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상고심사제' 도입 입법의견

6년간 대법관 4명 증원방안도 제안

지난 30여년간 사법부의 최대 관심사는 상고제도 개선이었다. 우리나라 사법제도의 근간인 3심제의 최종심으로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최고법원이자 법률심으로서 대법원의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법관 1명이 1년 동안 맡는 주심 사건만 4000건이 넘는 상황에서는 국민들의 재판받을 권리를 제대로 보장할 수 없는데다 대법원도 자기 역할을 하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대 대법원장들이 끊임없이 노력해 왔으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에는 무리하게 이를 추진하다 사법농단 사태를 겪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 30년여년간 진행돼온 상고제 개선 과정과 입법의견으로 제시된 상고심사제, 이에 대한 법조계의 반응 등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대법원은 법령의 해석 및 적용에 있어서 객관적·통일적 기준을 설정해 하급심과 국민의 법률생활에 예측 가능한 지침을 제공하는 최고법원으로서의 지위를 가진다.(헌법 제101조 제2항, 법원조직법 제11조). 또 법치에 근거한 갈등의 종국적인 해결과 사회통합의 방향을 제시하는 법률심의 역할을 수행한다.(민사소송법 제423·432조, 형사소송법 제383조) 이와 함께 법률관계를 신속하게 확정해 정당한 당사자의 권리를 조속히 실현하는 한편, 분쟁이 계속되는 불안정한 상태를 적시에 해소할 필요가 있다.

◆상고사건 급증 현황 = 1990년 8월 상고허가제가 폐지된 후 상고사건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사건처리 지연과 상고의 남용 등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1994년 9월 현행 심리불속행제도가 도입됐다. 그럼에도 상고사건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2022년 상고심 본안사건 접수건수는 5만2480건으로 1994년 1만2604건 대비 4배가 넘었다. 산술적으로 2022년 기준 대법관 1인당 주심 사건은 1년에 약 4036건, 비주심사건까지 포함하는 경우 1년에 약 1만6144건을 처리해야 하는 실정이다.


대법원이 법률심인데도 불구하고 1·2심과 같은 사실심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이유로 상고사건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법조계 일각의 분석도 나오고 있다.

상고사건 증가로 대법원은 법령의 해석 및 적용을 통일하는 최고법원으로서의 기능과 목적을 달성하는데 어려움이 큰 상황이다. 또 과도한 사건 처리 부담으로 매 사건에 투입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구체적 정의의 실현이 지연되고 당사자의 법률관계가 상당 기간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현행 심리불속행제도는 대법원의 법률심으로서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사실상 유일한 수단으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개개 사건에 대해 실질적인 심리를 하면서도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서에는 그 이유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아 충실한 상고심 재판을 받지 못했다는 당사자의 인식과 불만이 적지 않게 제기돼 왔다. 이는 상고심의 신뢰를 저하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상고제 개선 위한 다양한 시도 = 대법원은 상고제도 개편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으나 30여년 동안 제도 개선을 이뤄내지는 못했다. 1981년부터 1990년까지 실시된 바 있는 '상고허가제', 참여정부 시절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와 대통령 자문기구인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제 17대 국회에 제출한 '고등법원 상고부' 방안을 담은 법률안이 제출되기도 했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제20대 국회에서 금태섭 의원이 2018년 11월 5개 고법에 8개 '상고심사부' 설치와 심리불속행제 폐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전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으나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011년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는 14명인 대법관을 20명으로 증원해 사건 처리 적체를 완화하겠다는 안을 내놨지만 역시 최종 입법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대한변호사협회의 '이원적 구성'(대법관 10명 이내+대법원판사 40명 이내) 방안, 제19대 국회 홍일표 의원이 2014년 발의한 '상고법원' 방안 등도 있다. 전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박근혜정부 시절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재판 거래를 했다는 '사법농단'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해 6월 '상고제도 개선 실무추진 TF'를 구성하고 상고제도 개선에 다시 불을 붙였다. 앞서 사법행정자문회의가 지난해 5월 "대법원 '상고심사제' 도입과 대법관 증원 방안을 혼합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자문의견을 제시함에 따라, TF는 지난달 첫 연구 성과로 상고심사제 도입과 대법관 증원 등 구체적인 운영 방안을 내놨다.

◆상고심사제 제안 = 이에 대법원은 상고사건 심판의 본질적 부분이 대법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국민적 기대를 충족하면서도, 상고심 실질심리 사건의 선택과 집중, 재판의 실질과 형식의 일치를 위한 방안으로 상고심사제를 새로 도입키로 했다. 또한 현행 심리불속행제도를 폐지하고, 대법관의 수를 4명 증원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상고심 관계법(민사소송법·형사소송법·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법원조직법) 개정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입법의견의 핵심은 상고사유(법정상고와 심사상고)를 심사해 이에 해당되면 본안심사를 거치겠다는 것이다. 상고사유에 적합하지 않을 경우 상고기각 처리하는 것이다. 대신 기존 심리불속행제도를 폐지한다. 상고기각 처리는 사실상 심리불속행과 비슷한 효력을 갖지만 심리불속행에서 제시하지 않던 이유를 판결문에 첨부해 국민들의 불만을 일부라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상소의 유형을 법정상고와 심사상고로 구분한다. 법정상고의 경우 명백성 심사를 통해 법정상고사유에 해당하지 않음이 명백한 경우 외에는 본안심리를 진행한다. 심사상고의 경우 '대법원의 판단이 필요한 사건'인지 여부를 심사해 해당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에만 본안심리를 진행한다. 적법한 상고이유 포함 여부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기 위해 본안 절차와 본안 전 심사 절차를 명확히 구별하고 있다.(그래프 참고)

◆남은 문제 = 상고심사제 도입과 대법관 4명 증원 방안에 대해 어느 정도 찬성하면서도 증가하는 상고사건 해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일부 법조계의 우려도 있다.

특히 대법관 4명 증원은 너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민사소송법 대가인 이시윤 전 헌법재판관은 "독일의 경우 사건이 우리 대법원에 비해 4분의 1밖에 안되는데 (연방일반대법원의) 대법관은 128명"이라며 "우리가 대법관 수를 4명 늘린다고 해서 양질의 재판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설명했다. 천주현 변호사(법학박사)는 "형사사건까지 상고심사제가 도입될 경우 국민의 가장 중요한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와 재판청구권 침해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원조직법을 개정하면 대법관 증원이 어렵지 않다"며 "(4명만을 증원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력과 사상을 가진 사람이 대법관이 되도록 인원을 많이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남는 문제는 입법이다. 결국 상고제도 개편은 국회에서 여야 합의를 거쳐 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는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협치보다는 대결 구도로 여야 정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편 대법원장이 입법의견을 제출하면, 국회의장은 법제사법위원회에 입법의견을 송부하게 된다. 법사위의 입법의견에 대한 검토가 끝나면 이를 국회의장에게 보고하고, 국회의장은 그 검토결과를 대법원장에게 통보하게 된다. 만약 법사위가 검토한 결과 별다른 이견이 없으면 법사위원회안으로 입법 발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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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오승완 안성열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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