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겨냥, 공급망 정비·기술유출 방지 … 인도·태평양지역 경제질서 재구축 시도

일, 국내 경제안보법 올해 정비

중국에 의존 재계는 '안절부절'

# 미국과 일본 정상은 21일 화상으로 정상회담을 갖고 외교와 안보, 국방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동맹을 강화하고, 경제협력에 속도를 내기 위한 '경제 2+2 장관급회담'을 정례화하기로 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두 정상은 경제안정보장에 대한 긴밀한 연계를 확인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지역 관여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 일본정부는 14일 현재 개회중인 정기국회에 제출한 '경제안정보장추진법'에서 방향을 제시했다. 법안의 핵심은 공급망 강화 및 첨단기술의 외부 유출 방지, 기업의 사이버 안전에 대한 의무 강화 등을 담았다. 일본 내에서 최근 전개되는 경제와 관련한 일련의 방향은 분명하다. 미국과 손잡고 경제 분야에서도 중국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와 다른 바이든식 대중 경제봉쇄

일본 언론은 이번 미일 정상회담 결과를 보도하면서 '경제판 2+2'를 신설하기로 한 점을 가장 주된 합의사항으로 전했다. 양국간 외교와 안보 현안에 대한 합의가 여럿 있는데도 이 문제를 가장 크게 다룬 점은 향후 두 나라가 경제 분야에서도 동맹의 영역을 확대할 것임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합의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동맹을 통한 대중국 견제의 일환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아사히신문은 27일 "트럼프정권은 미국 독자적으로 중국 기업에 대한 규제를 자국 내에서 강화해 왔지만, 바이든정권은 이를 다국간 틀로 확대해나간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르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그러면서 두 나라가 지난해부터 꾸준히 경제협력의 틀을 모색해왔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 4월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의 정상회담에서 '미일 경쟁력 및 강인한 파트십'과 지난해 11월 미국 상무부와 일본 경제산업성은 '상무 및 산업 파트너십'을 발표해 경제협력에 대한 인식을 좁혀왔다.

특히 '2+2 회담'에 외교장관이 참여하는 데 주목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 외무상이 양국 경제장관과 함께 한 축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산업성 한 간부는 "외무상이 들어간다는 것은 협의 가능한 사안이 보다 폭넓어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순수한 경제논리뿐 아니라 외교·안보 현안도 함께 논의될 것임을 시사한다.

실제로 이 회담은 양국간 경제 현안에 국한하지 않고 동남아시아는 물론 인도·태평양지역의 인프라 정비, 더 나아가 인도·태평양지역의 새로운 경제 및 무역질서에 대한 논의로 나아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양국이 이 회의를 통해 인도·태평양지역의 인프라 정비 등 제3국에 대한 투자에서 미일의 협력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이와 관련 하기우다 고이치 경제산업상은 25일 회견에서 "혁신과 기후변화 대책, 인도·태평양 지역에 있어서 규칙에 기초한 경제질서의 확보 등에 대해 전략적 관점에서 높은 차원의 폭넓은 논의를 해나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양국은 경제 분야에서의 협력을 크게 두 축으로 진행할 전망이다. 우선 중국을 견제할 강력한 경제안보의 강화다. 중국과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거나 기술격차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분야에서 첨단기술을 보유한 미일 두 나라가 협력하는 내용이다. 예컨대 △반도체 등 중요한 전략물자의 공급망 강화 △인공지능(AI)과 양자기술 등 첨단기술의 유출 방지 △5G 및 6G 등 첨단기술 표준의 확립 등이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미국, TPP 빠지고 새 경제틀 모색하지만

이번 미일 합의로 양국은 한편으로 인도·태평양지역의 역내 경제질서를 재편하는 새로운 틀의 구축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국이 주도해 2015년 발족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중심으로 '일대일로'가 진행되고 있는 데다, 올해 공식 출범한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더구나 트럼프정권 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도 탈퇴해 이 지역에서 다자간 경제협정에 거의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인도·태평양지역 경제협력체'를 구상하고 있다. 미일 양국간 2+2 회담이 이러한 역할을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일본정부 관계자는 "대중국 무역정책을 전개하고 싶지만 TPP에 돌아올 수 없는 미국이 비슷한 정책적 효과를 갖는 수단으로 이를 만들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두 나라가 이 지점에서 차이를 드러낸다고 일본 언론은 분석했다. 일본은 미국이 빠진 채 이미 존재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다시 가입할 것으로 원하지만 미국의 생각은 다르다는 점이다. 실제로 기시다 총리는 이번 양국 정상회담에서도 미국이 이 협정에 다시 복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측은 바이든정권의 지지기반인 노동조합이 무역협정에 반대하고 있어 실제로 복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인도·태평양에서 새로운 경제협력의 틀을 만들려고 하지만 효과는 불투명하다. 미국이 구상하는 새로운 역내 경제협력의 틀이 TPP 등 다자간협정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이든정권은 현재 법적 구속력이 있는 TPP와 같은 협정을 맺을 교섭권한 자체를 의회에서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간 합의를 해도 의회의 승인이 없으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일본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바이든정권이 바뀌면 사라질 리스크가 있다"고 말할 정도다.

오히려 중국은 RCEP의 공식 발효로 주도권을 가진 상황에서 새롭게 CPTPP에도 가입하겠다고 신청서를 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국은 TPP 가입을 신청하고 인도·태평양지역의 경제질서에서 주도권을 쥐려고 한다"며 "미국이 일본 등 역내 국가와의 느슨한 경제 연계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도 뿌리깊다"고 분석했다.

미일, 안보동맹 강화·경제동맹 속내 복잡

미국과 일본은 전통적 동맹관계에다 중국의 급부상을 막기 위해 외교와 안보에서 어느 때보다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경제동맹은 복잡하다. 중국과 이미 긴밀하게 연결된 경제문제는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번 정기국회에 '경제안정보장추진법'을 제출해 보다 강력한 경제적 안보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 부처로 '경제안보청'도 별도로 설치해 경제를 안보적 관점에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일본정부가 14일 밝힌 경제안보법의 핵심은 △공급망 강화 △기간 인프라 보호 △첨단기술 유출 방지 △각종 특허의 비공개 등 4가지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예컨대 기간 인프라의 보호를 위해 통신이나 전력 등 인프라 사업자가 중요한 설비를 새롭게 도입할 때 정부가 사전에 심사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는 식이다. 사실상 중국산 부품 등의 사용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로 풀이된다.

첨단기술과 특허권의 유출 방지는 거꾸로 일본이 갖고 있는 앞서가는 기술과 인재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도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기술입국을 이루면서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서 앞서갔지만 한국과 중국 등지로 기술과 인력을 빼앗겨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한편 일본이 국내적으로 경제안보법을 제정하고, 대외적으로 미국과 경제동맹을 강화하는 등 대중국 견제에 본격적으로 나섰지만 얼마나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는 전망이다.

나카바야시 미에코 와세다대학 교수는 "신설되는 2+2에서 미일 정부가 공급망이나 민간 기술전용 규칙을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면서도 "이러한 미일 연계 움직임은 중국의 반반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일본은 중국을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재계도 중국과 갈등을 원하지 않는다. 토쿠라 마사카즈 경단련 회장은 24일 기자회견에서 '2+2 회담' 신설을 평가하면서도 "중국과의 경제관계는 유지하고 싶다"며 "세계는 중국 없이 나아갈 수 없고, 중국도 세계 없이는 나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은 경제계가 가지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 악화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일본정부도 이러한 경제계의 중국에 대한 인식을 잘 알고 있다. 지난해 12월 바이든 대통령 주도로 열린 '민주주의 서밋'에서 감시기술의 수출을 엄격하게 하는 다국간 협력체로 '수출관리와 인권 이니셔티브'를 선언할 때 일본이 빠진 것도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고려한 조치였다는 평가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백만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