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 물리학과

10월 4일 '양자얽힘 상태의 광자를 이용해 벨의 부등식이 깨짐을 밝히고 양자정보과학을 개척'한 공로로 프랑스의 알랭 아스페(75), 미국의 존 F. 클라우저(80), 오스트리아의 안톤 차일링거(77) 세 사람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양자역학에 대해선 일반인들도 관심이 많다. 특히 양자얽힘 얘기가 나오면 '슈뢰딩거의 고양이'나 'EPR 패러독스'도 자주 소개된다. 하지만 양자얽힘을 이해하는 것은 사실 만만치 않다. 그래서 양자얽힘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법을 공개한다.

입자와 파동은 명확히 구별되는 개념이다. 딱딱한 표면을 갖는 구슬 같은 건 입자고 파도 같은 건 파동이다. 빛은 회절과 간섭을 일으키니 파동이다. 하지만 태양전지 속에서는 빛이 전자를 당구공처럼 밀어내니 입자처럼 보인다. 사실 입자냐 파동이냐의 구분은 눈에 보이는 거시세계에서만 가능하지, 원자와 같이 미시세계에서는 그런 구분 자체가 잘못됐다. 빛은 애초에 입자성과 파동성을 둘 다 가지고 있다.

미시세계의 입자는 어느 한군데 딱 있는 게 아니라 파동처럼 분포한다. 축구선수가 90분 동안 뛰어다닌 위치를 모두 합쳐보면 마치 축구장 모든 곳에 분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비슷하게 양자역학 속 입자들도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입자들의 위치를 파동함수로 표현한다.

파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중첩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입자를 파동으로 기술하면 서로 다른 상태의 두 입자가 중첩돼 새로운 상태의 입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거시세계로 예를 들면 죽은 고양이와 산 고양이의 상태가 합쳐져 죽지도 살아있지도 않은 이상한 상태의 고양이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와 같다. 그러니 중첩은 우리의 경험이나 직관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중첩은 양자역학에서만 가능한 얘기다.

양자얽힘이 못마땅했던 EPR

양자역학의 창시자들은 입자들이 여러 상태의 중첩상태일 수 있고, 관측했을 때 입자가 어떤 특정 상태로 붕괴한다고 설명했다. '붕괴한다'는 표현은 최근 한 영화에 등장해 익숙해진 단어지만, 양자역학에서의 붕괴란 여러가지 상태에서 어떤 한가지로 나타남을 뜻한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코펜하겐 해석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는 관측을 하기 전에 상태가 이미 결정돼 있어야만 정당하다고 믿었다.

'홀짝게임' 속된 표현으로 '짤짤이'라는 게임이 있다. 한사람이 동전 몇개를 손에 쥐고 그 개수가 홀수인지 짝수인지를 맞추는 게임이다. 게임이 시작되면 손에 든 동전 개수는 홀수이든 짝수이든 이미 결정돼 있는 상태다. 물론 이를 맞출 확률은 반반이다. 그리고 손을 벌려 관측을 행해야만 홀짝 상태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고전적인 확률의 세계일뿐 중첩은 아니다.

거시세계에서 굳이 중첩의 비유를 찾는다면 짜장면과 짬뽕을 예로 들 수 있다. 중국집에 가면 짜장면을 고를지 짬뽕을 고를지를 두고 고민하게 된다. 그야말로 종업원이 다가오기까진 짬짜면의 중첩상태가 된다. 그리고 종업원의 질문은 마치 관측과도 같이 이내 짜장면이든 짬뽕이든 어느 한 가지 주문으로 붕괴하게 만든다.

1935년 아인슈타인와 포돌스키, 로젠(EPR)은 양자역학의 해석에 문제가 있음을 밝히기 위해 재미난 사고실험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두 친구가 짜장면과 짬뽕을 둘 다 먹기 위해 한사람이 짜장면을 주문하면 다른 친구는 짬뽕을 주문하기로 약속했다고 해보자. 이제 이 두 사람의 서로 얽혀있는 상태가 된다. 이 경우 두 친구 모두 처음에는 짬짜면의 상태지만, 일단 한 사람이 짜장면을 외치면 다른 사람은 자동으로 짬뽕을 외치게 된다. 양자적으로 얽혀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양자얽힘이 신기한 건 이제부터다. 만약 이 두 사람이 멀리 떨어진 다른 중국집에서 주문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이때 한사람이 짜장면을 주문했다고, 다른 곳의 친구가 자동으로 짬뽕을 주문한다면 그걸 어떻게 믿겠느냐가 아인슈타인의 생각이었다. 그런 양자얽힘이 가능하려면 먼거리까지 순식간에 정보가 전달돼야 하고 그건 '귀신이 곡할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코펜하겐 해석이 틀렸다는 것이 EPR의 주장이었다.

미시세계에 양자얽힘이 실재함을 증명

양자역학적으로 얽힌 상태를 만드는 일과 EPR역설을 검증하는 것은 원리적으로는 간단하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PET)장비 같이 두개의 광자가 한 군데서 만들어져 서로 멀리 달아나는 얽힌 상태를 만들고, 한쪽 광자의 편광을 측정했을 때 다른 한쪽의 편광상태가 그에 따라 정해지는지만 알아보면 된다. 아스페와 클라우저, 차일링거는 이러한 실험을 통해 양자중첩과 양자얽힘이 실제로 미시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임을 증명했다.

EPR역설을 주장했던 아인슈타인은 틀렸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얘기했던 것처럼 귀신이 곡할 양자얽힘은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러니 이를 입증한 세 사람에게 노벨상을 수여하는 것은 지당하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