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cancel

내일신문

[문송천 칼럼]

하드웨어 편향 발상으로는 재난 못 막는다

등록 : 2022-11-29 11:41:58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이태원 참사 유족들은 "국가가 국민안전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답하라"고 했다. 요즘 길거리에서 눈을 끄는 것은 지자체마다 요란하게 내건 재난안전훈련 현수막이다.

세월호 구조에 나선 해경 해군 소방당국이 서로 다른 통신망을 쓰는 바람에 희생이 컸다는 이유로 국가재난안전통합망 구축에 나섰으나 이태원 참사에서 보듯이 실패하고 말았다. 국가 재난 대응 체계가 허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통신망 사업에 장장 7년의 공사기간과 1조5000억원이라는 거금이 투입됐으나 무용지물이 됐다. 예산은 순전히 망과 단말기에만 사용됐다.

실패의 핵심에는 완전히 수동으로 작동되는 구태의연한 방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수동이란 말의 뜻은 사태를 최초 발견한 누군가로부터 수동으로 신고 받고 또 수동으로 관계기관에 신고 사실을 전파하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자동처리방식은 사태가 자동으로 예견되고 예견 결과 데이터가 자동으로 관계 기관에 전파되는 방식이다. 자동으로 했더라면 공직자들이 근무일탈 근무태만이나 낡은 규정에 얽매어 상부 지시만 한없이 기다리는 불상사 속에서도 119나 112 자동대응이 신속하게 이뤄졌을 것이다.

재난은 예고없이 터지므로 수작업 개입 없이 자동으로 재난상황 검출에 나섰어야 했다. 사람은 실수를 연발하지만 기계는 고장은 날 수 있어도 실수는 하지 않는다. Y2K(2000년 문제. 연도의 마지막 두 자리만 사용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2000년을 1900년으로 인식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오류) 때 이렇게 기계적으로 자동처리해 대비했던 것을 몽땅 잊어버렸는가. 이런 상황에서 원천적 해법없이 뒷북치는 격의 재난안전 대응훈련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파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뒤늦게 정부가 인파관리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그것도 데이터설계를 간과하면 간단히 무용지물이 된다.

들여다보니 지금도 하드웨어 일변도 대책만 있을 뿐 데이터를 어떻게 언제 가져다 쓰며, 어떻게 설계하고, 어떻게 유통하겠다는 계획이 빠져 있다. 공직사회의 고질적인 하드웨어 편향 사고방식을 잘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예측의 핵심은 소프트웨어다. 통신장비나 통신망은 하드웨어지만 데이터는 소프트웨어다. 재난통합망은 무선통신 하드웨어는 화려했으나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지능이 완전히 결여된 단순 전화망이었다. 그래서 실패했는데도 사고방식은 여전히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짚어보면 결정적 실패 요인은 정작 중요한 재난 자동예측 데이터 형성이 무시된 채 산재한 통신망들만 서로 통하도록 설계했다는 데 있다. 재난 데이터 설계에 단돈 1원도 배정하지 않은 것은 애초 실시간 자동예측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고없이 발생하는 재난에 대비하려면 수작업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동화 기술로써 재난상황 검출에 나서야 한다. 이런 용도의 소프트웨어에서도 가장 핵심은 데이터다. 그러나 재난 대응 모의실험에서도 데이터 발원과 흐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도로 구석구석에서 폐쇄회로를 통해 수집되는 실시간 데이터는 무척 많다. 그걸 추려 재난망에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돌아다니게 하면 된다. 그런데 그런 공공 데이터가 사회안전에는 전혀 활용되지 않았다는 점이 놀랍다. 일자리 창출이란 이유로 기업에게 상용으로 제공되는 데 그치는 현실이다. 사회안전은 뒷전이고 누군가 수익을 챙기는 상행위에 공공데이터가 쓰인다면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과시라도 하듯 지자체마다 빅데이터연구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간단한 공공데이터조차도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쪽으로 먼저 사용하는 데에는 무심해왔다.

참사 이후 인명을 경시하는 풍조에 대한 반성이 지금까지 어디서도 한번도 없었던 점은 대단히 심각한 일이다. 기껏해야 컨트롤타워 운운하며 정치적 시위만 난무하고 있으니 재난 참사는 또 재발할 것으로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데이터 토대로 한 자동대응 시스템 구축

요새는 스포츠도 경기 현장에서 데이터를 토대로 실시간 작전을 구사하는 시대다. 기계적으로 사고 가능성을 자동 진단해 순간 대응하는 방법을 쓸 수 있는 세상이다. 이런 처리는 어렵지 않다. 수십억원 이내 예산에 단기간으로도 충분히 개발 가능한 작업이다.

비용도 얼마 안들지만 실시간 재난통신망의 핵심 중에 핵심인 까닭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기존 규정에 얽매어 졸속 개선에 머물 것이 아니라 전문가를 찾아 자문을 구해야 할 것이다. 특히 데이터 전문가를 프로젝트 인력의 핵심으로 포함해야 한다.

하드웨어만 중시하고 데이터를 경시하는 경직된 사고방식 아래서는 인파관리시스템을 새로 만들어본들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자동화 방법이 있는데도 하지 않는다면 공직사회의 직무유기일 뿐이다. 그렇게 되면 현 정부도 전 정부와 하나도 다른 점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문송천 카이스트 교수

twitter   facebook   kakaot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