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선 가톨릭대 보건대학원 교수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에서 꽃다운 젊은 청년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전국민이 산업재해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개선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고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의 청년 노동자 김용균씨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부는 심각한 산재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부개정해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겠다고 했다.

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을 일명 '김용균법'이라 불렀다. 그러나 막상 김용균씨가 사망한 발전소 업무는 도급금지 업종에 포함되지 않아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 됐고, 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고가 발생하면서 강력한 규제정책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져 중대재해처벌법이 탄생하게 됐다.

법 제정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예방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경영계와 노동계에서 모두 불만족스러운 목소리를 내지만 법이 제정된 후 1년이 지나 시행을 눈앞에 둔 지금 여러가지 변화의 모습이 보인다.

사업주들은 처벌을 면하기 위해 고액을 투자해 대형로펌에 법률자문을 받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법률자문보다 예방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사업장 내에서 안전보건체계를 구축하고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하며, 이를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등의 꾸준한 노력을 진행하는 것이다. 물론 사업장에 안전보건 전문가를 채용하는 등의 바람직한 변화도 보인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업주들은 산재 예방에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가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사업주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75%가 넘었다.

또 산재 예방을 위해 필요한 것은 사업주의 적극적인 투자와 지속적인 노력이라고 지적해 사업주의 사회적 책임을 강력히 요구했다. 특히 최근에 발생한 광주 HDC현대산업개발 아파트 붕괴사고는 사업주 책임의 필요성을 더욱 강하게 제기했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정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사업주가 직접 산재에 관심을 갖고 직원들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안전보건 예방 조치를 철저히 시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업주가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처벌을 피하는 길이다.

사업장 안전보건 인프라 확보해야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업주 책임뿐 아니라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국민들 70%가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정부는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 아래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평택항 사망' '여수 특성화고 실습생 사망' '한전 하청노동자 감전사망' 등 안타까운 희생이 끊임없이 발생해 부정적인 평가가 우세하게 나타났다.

그동안 정부가 시행한 산재예방정책은 패트롤과 같은 일회적이고 가시적인 순회점검 수준이었다. 사업장에서 안전보건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동력을 확보하는 데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더불어 정부도 안전보건체계 구축 등 사업장 내 안전보건을 위한 인프라 확보에 초점을 두고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번 기회에 근본적인 정책 개선을 통해 산업재해 예방의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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