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아 인천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최근 2022 역사과 개정 교육과정 시안이 발표되었고 공청회가 열렸다. 그간 민주주의냐 자유민주주의냐 등의 용어 문제가 간간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하지만 이번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서 훨씬 더 충격적인 부분은 한국사 교육과정에서 다뤄지는 전근대사(고조선에서 조선후기까지)와 근현대사(개항기~현대)의 비중이다. 교육과정 시안에 따르면 현행 교과서에서도 25%에 불과한 전근대사의 비중이 16%(전체 교과서의 1/6)로 더 축소된다. 이 분량 안에 어떻게 고조선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수천 년의 역사를 모두 담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근현대사 고등학교 교과서의 84%

개발 연구진은 중학교에서 전근대사를 충분히 다루고 있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설명했지만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사고력과 이해 수준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에 따라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다뤄야 하는 주제들도 달라진다. 그리고 10여년 이상 고등학교 역사교사로 재직한 필자의 경험상 역사 내용이나 용어 등에서 전근대사가 근현대사보다 난도가 더욱 높다. 더 어려운 내용의 전근대사를 고등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내용도 쉽고 훨씬 더 짧은 시기(약 150년)의 역사인 근현대사를 굳이 고등학교 교과서의 84%(5/6)에 걸쳐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현대사가 현실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3 학생들은 선거권을 가지고 있거나 곧 가지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현재 교육과정 시안대로라면 학생들이 수능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할 부분은 대부분 일제강점기를 포함한 근현대사에 국한된다. 고조선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장구한 우리의 민족사는 공부할 필요가 없게 된다.

현재에도 우리 아이들이 수능을 위해 암기하고 공부해야 할 내용은 세종대왕의 업적이 아닌 일본 총독들의 이름과 조선태형령 치안유지법 황국신민의 서사 등인데 앞으로는 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모르긴 해도 식민지 시기에도 한국사를 이렇게 배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재 전근대사의 비중이 25%인 상태에서도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내용이나 팔만대장경 금속활자 등의 내용이 실려 있는 교과서가 총 9종 가운데 3~4종에 불과하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는 내용도 없는 교과서가 한국사라는 과목명으로 가르쳐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민족말살정책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이것이 정상적인 한국사 교육인가? 이번 교육과정에서는 한국사 교과서를 1,2로 분권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 기준으로 1937년 중일전쟁을 설정한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설마하니 우리 역사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중일전쟁인가? 수천년의 우리 역사를 중일전쟁을 기준으로 양분하는 것이 상식적인가?

미래세대 기억에서 우리 역사 잊혀져

역사에서 시간의 길이를 무시하고 중학교에서 전근대사를 충분히 가르쳤으니 고등학교에서는 거의 안 가르쳐도 된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고조선을 제외한다고 해도 전근대사로 분류되는 시간은 근현대사보다 12배 이상 길다. 이런 전근대사를 마치 근현대사와 동일한 시간의 역사인 양 취급해 중학교·고등학교에서 비중을 서로 대칭적으로 산정하는 것이 올바른 산수인지 묻고 싶다.

요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보면 삼국의 수도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학생들이 태반이다. 한마디로 미래 세대의 기억에서 우리 역사가 지워져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해야 한다며 중국이 고구려를 연표에서 삭제한 것에는 그토록 분노하면서 정작 우리 교과서에서 우리 역사가 어떻게 가르쳐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 이래 국가에 위기가 닥쳤을 때마다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수호했던 우리 조상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