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미필적 고의' 인정 … 벌금 50만원

건물주엔 희소식이지만 '소송남발' 우려도

필로티 주택 1층에 무단으로 주차한 운전자에게 건조물침입 혐의를 유죄 판단한 판결을 두고 법조계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주거침입의 경우 보통 절도나 성범죄 등에 부차적으로 저질러지는 것이 일반적이고, 무단주차의 경우 경찰이나 지자체에 신고해도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상당히 이례적이다. 1심 재판이지만 유죄 판결은 외부인의 얌체주차로 골머리를 썩는 건물주나 입주자에게는 희소식이다. 다만 주차문제로 인한 소송 남발은 물론 전과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주차문제 해결에 근본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필로티 공간 외부인에게 출입 금지" =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1단독 심현근 판사는 건조물침입죄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 대해 유죄로 보고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고 22일 밝혔다.

A씨는 2021년 여름 서울의 한 다세대 원룸 건물 1층 주차공간에 자신의 차량을 주차했다. 이 건물은 1층이 개방된 필로티 구조다. 건축주 입장에서 1층에 벽을 설치하지 않아 건축비가 절감되고 1층을 개방된 공간 또는 주차장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신축건물에 주로 쓰이는 방식이다.

A씨는 관리인이나 다른 입주민이 없는 사이에 차량을 주차한 뒤 볼일을 보러 갔다. 차량 이동 요구에 A씨가 응하지 않자 관리인은 경찰에 신고했다. 검찰은 A씨를 벌금 100만원에 약식기소했지만 법원은 A씨를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A씨는 "주차공간에 잠시 주차했을 뿐 건조물 침입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심 판사는 "필로티 공간은 형태 및 구조상 건조물 이용에 제공되고 외부인이 함부로 출입해서는 안 되는 공간이라는 게 객관적으로 드러난다"며 "피고인이 관리인의 이동 요청에 1시간 동안 주차했고 피해자의 차량이동 문자에 개인적 사정으로 응하지 않은 점을 볼 때 적어도 건조물 침입에 미필적 고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 "주차차단기가 없는 건조물 형태, A씨가 주차를 하게 된 경위, 주차시간, 주차 후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 다툼의 경위 등을 고려했다"며 벌금 감액 이유를 설명했다.

무단주차 자체가 위법이라는 일률적 해석보다는 건조물침입에 대한 의도나 주거 등의 평온을 침해한 정도 등에서는 종전보다 구체적인 기준이 나왔다는 평가도 있다.

◆112신고나 고소 넘쳐날 듯 = A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항소심에서 구체적 판단이 이뤄지겠지만 법조계에서는 이 판결에 대해 상반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법무법인 동인의 김우석 변호사는 "건축주들이 무단주차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기게 됐다"면서도 "범죄성립 범위가 넓어진 점이 있어 (판결을) 제한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무죄를 쉽게 결론 내리기 힘든 사안으로 상급심의 판단까지 신중히 지켜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무단주차로 몸살을 앓고 있는 건물주 입장에서는 환영할 판결"이라며 "위요지(건물 등 주변토지)를 주인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들어간 만큼 재판부로서는 법리상 무죄를 선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형사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한 변호사는 "무단주차의 벌금액수는 불법주차를 한 과태료에 비해 현저히 높다"면서 "무엇보다 무단주차로 인한 건조물침입 또는 주거침입을 유죄로 볼 경우 전과자가 쉬이 양산될 수 있어 판결이 아닌 사회적 합의나 대안 마련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로 사유지 무단주차가 비일비재한 지역의 경우 건물주 등이 무단주차를 한 운전자 등에 대해서 형사고소를 할 개연성이 높아졌다.

서울의 일선 지구대에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무단주차로 인한 신고가 들어와도 차주나 운전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동을 요청하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었다"면서 "앞으로 112신고는 물론 고소장이 넘쳐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주차문제를 담당하는 일선 자치구 관계자는 "무단주차 때문에 하소연하는 민원이 월 평균 30건쯤 된다"면서도 "건조물침입 유죄 판결이 확정되면 소송이 늘면서 공동체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사유지 주차장까지 포괄하는 공유주차장 확산 등으로 공간확보에 노력하는 게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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