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수(아버지) : 오늘 볼 영화는 색소성 건피증을 다룬 영화야. 이것은 피부질환으로 지난번 ‘파이브 피트’ 영화의 낭포성 섬유증처럼 희귀병이란다.
고동우(아들) : 영화는 질환에 대한 어려운 내용이 나오는 게 아니라, 사랑을 하고픈 소녀의 애틋한 마음을 그려낸 듯해요. 그래서 병을 몰라도 편하게 볼 수 있었어요.
고병수 : 맞아. 사람들은 실제로 그런 피부병이 있을까, 생각하겠지만 드물게도 나타나는 병이란다. 파이브 피트 영화에서는 질병과 관련된 어려운 용어들이 등장해서 조금 전개 상황을 이해하는데 힘들었을 거야.


‘미드나잇 선(Midnight Sun, 2017)’은 어렸을 때부터 ‘색소성 건피증’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케이티(벨라 손)라는 소녀에 관한 애틋한 이야기를 담았다. 영어 제목인 ‘한밤중의 태양’은 무슨 의미일까? 어두운 밤에만 활동해야 하는 케이티에게 태양과 같은 존재라는 것 아닐까? 영화를 보면서 각자의 느낌으로 되새겨보면 좋겠다.

케이티의 아버지 잭 프라이스(롭 리글)는 딸이 빛에 노출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준비를 한다. 낮에는 밖으로 나오면 안 되고, 집은 자외선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특수 유리창으로 둘러쌌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는 1인 2역으로 딸 케이티를 보살펴야 한다.

낮에 밖으로 못 나가는 케이티의 유일한 낙은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만드는 일과 창밖을 내다보면서 좋아하는 찰리 리드(패트릭 슈왈제네거)라는 학생을 몰래 훔쳐보는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9학년이 될 때까지,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일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다니는 찰리를 보는 것은 케이티의 행복이었다.

그러한 케이티에게 친구가 아주 없는 것이 아니다. 그가 심한 병을 앓아서 낮에 못 논다고 하니까 자기도 햇볕에 오래 못 있으니 밤에 놀러 오겠다는 당돌한 소녀 모건(퀸 쉐퍼드)은 평생 친구가 되고.....

색소성 건피증

‘색소성 건피증(XP; Xeroderma pigmentosum)’은 헝가리 출신 의사인 카포지(Moritz Kaposi, 1837~1902)에 의해 1870년 처음 소개된 피부병이다. 피부 질환에서 그의 역할은 대단하다. 종양학에서 카포지 육종이라는 병도 그가 발견한 것이다.

나중에 밝혀지기로는 상염색체 열성으로 유전되는 질환으로 자외선을 받아서 손상된 DNA가 회복하지 못해 문제를 일으키는 병이다. 손상된 DNA는 또 인체에 변형을 일으켜서 몇 분만 햇빛에 노출되어도 화상을 입기 쉽고, 기미나 주근깨가 금방 생기는 등 각종 피부 병변을 생기게 한다. 신경 손상으로 눈과 귀가 멀게 되고, 어린 나이에 피부암과 뇌 손상을 얻어서 일찍 사망하게 된다.

어두운 밤, 태양이 되어준 친구

재택 수업으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타게 된 날 밤, 노래를 부르고 싶은 케이티는 여느 때처럼 기착역에 가서 기타를 치며 버스킹(거리 공연)을 한다. 유일한 친구 모건은 제과점 아르바이트를 하느라고 못 나오고, 다들 졸업 축하 파티를 하고 있을 텐데, 혼자 있어야 하는 울적한 마음을 노래를 부르며 달래본다.

졸업 파티를 하면서도 친구들 사이에서 뭔가 가슴이 텅 빈 것 같은 찰리도 친구들이 노는 곳을 벗어나 하염없이 걷다가 기차역까지 오게 된다. 그때 케이티가 노래 부르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광경이 너무 좋아서 찰리는 말을 걸어 보지만, 당황한 케이티는 죽은 고양이를 위해 일찍 들어가야 한다고 하면서 도망치듯 빠져나가 버린다. 이 상황에 죽은 고양이 타령라니.....



짝사랑하던 사람을 바로 눈앞에서 예고도 없이 만나게 되면 누구나 겪는 실수처럼, 케이티는 너무 서둘러서 가느라고 일기장처럼 글을 끄적이며 적던 공책을 두고 오고, 찰리는 공책의 주인공을 찾고 싶어진다. 결국 이런 기회로 둘은 연인 같은 친구가 된다.

찰리가 수영 유망주였으나 사고로 어깨 수술을 받고는 수영을 못하게 돼서 버클리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갈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알고 케이티는 다시 한번 해보라고 기운을 북돋운다. 둘은 밤 기차를 타고 시애틀의 어느 거리에서 생음악도 함께 듣고, 케이티가 길거리 노래를 부르게 만들어준다. 케이티의 자신감을 살려주려는 것이다.

밤이 새도록 둘이 함께 거닐다가 해 뜨는 것을 보자는 찰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케이티는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자 집으로 죽어라고 뛰어간다. 병원에 검사하러 갔더니 케이티의 뇌는 손상이 진행되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 정도 햇빛 노출로는 문제가 안 되지만 찰리는 자기 때문이라고 자책하게 된다. 그런 케이티를 위해서 다시 수영을 다시 시작한 찰리는 대학교 입학을 위한 좋은 성적을 내지만, 케이티는 그와 헤어지려는 준비를 한다.

찰리는 트럭을 사려고 모은 돈으로 케이티가 음반을 낼 수 있도록 스튜디오를 빌린다. 병의 합병증으로 생긴 손 떨림으로 케이티는 기타를 칠 수는 없지만, 그가 작사?작곡한 ‘찰리의 노래’를 부른다.

“어느 별 위에 서 있을 수 있다면.... 네가 있는 곳에 있을 수 있다면.....”

둘은 찰리가 버클리 대학교로 가기 전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여행을 한다. 케이티는 보트를 타고 햇빛을 맞아가며 마지막 행복을 누린다.

“이걸 느껴보고 싶어 평생을 기다렸어.”

케이티는 찰리와 만나게 연결해준 공책을 남긴다.

“하늘에서도 너를 지켜볼게. 내가 보고 싶으면 밤하늘을 쳐다보기만 하면 돼. 내가 보내는 별빛을 네가 볼 수 있다면 수천 년의 시간이 흘렀을 거야.”

이 영화는 일본에서 ‘태양의 노래(Midnight Sun [タイヨウのうた], 2006)’란 제목으로 먼저 만들어져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한 작품이다. 영어 제목도 똑같은데, 다시 만들어진 미국 영화가 더 좋다는 평이다. 찰리를 연기한 주인공 패트릭 슈왈제네거는 이름에서 짐작하듯이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아들이다. 근육질의 아버지와 달리 참하고 잘 생겼다.

["고병수 의사의 ‘영화 속 의학의 세계’" 연재기사]

고병수 의사

김규철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