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실효적인 해결 방안 마련이 필요" … 학계선 "죄질에 맞는 처벌로 예방 효과 가능" 주장도

#. 지난달 18일 경찰은 훔친 승합차를 면허 없이 운전하다 사고를 내고 도주한 10대 중학생 A군 등 2명을 붙잡았다. A군 등은 지난달 15일 한 아파트 단지에서 문이 열린 승합차를 훔쳐 무면허 운전을 한 혐의를 받는다.

범행 당시 영상에는 한 명이 주변을 살피는 사이 다른 한 명이 차량 내부를 살핀 후 차량에 함께 올라타더니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녹화됐다. 이들은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차량 1대를 들이받고 후속 조치를 하지 않은 채 달아난 혐의도 받고 있다.

이들은 80여㎞를 달려 전남 목포의 한 숙박업소에 숨어 있다가 경찰에 7시간 만에 붙잡혔다. 이들은 사이드미러가 접히지 않은 차량만을 노려 금품을 털려다 침입한 승용차에 시동이 걸려 그대로 달아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과거에도 40여 차례나 비슷한 범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잡힐 때마다 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처벌 대상인 만 14세가 넘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채 또 범행을 저지르다 처벌받게 됐다.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14세 미만 형사 미성년자인 '촉법소년'의 범죄가 전체 소년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들의 범죄는 소년층 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서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기간 '촉법소년 연령 하한'을 공약한 만큼 향후 개정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한다.

16일 학계에 따르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교신저자)와 박지혜 석사과정생 등이 참여한 연구팀이 2011∼2020년 10년간의 검찰·경찰·법원의 소년범죄 통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교정담론' 4월호에 '형사미성년자 기준연령 하한에 대한 고찰'이란 제목의 논문으로 발표했다.

◆소년 인구 감소에도 증가세 = 이에 따르면 전체 보호처분을 받은 소년 중 촉법소년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1년 11.2%에서 2020년 13.6%로 2.4%p 증가했다.

또 소년원 입원자 중 촉법소년 비율은 2014년 1.1%에서 2020년 3.1%로 3배나 증가했다.

현행 소년법 등에 따라 만 14세 이상∼19세 미만은 형사처벌이 가능한 '범죄소년', 10세 이상 14세 미만은 소년원 송치, 사회봉사명령 등의 보호처분만 내릴 수 있는 '촉법소년'으로 분류된다. 보호처분은 사회봉사·보호관찰·소년원 송치 등이다. 가장 강한 소년원 송치 처분을 받아도 전과 기록은 남지 않는다.

연구팀은 소년범죄의 꾸준한 증가세는 물론 '저연령화' 추세마저 감지되는 대목이다. 소년 인구가 줄어 관련 통계도 줄어야 하는데, 경찰에 입건된 숫자는 오히려 늘어났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스마트폰 보급 대중화와 소셜미디어(SNS) 발달 등 디지털 문화 속에서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악용하는 학생들이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걸 알고 촉법소년 연령대의 청소년들이 대범하게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촉법소년들은 피해자들에게 "우리는 사람 죽여도 교도소 안 간다"고 협박하거나, 본인들이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이용해 검거된 이후에도 경찰관에게 욕설하는 등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자들은 논문에서 "미성년자들이 법정에 섰을 때 보호처분을 받을지 형사처분을 받을지 예상할 수 없어야 처벌의 효과가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촉법소년 기준 연령을 낮추는 것이 실제 '처벌'의 목적보다는 '전과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 범죄를 억제하는 예방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촉법소년제도를 악용해 반복적, 계획적, 지속적 범죄를 저지르는 소년범에 대해 죄질에 맞는 처벌을 하면서 경미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뚜렷한 반성을 보이는 청소년에게는 보호처분을 내리는 방법으로 예방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장기적 부작용 우려 목소리도 = 이런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촉법소년 상한 연령을 14세 미만에서 12세 미만으로 낮추겠다고 공약한 만큼 새 정부에서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은 최근 이들의 범행이 흉포화되는 양상이라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됐다. 지난해 8월에는 13세 소년이 꾸중을 듣고 분노를 참지 못해 흉기로 모친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2018년 관악산 집단폭행이나 인천 여중생 성폭행 사건 등도 사회적 공분을 불렀다.

다만 학계와 법조계 그리고 청소년단체 등에서는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판단력이 부족한 청소년을 어른과 같은 잣대로 처벌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안이 아니라는 의견이다. 특히 보호처분 등을 통해 교화될 수 있는 청소년을 처벌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18년 정부와 국회에 보낸 형사미성년자 연령 하향 관련 의견서에서 "소년범죄는 단순히 엄벌을 통해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재범 방지와 피해 청소년 보호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합리적 방안 마련할 것" = 한편, 일부에서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소년 범죄 근절 방안 중 하나로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하면서 현실화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후보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에게 보낸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서면질의 답변서에서 "최근 촉법소년의 범죄 증가, 범행 수법의 흉포화 등으로 인한 피해 증가를 고려하면 촉법소년 연령 기준 하향 등 실효적인 해결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소년의 정신적·신체적 성숙도, 교화와 형사사법 정책적 관점, 세계 각국의 추세, 국제인권 기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합리적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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