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철규 성공회대 교수 경제학

3월 첫째주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경제가 부동산 등 자산거품이 꺼지기 전의 1980년대 일본경제와 비슷하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한국이 직면한 금융적 위험과 중앙은행의 대응이 1980년대 후반의 일본을 연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 연결고리는 부동산이다. 2013년 국내총생산(GDP)의 4배 수준이었던 한국의 토지가치는 이제 5배 수준에 올라섰는데, 일본의 부동산 거품이 정점이었을 때 GDP의 5.4배였다. 일본은 부동산 호황기에 자산가치와 부채가 함께 늘다가 어느 순간 자산가치는 사라지고 부채만 남게 되었다는 진단이다.

부채부담으로 인한 소비위축은 경제위축을 가져왔고, 30년이 흐른 지금도 일본의 내수수요는 회복되지 못하고 장기침체의 핵심요인을 이루고 있다. 구매력(PPP) 기준으로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이 일본을 넘어서는 동안 소비 구매력을 구성하는 일본의 실질임금은 오히려 줄어드는 경우도 나타났다.

국제금융협회(IIF)의 글로벌 부채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2022년 1분기 기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4.3%로 주요 36개국 중 가장 높다. 만약 한국의 부동산가격 상승이 가계부채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라면 이코노미스트지의 경고는 일리가 있다. 며칠 전 로이터통신에서 '활황이었던 한국 부동산경기가 빠른 속도로 침체되면서 부채가 큰 소비자들이 압박받기 시작했다'고 보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또 1980년대 일본 중앙은행이 과열된 자산시장을 안정시키려고 금리를 급하게 올리면서 거품붕괴가 시작된 점을 지적했다. 한국이 코로나 유행 중 주요국 가운데 거의 처음으로 금리를 빠른 속도로 올리고 있는 점을 문제시한 것이다.

아시아 금융위기 가능성 중심에 선 일본

여기서 구분되어야 할 두가지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한국의 코앞에 닥친 물가냐 경기냐의 선택처럼 보이는 문제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200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그 핵심 원인인 물류와 공급망 문제에 대해서 한국은행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한국은행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은 금리인상으로 수요를 억제할 맞불을 놓는 것뿐이다.

그런데 금리인상은 가계부채 문제와 경기침체 가능성과 충돌한다. 이미 2분기 경제성장률 통계에서 나타났듯이 수출과 기업 설비투자가 감소했으며, 유일한 버팀목은 민간소비인 상황이다. 그런데 이것은 단기적인 경기순환상 문제와 직접 관련을 갖는 것으로, 이코노미스트지가 주목한 일본과의 유사성 즉 장기침체 문제와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전자가 주어진 경제구조 하에서 정책 선택 문제라면, 후자는 경제구조 자체의 변화와 관련을 갖는다.

아베노믹스는 무한대의 돈풀기(금융완화)로 엔화 약세를 유도해 수출을 증가시키고, 이것이 다시 기업투자를 증가시켜 고용증가와 임금상승을 이끌면 소비가 늘어 일본경제를 정상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플라자합의 이후 엔고 속에서 진행된 일본 기업의 생산시설 해외이전이라는 구조 속에서는 첫 단추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주어진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똑같은 형태로 반복되었던 경기부양 정책은 2021년 2분기 말 현재 GDP의 242.9%을 넘어서는 정부의 과잉부채와 일본은행에 의한 국채인수 및 보유(화폐발행)라는 기형적 구조를 낳았다. 1000조엔을 넘는 국채발행 잔액 가운데 50%를 일본은행이 보유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적 기준금리 인상 러시에 일본이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하던 그대로'의 길을 걷고 있는 이유다.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라는 말을 만들어 유명세를 탄 전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회장 짐 오닐은 최근 "미 달러화 강세가 지속되어 달러당 150엔에 이르면 아시아 금융위기가 야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는데 그 중심에 일본이 있다. 마침 지난달 '미스터 엔'으로 유명한 사카키바라 아이스케는 엔화가치가 달러당 150엔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해 주목을 받았다.

디지털전환으로 경제구조 변화시키기

그렇다면 이코노미스트의 경고와 달리 한국경제가 일본의 길을 가지 않을 방법은 무엇인가. 당장 발등의 불인 물가잡기는 부동산 경착륙을 피한다는 전제하에서 진행될 필요가 있다. 부동산가격 또한 물가의 구성요소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과격한 물가잡기가 가져올 위험을 피하는 접근법이다. 오히려 관리가능한 적절한 물가상승은 부채문제를 완화시키는 수단이기도 하다.

보다 중요한 일은 경기순환을 넘어 한국경제 구조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일본의 실패에 비춰볼 때 그 핵심어는 기존 산업의 디지털화 즉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다. 디지털화를 통한 생산성 증가와 비용하락을 이룰 수 있다면 물가와 경기간의 딜레마를 현저히 약화시키는 경제구조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일본과 달리 한국산업의 디지털화 성공 가능성은 높다. 탈중국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