명의 도화선이 된 인터넷 보급과 일본 경제의 성장률이 꺾인 시점이 같다. 한국은 1990년대 후반 김대중정부에서 전국을 초고속 광케이블 통신망으로 연결했다. 20년 후인 2019년 5G(5세대) 이동통신을 상용화했다.

일본은 아직도 열차 탑승객의 승차권을 일일이 검표한다. 회사원은 문서에 도장을 찍기 위해 출근한다. 디지털화의 지연은 생산성을 추락시켰다. 여기에 고령화 저출산까지 겹쳐 취업인구 비율까지 떨어졌다.

정치 실패가 일본경제 침체로 이어져

또 하나는 국제환경의 변화다. 사회주의 국가의 개혁개방과 산업화다. 일본 경제에 큰 타격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급속한 산업화다. 중국이 제조업 강국 일본의 지위를 대체했다. 한국은 '북방외교'와 '세계화'로 대응했다. 미국은 산업구조를 금융 등 고도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개편했다. 일본 제조업은 중국에 밀리고 고기술 분야는 한국에 추월당하는 처지다. '기술의 일본'에 자만해 도취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니혼게이자이 일본경제연구센터의 일본 경제 침체 분석도 일치한다.

필자는 일본 경제의 침체 이유로 정치의 실패를 꼽는다. 그 대표 사례가 '아베노믹스'다. 엔저(低) 정책을 기본으로 한 금융완화, 돈풀기에 집중했다. 엔화가치 하락으로 수출 경쟁력을 유지했다. 일본 기업의 이익은 늘었지만 노동자들의 임금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국민 1인당 GDP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기업들이 기술개발은 소홀히 하고 정치와 유착해 안주했다. 일본의 파벌정치는 계파 간의 담합으로 권력 독점체제를 유지하는 구조다. 관료사회도 예속되었다. '줄서기'(縱的) 의사결정 풍조가 만연한다. 정치의 상명하복, 종적 의사결정이 경제 실패의 한 원인이 된 셈이다.

최근 일본에서 '한국은 변했다, 일본은 어쩔 것인가'라는 책이 주목을 끌고있다.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못 따라잡는 18가지 이유'로 화제를 모았던 모모세 다다시가 썼다. 그는 한국의 반일감정이 줄고 일본에 관심을 갖는 젊은이들이 늘고있다고 했다. 이 분위기를 잘살려 경제적으로 한일이 협력해 국제분업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식의 대전환이다. '일본은 한국에 추월당할 것인가'의 저자 히라타 신이치로도 "지금은 양국이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협력해 아시아 전체의 번영을 추구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일본 지식인들이 공공연하게 한국과의 협력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과거와는 다른 변화다.

기술력 초격차만이 유일한 생존전략

한국과 일본, 오랜 경쟁관계다. 한국의 중장년층은 일본에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반대로 일본의 그 세대는 과거 식민지였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법하다. 물론 양국 MZ세대의 인식은 전혀 다르다. 공통적인 변화는 한국이 일본을 앞질렀으며, 앞으로 더 많은 분야에서 일본을 추월할 것이라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물론 그 배경은 일본인에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목적이 크다.

한국경제, 그들 예측대로 일본을 추월하고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관건은 국제관계와 경쟁력이다. 미중 경쟁이 진영간의 대립으로 진행되고 있다. 수출주도형 한국 경제에 대외불안정은 큰 부담이다. IT, 디지털 정보기술을 기반으로 더 고도화해야 한다. 기술력의 초격차만이 유일한 생존전략이다. 일본이 예측한 한국의 추월은 20년 후다. 그 절반 10년도 우리에게는 너무 길다.

1997년 "한국이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렸다"는 외환위기의 수모를 잊지 말자. 동시에 일본의 창에 비친 '한국과 함께'가 진심이라면 미래로 눈을 돌리는 것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김명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