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완 문화산업상생포럼 수석부의장

얼마 전 한권의 책이 왔다. '동주의 시절'. 서울 출신이지만 중국 옌벤조선족자치주를 배경으로 활동하는 류은규 사진작가와 일본인으로 드물게 이 지역을 연구한 도다 이쿠코씨가 합작한 책이다. 윤동주의 시와 이 지역 분들의 가정에서 모은 사진을 조합해서 만든 책이었다.

책을 보면서 가슴이 아렸다. 1900년부터 현대까지 중국 동북에 있는 가족사진을 모은 것이었다. 필자는 중국에 있을 때, 취재와 이런저런 인연으로 동북3성을 방문할 때가 많았다.

한·중·동남아 곳곳에 위안부 제도 운영

이곳에서 우리 이주민들은 독립군으로 모든 생을 걸었고, 어떤 이들은 일본의 밀정 노릇을 했을 것이다. 책에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건너온 여인네들의 사진도 많았다. 그중 38쪽에 실린 '1930년 용정 삼합 북흥촌' 사진은 묘한 느낌을 주었다. 할머니로 보이는 여인과 세명의 젊은 여인, 그리고 두 아이가 있었다. 나는 문득 이 가족의 앞날이 궁금해졌다.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들어간 민중 속 여자들의 삶을 추측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난징대학살 당시 수많은 사람은 일본의 무자비한 총칼에 목숨을 잃었고, 여인네는 유린당하고, 역시 목숨을 잃었다. 중국 땅에서만은 아니다. 동남아에서 남태평양으로 향하는 먼 섬들에서 우리 여인들은 물론이고 중국, 동남아 국가들의 여인들도 그런 모진 삶을 살았다.

2017년 국내에 '일본군 중국 침략 도감 19: 일본군 위안부와 성폭력'으로 번역 출간된 쑤즈량(蘇智良) 상하이사범대 교수의 책은 사진과 글로 그 비극을 낱낱이 고발했다.

일본은 중일전쟁 전후로 동북3성과 연해인 산동 푸젠은 물론이고 윈난 광둥 광시 등에 위안부 제도를 통해 군사 성노예제도를 운영했다. 물론 이들의 만행은 '대가'라는 말로 합리화시킨다. 하지만 총칼을 뒤로 감추고 앞에서 양심과 거래를 말하는 것은 책임을 외면하는 자세로밖에 볼 수 없다.

일본정부 어떠한 애도도 표할 생각 없어

역사의 고통에 사는 삶은 동북 롱징에서 같은 해에 태어난 윤동주와 송몽규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면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시 '자화상'에서처럼 우물 속에 비친 자신을 보고 미워져 돌아간다는 그 심약한 청년과 친구는 일제의 감옥에서 숨을 거둬야 했다.

그나마 이들은 죽음의 장소라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위안부들은 전쟁선에서 폭사하거나 학살됐다. 더러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환향녀라는 낙인과 가족들에게 끼칠 폐를 생각해 먼 이국에서 안타까운 생을 마쳤다.

이런 이들을 두고 일본은 '한 사람의 위안부도 살해하지 않았다'고 하고, 정당한 보상을 했다고 한다.

일본군은 난징에서 1937년 12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30만명을 무차별하게 살해했다. 그 가운데는 8만명의 여성도 무차별하게 강간하고 살해한 것으로 기록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본은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난징리지위안소'를 만들었는데, 중국정부는 2014년에 그 생생한 기록을 바탕으로 전시관을 개설했다.

그런데도 일본정부는 그곳을 향해 어떠한 애도를 표할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역사는 어떤 얼굴로 후대를 대할지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슬픈 한을 가진 여인들은 영원히 죽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