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46엔대 하락하자 전격 엔화 매수

1998년에도 개입 효과 오래 지속 안돼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급격한 엔저를 방어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했지만 효과는 미지수라는 전망이다. 일본언론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상황에서 일본은행만 제로금리 수준의 완화적 금융정책을 유지하면서 엔화가치가 급락하자 구두개입 선을 넘어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엔화 매수에 나섰다고 평가했다.


아사히신문은 23일 "외환시장 개입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24년 만에 내놨다"면서 "지금까지 구두개입으로는 커다란 효과를 보지 못하면서 가계와 기업을 고통스럽게 하는 엔저에 강한 조치를 취한 형태다"라고 분석했다. 일본은 지금까지 엔고에 따른 수출 부진 등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해 엔화를 시장에 내다파는 시장개입은 몇차례 있었지만, 엔저로 인해 달러를 내다파는 시장개입은 1998년 이후 24년 만이다.

실제로 일본 엔화는 그동안 지정학적 위기나 전세계적 경제 침체 등의 상황에서도 안전자산으로 분류돼 엔고로 어려움을 겪었다. 예컨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적인 금융완화정책 등으로 유동성이 늘어나면서 2010년 엔화 가치가 달러당 82엔대까지 치솟자 시장에 개입하기도 했다. 이후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미국 및 유럽발 엔고 등으로 일본 정부가 단독으로 시장에 개입해 엔화가치를 떨어뜨리는 조치를 취했다.

일본 정부가 22일 오후 외환시장에 개입하면서 한 때 달러당 146엔까지 치솟던 환율이 일시적으로 142엔대에 거래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코로나19로 풀린 유동성 확대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공급망 혼란에 따른 고물가에 미 연준(Fed) 등 중앙은행이 긴축정책을 펴면서 달러화 강세와 엔화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 미 연준이 21일(현지시간) 정책금리를 0.75%p 인상하고, 일본은행은 기존 완화정책을 유지하기로 결정하면서 엔화가치는 한때 달러당 146엔대까지 추락했다.

외환시장에서는 22일 오후 5시쯤 지나면서 엔화가 몇시간 만에 5엔 가깝게 절상돼 갑자기 140엔대에 거래됐다. 이후 일본 재무성 간다 마사토 재무관은 "조금 전에 단호한 조치를 취했다"고 말해 시장개입을 시인했다. 이날 오후 6시 30분부터 스즈키 슌이치 재무상과 간다 재무관은 기자회견을 갖고 "엔화의 과도한 변동에 따라 시장개입을 승인했다"며 "(시장개입 사실을 공표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개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모두에게 알리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일본 정부의 시장개입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아사히신문은 "일본의 외화준비금은 1조3000억달러(약 185조엔) 규모로 세계적으로도 많은 수준이지만 실제로 바로 가용한 자금은 대부분 미국 국채 등 20조엔(약 1420억달러) 수준에 그친다"고 분석했다.

노무라증권 관계자는 이 신문과 인터뷰에서 "단기적으로는 투기세력 등이 달러당 145엔 이상에 배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엔저에서 엔고로 유도하려면 역부족이고 어디까지나 시간을 벌기 위한 정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줄어들거나 일본은행의 정책변경 등 큰 변화가 없으면 시장의 전환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1997년 12월 시장개입으로 달러당 131엔대에서 125엔대로 바꿨지만 이듬해 연초에는 개입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이에 따라 1998년 6월 미국과 협조를 통해 달러당 146엔대까지 하락한 엔화를 11엔 정도 절상시켜 단기적인 효과를 거뒀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에도 엔화 시세는 같은 해 8월에 들어서면서 다시 147엔대까지 추락했다.

더구나 이번 시장개입에는 미국의 협조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어서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지 의문이다. 미국 정부와 연준이 국내 수입물가 안정화를 위해 달러 강세를 계속 용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시장개입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본언론의 진단이다. 여기에 일본은행은 여전히 제로금리 정책을 지속하기로 결정해 시장개입 조치와는 다른 정책을 취해 엔화 강세장을 만들기는 난망이라는 지적이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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