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단편적 기술로는 지구 순환구조 영향 판단 못해 … 자연환경 급변 이겨낼 '체제 전환' 함께 이뤄져야

기술이 인류를 구원할 것인가.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13일(현지시간)부터 19일까지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열린 제58차 총회에서 기후재앙 최후방어선인 1.5℃가 2040년 안에 뚫린다는 암울한 전망(제6차 평가보고서 종합보고서)을 내놨다. 온난화로 2011~2020년 전지구 평균 온도는 산업화(1850~1900년) 이전 보다 1.09℃ 올라간 상태다.

사진: AFP연합뉴스


IPCC는 인류에게 닥친 대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기후탄력적개발'(CRD)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리곤 향후 10년간 온실가스 감축과 적응의 시너지를 가능하게 하는 우리의 선택이 기후탄력적개발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기후탄력적개발이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과학기술뿐만이 아니라 경제체제 세계관 사회구조 권력관계 등을 담대하게 전환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온실가스 완화 혹은 적응을 위해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 전환점에 놓일 때마다 각 과정에서 탄력적으로 최적의 경로를 탐색한다. 이때 기술은 인류의 선택을 좀 더 원활하게 해주는 윤활유 역할을 하게 된다.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해 우리나라가 택한 윤활유들 중 하나는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CCUS)이다. 정부는 21일 이러한 내용을 담은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2023~2042년)안을 발표했다.

24일 박지혜 플랜 1.5 변호사는 "CCUS 개발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2030년 감축 목표(2018년 대비 40% 감축)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게 문제"라며 "기초·응용연구 단계로 상용화까지 불확실성이 높고 국내 CCUS 저장 공간이 부족한 한계를 단기간에 극복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1년 기후기술 산업통계'에 따르면 기후기술 산업별 매출액 중 CCUS 부문(온실가스 고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4.3%에 불과했다.

CCUS란 △에너지, 산업 공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직접 또는 전환해 고부가가치 소재나 제품으로 활용하는 기술인 CCU와 △이산화탄소를 포집·저장하는 CCS 기술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22일(현지시간) 열린 '세계 물의 날' 행진에서 한 시위자가 '기후가 아니라 체제를 바꿔라'라고 적힌 손 팻말을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추가 에너지 투입 문제 해결해야 = 세계는 이미 경쟁적으로 CCUS 기술 개발에 나섰다. 유럽연합(EU)은 의무사용 재생 연료 범위에 CCU 연료를 포함하고 주요 연구개발(R&D) 프로그램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기술 개발 중이다.

미국 역시 '45Q Tax Credit' 정책으로 CCUS 시설에 세액공제 혜택을 확대하는 등 다양하게 지원책을 펼치고 있다. 노르웨이는 세계 최초로 이산화탄소 대염수층 저장에 성공, 약 30년 동안 해당 프로젝트를 수행할 계획이다.

국가녹색기술연구소의 '탈탄소 사회 전환을 위한 CCUS 산업생태계 육성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는 "탄소배출이 높은 산업군은 △철강(25%) △시멘트(25%) △화학 및 석유화학 제품(30%)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 모두 우리나라가 선도하면서 수출중심으로 이뤄지는 산업군"이라며 "CCUS 개발과 투자에 대한 대책은 전략적으로 불가피하다"고 언급했다.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CCUS 개발은 필요하다. 그린수소(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물을 전기분해하여 만드는 수소)는 탄소배출량이 '0'이지만 비싸다. 일정 부분 브라운 수소나 블루 수소를 함께 가져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데 문제는 이들 수소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이때 CCUS를 활용할 수 있다.

이진원 서강대학교 화공생명공학과 교수는 23일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화합물로 변환해 영양분을 만드는 자연계와 달리 인위적으로 추가 에너지원을 활용해 다른 물질로 바꾸는 과정이기 때문에 청정에너지나 재생에너지를 택해야 한다"며 "이미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다른 물질로 바꾸더라도 그 과정에서 추가로 온실가스가 나온다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2000년대 투자 시작에도 기술격차 커 = 우리나라는 2000년대부터 CCUS 개발을 추진해왔다. 2008년 CCUS 핵심 기술개발을 위해 '기후변화 대응 국가연구개발 중장기 마스터플랜'을 세우긴 했지만 속도가 나진 않았다. 우리나라 CCUS 수준은 미국 대비 80%(2020년 기준) 수준에 불과하다.

23일 과기부 관계자는 "2021년 CCU 기술혁신 로드맵을 수립해 관련 R&D 등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라며 "올해 약 600억원 규모의 R&D 투자를 진행 중이고 향후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울산 여수 등지의 대형 산업단지들에서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최적화해야 할 기술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며 "기업들은 정보공개를 꺼려서 협업 체계를 구축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정부가 정책적으로 이를 잘 엮어내면 기업 경쟁력을 저하시키지 않고 추가 탄소감축 여력이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예로 기업 A에게는 이산화탄소가 필요 없지만 B에게는 필요할 수 있다. 이를 적절하게 매칭해서 불필요한 생산을 막아 궁극적으로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회에서는 CCUS 기술개발의 안정적인 제도적 마련을 위해 '이산화탄소 포집·수송·저장 및 활용에 관한 법률안'을 논의 중이다. CCUS 시장 활성화를 위해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감축을 위해 기업들끼리 탄소를 사고파는 제도)와 연계를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23일 환경부 관계자는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부분에 대해서 감축 부분을 어떻게 인정할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해외에서도 사례가 없는 만큼 측정 방식 등 꼼꼼하게 제도 설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위기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만큼 종전보다는 기후기술이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는 진단이 나온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는 있다. 이러한 단편적인 기술개발만으로 과연 지구온난화를 완화시킬 수 있냐는 것이다.

약 138억년전 빅뱅으로 우주에는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가상의 기본입자인 '쿼크'가 형성됐다. 쿼크로부터 양성자와 중성자가 생기고, 이들이 융합하면서 다른 원소들이 만들어졌다. 이들 원소의 분배 및 화학적인 변화가 지구에서 생물이 살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만들었다.

◆복잡한 지구기후 상호작용을 예측할 수 있을까 =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분절적인 구조가 아니라 하나의 큰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사는 데 중요한 산소가 대기의 21%까지 축적된 시기는 약 4억3000만년 전인 실루리아기다. 이후 대기 중 산소량은 15~35%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광합성으로 생성된 많은 양의 산소는 산화된 퇴적물로 땅속에 녹아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애석하게도 우리 인류가 이룬 과학기술로는 이러한 지구생태계 시스템을 100% 이해할 수 없다. 과학자들이 기후기술을 함부로 현실화하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지구온난화를 막는 기술은 이론적으로는 아주 간단할 수 있다. 지구에 큰 우산을 씌워서 태양에너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면 된다. 관련 기술도 이미 개발됐다.

하지만 지구기후시스템에는 복잡한 상호작용과 되먹임(feedback) 작용이 있다. 과학기술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지역이나 시기에 지구에 준 충격이 나중에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탄소중립 달성을 기술에만 의존할 수 없는 이유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개막한 '2023 유엔 물 회의'에서 "흡혈귀 같은 과소비와 온난화로 인한 증발 등으로 인류의 생명줄이 고갈되고 있다"고 했다.

지구 자원을 무분별하게 사용해 기후위기에 직면한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기술개발은 물론 체제 혁신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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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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