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기 이후 제출하겠다 하니 과태료 통지

소기업·자영업자 조사엔 '실비지급' 해야

자료제출 비용지급 근거규정·예산도 없어

경기도 파주시에서 의류소재 관련 소기업을 운영하는 A씨. 요즘 머리가 아프다. 최근 과태료 대상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밤잠을 설쳐가며 일한 죄밖에 없다는 A씨. 평생 생각도 안해 봤던 '정부통계와 국민의 의무'란 주제까지 고민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통계청 직원이라며 회사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A씨가 운영하는 소기업이 '온라인쇼핑 실태조사' 표본으로 선정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최근 3년치 매출결과를 매월 모바일과 인터넷판매 등으로 분류해 통계자료로 제출해달라고 했다. 나중에 공문도 보내왔다.
브리핑하는 한 훈 통계청장│한 훈 통계청장이 지난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도 통계청 주요업무 추진계획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 통계청 제공


◆3년치 전표 일일이 확인해야 = 막상 자료를 정리하려고 보니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이 회사 매출실적은 세무사에 의뢰해 매달 집계한다. 이를 근거로 국세청에 세무신고도 하고 있다. 하지만 통계청이 요구하는 자료는 이것으론 부족했다. 매달 매출을 건건이 분류해 모바일과 인터넷 매출로 나눠 새로 집계를 내야 한다. 그러려면 3년치 매출전표를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직원 몇명이 매달려 3~4일은 야근을 해야 만들 수 있는 자료였다.

더구나 10월부터 3월까지는 이 업체의 극성수기다. 직원은 10여명이 넘지만 대부분 온라인 주문처리와 배송에 매달려야 한다. 관리 직원이 있지만 영세기업이어서 경리일만 보는 것도 아니다.

2~3일이 멀다하고 독촉하는 통계청 직원에게 "성수기가 끝나는 3월 이후로 제출시기를 늦춰 달라"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통계청 사정상 1~2달 내로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린 일손이 없다. 데이터를 줄테니 통계청 실무자가 직접 와서 자료를 분류해가라"고도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결국 경리직원이 며칠을 짬짬이 일해 2022년 1년치 통계를 만들어 보냈지만 더 할 엄두는 못냈다.

◆"업무 포기하고 자료제출?" = 그러자 올 1월 통계청은 과태료 부과예고 통지서를 보내왔다.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A씨는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자료제출을 거부한 것도 아니고 짬이 나는 시기까지 기다려 달라고 하는데 돌아온 것은 '과태료 예고장'이었다. 통계작성 실비라도 준다면 임시직을 쓰거나 관리직원에게 보너스라도 주며 '야근'을 독려할 수라도 있겠다. "왜 이 성수기에 정부통계를 위해 내 일을 포기해야 하고, 과태료 통지까지 받아야 하나?" A씨의 항변이다.

A씨처럼 단순설문을 넘어서 시간과 인력을 들여 자료를 만들어야 하는 통계에는 '적정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를 들면 인구센서스 조사와 같은 경우는 10~20분 간단한 설문조사면 된다. 하지만 온라인쇼핑통계조사와 같은 소기업이나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통계조사 방식에는 보완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A씨는 "통계청 요구대로 하려면 결국 직원들에게 근무시간 외 과외업무를 줘야 하는데 그 비용은 정부가 내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관련 예산 없어 난감 = 통계청은 A씨 사례에 대해 "개인 사정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답변해왔다. 30일 통계청 관계자는 "온라인쇼핑조사의 경우 1000개 업체를 표본으로 선정하는데, 일정 매출 이상 기업은 전수조사대상이고 나머지는 임의표본을 선정한다"면서 "아마 A씨 기업은 전수조사대상일 것"이라고 했다. 전수조사 대상 기업은 긴급한 사정이 없는 한 표본 교체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통계 표본을 여러 사정으로 교체하게 되면, 통계결과의 객관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며 "통계조사 기간도 마감이 있어 3월 이후 자료를 내겠다는 요청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우리도 이런 경우 실비를 지급하고 싶지만, 근거규정도 없고 관련예산도 없는 실정"이라고 했다.

한편 통계법은 통계청장의 자료제출 요구에 따른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최대 100만원까지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통계청이 실제 과태료를 부과한 경우는 매년 20여건 남짓하다. 지난해에는 18건, 2021년 22건, 2020년 16건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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