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서 잇단 총기 난사 사건 … 올들어서만 40번 가까이 발생, 사상자 속출

미국의 새해가 잇단 총기 사건으로 피로 얼룩지고 있다. CNN 방송은 23일(현지시간) 미국내 총격사건을 추적하는 비영리단체 '총기폭력 아카이브'(Gun Violence Archive) 자료를 인용해 올 들어 현재까지 총 38번의 '총기난사'(mass shooting)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여기에는 음력 설 전날인 지난 21일 최소 11명의 사망자가 나온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 파크 총격사건, 그리고 같은 날 오후 캘리포니아 해프문베이 외곽 농장 지역에서 7명이 숨진 총격사건도 반영됐다. 이 단체는 총격범을 제외하고 죽거나 다친 피해자가 4명 이상일 경우 단순 총격이 아닌 총기 난사 사건으로 분류한다.

CNN은 "관련 집계가 시작된 이후 역대 최고치"라며 "3주간 38번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게 2023년의 미국"이라고 꼬집었다.

23일 미국 캘리포니아 몬테레이 공원 인근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총기 난사로 11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을 입은 현장에서 시민들이 꽃을 놓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총기 폭력 아카이브에 따르면 올들어서만 23일까지 전체 총기 관련 사건·사고로 총 2720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자살이 1518명, 살인·과실치사·정당방위 등으로 인한 사망이 1202명이다. 연령대별로는 0∼11세 어린이가 21명, 12∼17세 청소년이 100명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4일 캘리포니아주에서 최근 두 번째로 발생한 해프문베이 총기 난사 사건과 관련 성명을 내고 공격용 무기를 금지하는 입법을 위해 의회가 조속히 행동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서 전날 일부 상원 의원들이 공격용 무기 사용을 금지하고 공격용 무기 구매 제한 연령을 21세로 높이는 법안을 재발의한 사실을 언급한 뒤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총기 폭력의 재앙을 막기 위해서 더 강력한 조치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전날인 23일에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플로리다주 연설에서 "무분별한 총기 폭력으로 공동체가 갈기갈기 찢기고 있다"며 "이런 폭력은 멈춰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이 성명을 낸 바로 그날(24일) 새벽에도 워싱턴주의 한 편의점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해 3명이 사망했다. 미국 경찰은 이날 오전 3시 30분께 워싱턴주 야키마의 서클K 편의점에서 21살 용의자 저리드 해덕이 총기를 난사해 현장에서 3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맷 머리 야키마 경찰서장은 "무차별 총격 상황으로 보인다"며 해덕이 편의점 안에서 총을 쏜 뒤 승용차를 타고 달아났다고 밝혔다.

미국의 총기사건은 고질적인 문제지만 총기제도와 관련한 미 의회의 분열, 서로 다른 정책처방, 총기문화에 대한 인식 차이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여기에 미국내 최대 로비단체로 알려진 전미총기협회(NRA)의 강력한 로비 등이 맞물리면서 총기 규제 정책의 실효성은 늘 의심받아 왔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다.

미국소아과학회가 지난해 12월 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24세 이하 미국인들의 사망 원인 1위가 총기 관련 부상으로 분석됐다.

총기 규제를 지지하는 비영리단체 '에브리타운 포 건 세이프티'에 따르면 2015∼2020년 미국에서 18세 이하 어린이들로 인한 오발 등 의도하지 않은 총격 사고가 최소 2070건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765명이 숨지고 1366명이 다쳤다.

미국의학협회(AMA) 학술지 'JAMA 네트워크 오픈'은 1990∼2021년 총기 때문에 숨진 이가 총 110만명 이상이라고 집계한 바 있다.

이 같은 배경에는 총기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미국의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스위스 국제 무기조사 기관 '스몰 암스 서베이'에 따르면 미국에는 개인이 소유한 총기가 약 3억9300만정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미국인 100명당 120정 꼴로, 사람보다 총기 숫자가 더 많은 셈이다. CNN은 미국이 강력한 입법으로 총기 사망자를 줄인 각국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영국은 1996년 이후 총기 개인 소지를 금지한 뒤 관련 사망자가 향후 10년간 4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고, 호주는 최악의 총격사건 발생 후 2주도 지나지 않아 속사총기와 산탄총을 금지하고 총기면허 관리를 강화하는 조치를 단행해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였다. 남아공과 뉴질랜드도 강력한 규제 입법을 도입한 바 있다.

CNN은 "우리만 혼자다. 미국의 총기 문화는 세계적으로 특이하다"며 "현재로서는 치명적인 폭력의 악순환이 당분간 지속될 운명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정재철 기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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