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금리 상승에 10년 초저금리 후퇴 가능성 … '엔 캐리트레이드' 자금 흐름 촉각

노무라총합연구소는 지난 18일 '일본은행의 4월 정책결정회의 주목'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오는 4월 8일 구로다 하루히코 현 총재가 물러나고 신임 총재가 주재하는 첫 회의에서 금융완화정책의 전환이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23일 '일본은행의 거짓말은 몇번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라는 보도를 통해 10년에 걸친 일본은행의 금융완화정책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은, 은행에 돈 빌려주며 국채 매입 종용

일본은행은 최근 민간은행에 일정한 담보를 조건으로 1조엔 규모의 자금을 빌려줬다. 이들 민간은행이 일본국채 5년물 등에 투자하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공개시장조작'이라는 것이 일본 언론의 분석이다.

닛케이는 23일 "일본은행이 금융기관에 국채 매입을 위해 자금을 빌려주는 것은 시장기능을 개선하는 목적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금리(수익률)곡선의 왜곡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은행은 2013년 4월 구로다 총재가 취임한 이후 첫 회의에서 금융완화정책을 전격 시행했다. 아베 전 총리가 추진한 아베노믹스의 이른바 '3개의 화살' 가운데 하나인 '금융완화정책'에 시동을 걸면서 정책금리를 마이너스 수준으로 인하하고, 장기 국채금리의 상한을 일정한 수준에서 유지하기 시작했다.

일은의 이러한 금융완화정책은 구로다 총재 임기 10년간 지속됐다. 단기금리를 마이너스 0.1% 수준으로 묶어두고, 장기국채금리(10년물)의 상한을 0.25%로 하는 수익률곡선통제(YCC) 정책으로 금융완화정책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와 유럽중앙은행(ECB) 등 각국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빠르게 올리고 양적완화(QE)를 축소하면서, 일은의 YCC정책은 중대한 기로에 섰고, 이러한 조짐은 갈수록 심화하는 양상이다.

실제로 일은이 일본 국채 10년물에 대한 YCC를 지난달 20일 0.25%에서 0.50%로 올린 이후 새해 들어 시장에서는 4거래일 연속 상한을 넘어서는 등 금리 상승흐름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은행은 이달 들어서만 17조엔(약 161조원) 넘는 규모의 국채를 매입했다. 문제는 일은이 10년물 국채를 무제한 매입하면서 단기 채권금리가 상승하는 등 시장왜곡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결국 일은의 이번 민간은행 대출은 은행들에게 5년물 등의 채권을 사들이게 하면서 금리를 안정시키려는 목적이라는 평가이다.

우에노 야스나리 미즈호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중앙은행이 민간은행에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것은 보조금의 성격"이라며 "국채를 사기 위해 자금을 대출하면 시장왜곡이 생겨난다"고 했다. 구로다 총재는 18일 현행대로 장기금리를 0.50% 수준에서 묶어두는 정책을 지속하기로 결정하면서 "YCC정책은 지속 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시장의 예상은 거꾸로다.

닛케이는 YCC 정책이 유지되기 힘든 이유로 두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당국자 발언에 대한 신뢰 문제다. 구로다 총재가 지난달 장기금리 상한을 0.50%로 올린 이후에도 "YCC 출구전략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시장은 믿지 않는다는 점이다. 투기세력은 YCC 종료를 점치면서 국채를 내다판 것이 이를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당국자가 리스크를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금리의 일반적인 규칙과 원리가 사라진 일본경제는 채무의 팽창 등으로 위험천만한 균형을 이어가고 있다.

가와무라 사유리 일본총합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주요국의 금리가 오르는 가운데 일본만 장기금리를 낮은 수준에서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일은의 국채 무제한 매입도 한계가 있다"며 "일은이 완강히 완화정책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이면 시장에서 옹고집으로 판단해 엔화를 매도하면 다시 엔저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노무라, 4개의 금융완화 후퇴 시나리오

노무라총합연구소는 이달 18일 보고서에서 YCC 정책 변경 시나리오로 ①변동폭을 0.50%에서 0.75% 또는 1.00%로 상향 조정 ②YCC 상한을 사수하려는 의지를 약화 ③YCC 변동폭을 폐지하는 정책 ④YCC 정책 자체를 폐지하는 정책 등 크게 4가지를 들었다. 그러면서 ①번부터 순서대로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다만 노무라연구소는 ①번 정책은 시장의 추가적인 정책변경 기대로 금리상승만 부채질할 수 있기 때문에 아예 YCC 변동폭을 없애거나 이 정책 자체를 폐지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일은의 기존 정책 수정 또는 폐지가 가져올 금융시장의 변동성이다. 일은의 정책변경은 곧 바로 △엔고로의 전환 △장기국채금리의 상승 △주식시장의 하락 △기타 금융시장에 미치는 악영향 등을 피하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이에 따라 일은이 급격한 정책 전환을 취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노무라는 현행 마이너스 정책금리의 철회 시점은 2024년 중반 이후에나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노무라연구소는 ①번 정책 변경 시점을 차기 일은 총재가 취임한 이후로 내다봤다. 이 연구소는 "일은의 차기 정책행동으로 가장 관심있게 지켜볼 대목은 새 총재가 들어선 이후 첫 정책결정회의가 열리는 4월 27~28일"이라며 "여기서 2% 물가목표를 좀 더 장기적인 목표로 전환하고 금융정책의 자율성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2% 물가안정 목표나 금융완화 정책의 수정은 자민당 내 아베파를 중심으로 한 보수그룹이 강하게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한편 정책 변경 가능성은 일은 내부에서도 나왔다. 지난 23일 공개한 12월 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YCC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 위원은 "YCC 정책의 운용 개선은 시장기능의 개선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해 시장기능의 회복이 급선무라는 점을 시사했다.

일본 금리인상이 불러올 파장

일본은행이 4월 이후 새 총재가 들어선 이후 기존 극단적인 완화정책을 수정할 경우 가져올 파장은 불투명하다. 다만 금리가 낮은 일본 엔화자금이 전세계에서 일본으로 회귀할 가능성도 나온다. 일본 재무성이 지난해 5월 발표한 '일본 대외순자산'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일본의 해외 채권과 증권, 파생상품 등 대외 금융자산은 614조1530억엔(약 4조7242억달러)에 달한다.

아직 지난해 말 기준 대외 금융자산의 규모는 나오지 않았지만 2021년 말 기준 엔·달러 환율(약 115엔)과 지난해 말 환율(약 130엔)을 기초로 추산하면 대외 금융자산의 엔화 환산 가치가 크게 늘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일본의 금리상승과 이에 따른 엔화가치 상승은 대외 금융자산의 엔화 환산 가치가 하락하는 것이어서 국내로의 유입 요구가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초저금리인 일본 엔화를 구입해 금리가 높은 다른 나라의 통화로 바꿔 해외 채권과 주식 등에 투자해 단기 수익을 올리는 '엔캐리트레이드'가 약화될 수 있다. 금리상승으로 엔화 조달금리가 높아지면 다른 나라와의 금리스프레드가 축소돼 수익성이 떨어지고, 여기에 환율까지 하락하면 환차익에 대한 기대도 줄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간 전세계적인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상대적으로 줄어든 엔캐리트레이드 자금이 지난해부터 다시 확대되는 추세였다. 이 자금이 일본으로 역류할 경우 전세계 금융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일본 금융시장에서는 엔 캐리트레이드로 추산되는 거래 규모가 역대 최대였던 2007년 23조4000억엔(약 222조원) 이후 줄었다가 지난해 중반 13조엔(약 123조원) 규모를 넘어 200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일본은행이 장기국채금리 상한을 0.50%로 상향한 후 엔·달러 환율이 140엔대 후반에서 130엔 안팎 수준으로 하락하자 우리나라에서도 대규모 엔 케리트레이드 청산에 대한 우려가 나왔지만 당장 확산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금융센터는 지난해 12월 보고서에서 "일본은행의 YCC 조정으로 엔 캐리트레이드 청산 가능성이 일부 제기되고 있다"며 "본격적인 청산의 시발점으로 보기에는 시기상조이고, 조달과 운용 측면에서 보다 근본적인 여건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다만 향후 일본의 금리인상과 엔화가치의 일시적 폭등에 따른 금융시장의 변동 가능성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오건영 신한은행 팀장은 "일본 금리가 조금 오른다고 다른 나라에서 자산이 대거 빠져나오지는 않는다"면서도 "시장에서 앤캐리트레이드 청산이 가속화되면 불안감이 증폭될 수 있기 때문에 올해 금융시장에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이슈"라고 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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