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민 이젠파트너스 대표이사, 공학박사

영국은 재생에너지 및 에너지 신산업 부문에 민간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10여년 전 용량시장(Capacity Market)과 장기차익계약제도(CFD, Contracts for Difference) 등을 도입했다. 용량시장이란 전력을 경매로 공급하는 시장이다. 낙찰자는 용량을 제공하고 시장에서 수익을 얻는다. CFD는 기준가격(영국 평균 전력시장 전력판매가격)이 권리행사가격(투자비를 반영한 전력생산가격)보다 낮을 경우 정부가 발전사업자에게 차액을 지원하고 반대일 경우 발전사업자가 차액을 정부에 반환하는 제도다. 이 메커니즘은 전력산업 민영화 환경에서 이루어졌고 전력망 설비 보강과 현대화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2020년 말 혹한기 겨울, 코로나19 격리해제 후 빠른 소비 증가, 2021년 여름 풍력 발전량 감소, 2022년 2월부터 러시아 경제제재로 인한 가스공급 경색 등 일련의 사건들은 가스 가격의 유례없는 급상승을 초래했다.

이 상황에서 영국의 가스 및 전기가격 규제기관인 오프젬(OFGEM)은 소비자 보호를 위해 전기가격상한제를 시행했다. 이로 인해 다수 민간 가스 발전 기업들이 파산했다. 전력 기업들의 파산으로 인해 공급이 줄어들면서 전력의 시장가격 상승압력은 더 높아졌고 그 부담은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됐다. 시장 메커니즘으로 재생에너지 및 에너지 신산업 성장을 유도할 수 있었으나 바로 그 시장의 역동성은 통제가 불가능한 사회적 혼돈을 초래한 셈이다.

시장 메커니즘에만 맡길 경우 혼돈 초래

에너지안보란 에너지 공급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차질없이 이뤄지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동안 한국의 전력가격은 국제 연료시장의 급격한 변동에도 유럽과 달리 합리적인 변동폭을 가지고 소비자들에게 전기를 공급해왔다.

유럽의 에너지안보 문제는 한국 전력산업 생태계의 구조개혁 모델에 대한 새로운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다. 장기적으로 복잡하면서도 역동성 있는 전력산업의 발전을 견인하는 과정에서도 우선 고려해야 하는 것은 전력 계통의 안정성과 에너지안보다.

수요지(주로 수도권)와 멀리 떨어진 지방에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소 건립을 확대하는 것은 분산전원 및 수요제어 활성화를 통한 탄소중립형 전력산업 생태계 구축과는 다른 맥락이다. 이것은 전력산업 구조혁신을 위한 동인이 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전력산업 구조혁신이 필요한 것은 지역 분산형 전력시장에서의 유연성 자원 확대, 운영※기술 발전,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사업 참여 때문이다.

유럽의 에너지안보 문제는 시장의 고유의 특성이 나타낸 것으로 전력시장 구조의 문제라 볼 수 없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전기요금을 정부가 아닌 시장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장기적으로 산업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 정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전 부문의 민간기업 혹은 지역 기반 재생에너지 발전 시민 협동조합 등이 참여할 수 있다. 이 민간 발전사들은 전력망에 무탄소 발전의 확산에 기여할 수 있으나, 에너지 연료 시장의 비정상적 급등락 혹은 날씨에 의해 수익성이 떨어져서 파산을 할 수도 있다.

에너지 공급안정과 소비자 보호를 위해 대체 공급원이 준비되어야 하며 이 역할은 공기업인 한전이 맡아야 할 것이다. 한전과 발전사가 분리됐던 1단계 혁신과정에서는 소규모 발전 민간기업의 참여와 유연성 시장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지 않았다. 전력 공급의 안정성과 에너지 위기 후의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해서 발전 송전 배전을 일원화한 공기업의 지원이 효과적일 수 있다. 공급망의 안정화는 현재 한전 자회사 성격의 발전사 역할이 될 수도 있다. 어쨌건 이들 발전사에 대한 관리를 한전으로 일원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간기업 참여시키되 공기업에 역할 부여

향후 재생에너지 및 무탄소형 전력 수요·공급의 유연성, 전력시장에서 민간 기업의 혁신성과 추진력을 활용하는 한편, 전력망을 총괄관리하는 공기업의 안정성으로 역할을 분담한다면 도전적인 상황에서도 지속가능한 전력산업 생태계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역 발전과 전력망 운영에서 대두될 지역 분권화에서의 정보제공이나 기술지원에서도 수직 체계로 통합 일원화된 전력 운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적극 고려할 만하다.

김재민 이젠파트너스 대표이사,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