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인하대 녹색금융대학원 주임교수, 지속가능경영연구소 ESG 센터장

유럽연합(EU) 의회가 최근 천연가스와 원자력에너지를 지속가능한 에너지 자원으로 분류하는 그린택소노미를 가결했다.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55% 줄이겠다는 핏포(Fit for)55 계획이나 2035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을 완전 금지한다는 등의 기후변화 정책은 화석연료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낮출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화석연료 감소의 공백을 신재생에너지로 채우기에는 기술적 경제적 난제가 적지 않다. 이러한 배경에서 전환기에 천연가스와 원자력에너지 의존도 상승을 용인하는 고육지책이다.

환경단체, 일부 회원국 등이 강력히 반대하자 폰데라이언 EU 집행위원장은 미래 청정에너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이 법안이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즉 영구적인 조치가 아니라 2050년 넷제로로 향하는 과정에서의 브릿지(bridge) 에너지원이라는 것이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침공으로 인한 세계 에너지 공급 축소와 불안정성이 결정적 원인이다. 러시아산 가스에 에너지원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EU 국가들이 최근 석탄발전을 재가동하려는 등 절망에 가까운 혼란을 겪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EU택소노미가 러시아의 영향력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라 우려한다. 러시아는 우라늄 생산국이자 관련 기술선진국으로 전세계가 원자력 의존도를 높일수록 러시아의 에너지시장 통제력과 에너지 공급망 불안은 높아진다. 이런 의미에서 화석연료의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들이 에너지 안보를 위해 원자력발전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다.

가스와 원자력을 청정에너지로 포장할 수도

EU 결정이 전세계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U가 현실적인 이유에 굴복해 지속가능한 세계를 향한 인류공동의 노력을 포기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EU는 가스와 원자력에너지를 그린에너지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전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2035년까지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가정 하에 가스를, 그리고 2050년까지 실현가능한 고준위 방사능폐기물 처리장 계획을 수립한다는 가정 하에 원자력을 그린에너지로 분류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그 조항의 적용이 얼마나 엄격하고 객관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명확하지 않다. 더욱이 마치 천연가스와 원자력에너지가 청정에너지인 것처럼 의도적으로 과대 포장하는 정책을 수립하면서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당장 한국 정부가 최근 발표한 신에너지 정책은 '원자력에너지 비중 확대' 외에는 새로운 비전을 찾기 어렵다. 국정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전정권의 정책을 뒤집는 것 외에는 새로운 비전과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가 올해 초 CEO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향후 1000개의 유니콘 기업이 생긴다면 그것은 검색엔진이나 소셜미디어 기업이 아니라 탈탄소와 에너지 전환을 달성할 혁신적 창업기업(start-up)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리 정부가 마치 성장과 고용정책의 큰축인 것처럼 원자력산업을 꼽는 것은 근시안적이다.

원자력과 화석연료 사용 등은 이념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국민의 미래가 걸린 현실적인 문제다. 전정권의 탈원전을 이념적 접근이라고 비판하려면 현정권도 저발전원가나 친기업 같은 구시대적 이념에서 벗어나서 10~20년 이후의 성장과 고용의 원천이 무엇인지 사려 깊고 분별력 있는 산업 및 에너지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의 동의를 얻지 않고 소수의 학자와 이해관계자에 의존하는 비민주적 접근은 현정권이 전정권과 다를 바가 없다. 탈탄소와 새로운 경제정책이란 어려운 과제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원자력에너지를 강조해서는 안된다.

탈탄소정책과 국가경쟁력 통합한 비전

윤 대통령은 대선 토론 기간에 그린 택소노미와 RE100를 처음 들어본다는 반응으로 지각 있는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에너지 문제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알 필요는 없다는 주장으로 그 실망을 달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이 향후 우리의 100년 대계를 망치게 내버려 둬서는 안된다.

전대미문의 기적을 만들어 온 대한민국의 위대한 국민들이 미래 성장잠재력을 해치는 일과 사회적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정부를 지켜봐야 한다. 다음에 발표될 에너지 정책에서는 신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탈탄소 정책과 국가 경쟁력이 하나로 통합된 획기적인 비전이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김종대 인하대 녹색금융대학원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