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목 좋은 거리마다 걸린 정당현수막을 보고 '우리 정치의 민낯을 보는 것 같다'며 혐오감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수막은 정당정책을 설명하는 내용보다는 상대방을 비방하는 문구로 가득 차 있다. 전국 지자체마다 수백 건의 철거민원이 접수되고 있지만 이런 저질 현수막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올해 들어 갑자기 정당 현수막이 늘어난 것은 정당활동을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각 당의 정책이나 현안에 대한 입장을 현수막에 담을 수 있도록 한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통과됐기 때문이다. 개정된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정당정책, 정치적 현안을 담은 현수막은 정당의 명칭과 연락처, 설치업체의 연락처, 표시기간만 기재하면 된다. 지자체에 별도의 신고나 허가를 받지 않아도 15일 동안은 자유롭게 게시할 수 있다. 이 현수막에는 각 정당의 지역위원장이나 그 직을 겸하는 국회의원의 직위 성명을 포함할 수 있지만, 지방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일반 당원은 안된다. 사실상 국회의원들만을 위한 법 개정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 현수막 철거민원에 지자체들 몸살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는 형평성을 잃었다는 점이다. 소상공인 등 일반 국민들은 돈을 내고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 지정된 장소에만 게시할 수 있지만 정당현수막은 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 게시대가 아닌 곳에 걸어도 되고, 개수 또한 마음대로다.

이런 까닭에 교차로와 가로등에도 정당현수막이 걸려 보행자와 차량의 안전을 위협하는 실정이다. 실제 일선 지자체에는 정당현수막이 상호를 가린다는 민원이 쇄도했다. 현수막이 교차로 신호등을 가리거나 운전자와 보행자의 시야를 가려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심지어 사고취약지역인 어린이보호구역에 설치된 정당현수막도 많고 안전표지나 이정표를 가리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내용 또한 애초 취지와는 달리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을 다룬다기보다는 상대 당을 비방하거나 인신공격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선관위는 정당법 제37조 '통상적인 정당활동 범위'에 대한 판단기준이 모호해 현수막 문구를 제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선거 180일전부터 선거당일까지 현수막 등을 금지한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현수막은 더욱 극성을 부릴 전망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반국민들의 철거민원에 시달리는 지자체들만 몸살을 앓는다. 다행히 지자체들은 정당현수막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다. 현재 지자체들은 '국민들이 공감하는 수준에서 정당 현수막의 규격 수량 위치 등 세부기준을 마련해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의 난립을 막아야 한다'며 옥외광고물법과 시행령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지자체들이 마련한 가이드라인에는 △정당현수막 게시수량 제한 △신호기 도로표지 CCTV앞 어린이·노인·장애인 보호구역 등 현수막 설치금지 △정당현수막 크기와 글씨 크기 제한 △설치 전 관할 자치단체 통보 등이 포함됐다.

지자체들은 중앙선관위에 '통상적인 정당활동 범위'의 판단기준에 대한 유권해석도 요청해 놓은 상태다. 옥외광고물법 제5조에 따라 보행자와 차량의 안전을 위협하는 정당현수막은 즉시 철거하겠다는 입장도 세웠다.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도 그간 모르쇠로 일관하던 것과 달리 지자체의 의견을 수렴해 의원입법 형식으로 법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국민 불편 주는 옥외광고물법 개정에 나서길

하지만 법 개정의 칼자루를 취고 있는 정치권이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문제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다. 여론이 들끓자 마지못해 일부 국회의원이 수량과 규격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냈지만 지자체 안에 크게 못 미치는 내용이어서 '국회가 사안의 심각성을 알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입법부는 말 그대로 '법을 만드는 곳'이다. 국민 생활에 도움을 주는 입법을 해야 한다는 전제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국회의원 또한 입법부의 구성원으로 일반 국민과는 다른 특권을 부여받는다. 이는 그 직무를 독립적이며 자유롭고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이지 일반 국민과 달리 특혜를 줘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누구를 위한 국회인가. 정당현수막은 분명한 특혜다. 국회는 더 이상 국민의 불편함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서둘러 옥외광고물법 개정에 나서기 바란다.

홍범택 자치행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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