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누리호 발사 성공에 국산화 엔진만큼 기여한 것은 없을 것이다. 추진력 없이는 우주 궤도 진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패를 거듭했으나 장장 8년 걸려 엔진 국산화와 상용화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를 보면서 IT한국호가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느꼈다. 우리는 내세울 만한 소프트웨어(SW) 엔진 국산제품이 하나도 없다.

삼성이 비메모리반도체 생산에서 1위를 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된 것은 2년 전이다. 그런데 그간 별 진척이 없다가 최근 새정부 출범과 함께 앞으로 171조원 규모 투자를 통해 8년 내에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의지를 다시 공표했다. 이것은 무슨 연고인가.

설계 후 시공은 어디서나 법칙이다. 반도체 분야도 설계사와 시공사가 따로 있는 게 보통이다. 설계기업에 의해 제품설계가 끝나면 제품생산은 위탁 형식으로 다른 기업에 맡겨진다. 삼성은 위탁생산 주력 기업이다. 설계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삼성 평택공장을 보면 마치 포항제철 기업들이나 여수 종합석유화학단지를 떠올리게 해 반도체도 굴뚝 산업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생산공정 자체도 설계보다는 덜 하지만 치열한 경쟁을 거친다. 이 경쟁은 6개월 주기로 펼쳐지는 매우 긴박한 게임이다. 업계 스스로 '초격차'라는 말을 만든 배경이기도 하다.

비메모리반도체도 굴뚝산업과 유사

메모리반도체 위탁생산 부문에 있어서 삼성의 위치는 확고하지만 위탁생산보다 이윤 폭이 비교도 안될 정도로 훨씬 큰 반도체 설계 쪽에서는 존재감을 찾기 힘들다. 비메모리반도체 설계에서 삼성의 글로벌 점유율은 부끄러운 수준인 1%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은 점유율 61%를 자랑하는 비메모리 설계 강국이다. 이어 대만이 18%로 2위다. 대만에 이런 초격차 역전을 당했으나 설계부문 취약을 해결하는 정공법을 택하는 대신 비메모리반도체에서도 위탁생산에 주력하는 우회노선을 선택했다. 그게 우리의 한계이자 삼성의 한계다. 메모리에 비해 시장규모가 훨씬 큰 비메모리쪽 출사표는 바람직한 일이기는 하다. 다만 설계가 아닌 생산에 국한되는 것은 두고두고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

삼성은 대체 어떤 기술이 모자라기에 그토록 약세인가. 이는 비메모리반도체를 일명 시스템반도체라고 부르는 배경과 연관이 있다. 비메모리반도체는 계산수행을 위한 SW를 일부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여기서 시스템이란 운영체계(Operating System)를 지칭한다. 결론적으로 반도체에도 PC 윈도우 같은 SW가 들어간다는 뜻이다.

설계에서 우리가 약세를 드러내는 것이 지난 30년간 고착화돼 버렸다. 우리가 소프트웨어에 신경을 전혀 쓰지 않고 지내온 탓이다. SW에서 잘 하기 힘든 이유는 HW보다 특단의 창의력과 누리호 엔진 개발과정 같은 끈기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HW는 단거리 스프린트 경주처럼 속전속결이다. 반면 SW는 순발력 대신 지구력에 의해 승부가 갈리는 동네다. 그것도 실내 육상트랙이 아니라 아스팔트 길바닥에서 펼쳐지는 장거리 경주와 같다. 기술혁신 주기면에서 HW는 6개월 단위로 비교적 짧지만 SW는 18개월로 마라톤처럼 길다.

고질적인 SW 약세와 더불어 지난 수년간 IT 기술 외적인 문제까지 겹쳐 우리 기업들은 기를 펼 수 없었다. 지난 수년간 대만이 미국 일본과의 밀월관계를 지렛대로 활용해 그들의 반도체생태계를 완벽하게 끌어안는 데 성공한 반면 같은 기간 우리는 발이 꽁꽁 묶여 있었던 탓이 크다. 그 결과 최근 대만과의 격차가 더 벌어졌고 삼성은 급기야 타개책을 찾기 위해 분주해졌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대책 마련을 위해 최근 유럽 반도체연구소를 방문했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기술 뿐"이라는 귀국 일성을 남긴 채 삼성은 즉각 비상경영체제로 돌입했다.

여기서 대만을 향한 도전장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메모리 위주로 재편되는 세계 동향 속에서 자사 사업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보는 게 유력한 해석이다.

반도체 몰입해서는 SW 벽 부닺힐 것

이런 삼성에게 장단기적으로 필요한 전략은 무엇일까. 지금은 4차산업혁명시대다. 반도체칩은 3차산업혁명을 일으킨 주역으로서 아직 일정부분 역할을 하고는 있으나 그것은 4차산업혁명에서는 더 이상 엔진이 아니다. 계속 반도체에만 몰입해서는 결국은 SW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힐 것이다. SW엔진 국산화를 미뤄서는 미래가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SW는 HW와는 달리 승자독식의 세계다. 거기에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빼고 누가 있는가. SW 역량과 무관한 대책으로는 사멸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누리호가 국내 IT산업에 던져준 막중한 교훈이다. 국가가 할 일은 외교 갈등으로 위축되는 일이 없게끔 대학과 기업에게 넓은 운동장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누리호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각도 외교노력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듯이 말이다.

문송천 카이스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