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송 위스콘신대

2015년 4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는 백인경찰이 비무장 상태의 흑인남성을 등 뒤에서 8발의 총을 쏴 즉사시킨 사건이 있었다. 피해자는 월터 스콧(Walter Scott). 사건 초기 경찰의 무자비한 처사에 미국 전역에서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2020년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 미국에서는 흑인에 대한 백인경찰들의 가혹한 행위 때문에 종종 인종갈등이 불거진다.

그러나 스콧이 결국 경찰에 쫓겨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한 지역신문의 취재로 밝혀지면서 그 속사정에 이목이 쏠렸다. 지역신문에 따르면 네명의 자녀를 두었던 스콧은 폭행과 구타 혐의, 몽둥이 소지 혐의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 이외에 양육비 지급기한을 넘겼거나, 이와 관련해 법원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았던 이유로 체포된 이력만 10번 가까이 됐다. 스콧의 가족들은 지역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1만8000달러 상당의 자녀 양육비를 빚지고 있었기 때문에 경찰을 피해 도망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경찰을 피해 다녔던 배경이 알려지면서 양육비를 상습적으로 미지급하는 부모를 감옥에 가두는 정책의 유효성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저소득층, 양육비 채무와 구직난 악순환

미국에서 미양육 부모는 양육권을 가진 부모뿐만 아니라 주 및 지방정부 모두에게 양육비를 지급해야 한다. 미 연방정부는 주 및 지방정부와 협력해 미양육 부모로부터 매년 약 330억달러를 징수해 그들의 자녀 부양비로 지급하는 동시에 특정 복지혜택 비용을 상환한다. 예를 들어 빈곤가정 임시지원 프로그램, 연방정부가 지원하는 위탁 양육 유지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공공의료보험 등에 따라 해당 가족은 지출을 환급받을 수 있다. 2016년 양육비 프로그램으로 혜택을 받은 아동의 수는 미국 전체 아동의 약 20%인 1560만 명에 달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미국에서는 미지급 양육비가 큰 이슈로 떠올랐다. 이러한 배경에는 자녀에게는 재정적인 도움을 거의 주지 않으면서 자신의 삶을 호화롭게 즐기는 '불량아빠'들이 있었다. 양육비 징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1990년대 후반 자동급여공제 등 새로운 강제수단들이 동원되기 시작했다. 미지급 채무에 이자를 부과하거나, 운전 및 전문직 면허를 정지시키는 정책도 나왔다. 급기야 양육비를 계속 미지급하는 부모를 감옥에 가두는 처벌 제도까지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징벌적 정책은 저소득층 부모를 부채-실업-수감의 악순환에 가둘 가능성을 높였다. 양육비 채무 분포가 매우 왜곡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양육비를 체납한 미양육 부모 중 절반 이상이 1만달러 미만의 빚을 지고 있지만, 이들이 총 체납액에서 차지하는 정도는 10%를 넘지 않는다. 반면 양육비 채무가 4만달러 이상인 미양육 부모 15%는 총 체납액의 55%를, 양육비 채무가 10만달러 이상인 미양육 부모 3%는 총 체납액의 22%를 차지한다.

여기서 문제는 양육비 채무가 많은 미양육 부모 대부분이 소득이 전혀 혹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9개 대도시를 대상으로 한 양육비 체납 관련조사에 따르면, 체납액이 3만달러를 초과한 3/4의 부모가 신고된 소득이 없거나 1만달러 이하로 나타났다. 이러한 미양육 부모의 빚은 전체 양육비 체납액 중 무려 70%를 차지했다.

이러한 양육비 채무 때문에 저소득층 부모는 갈수록 구직과정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월터 스콧처럼 양육비 미지급 때문에 수감되면 직장을 잃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또한 양육비 미지급 때문에 운전면허증, 전문직 및 직업 면허증이 취소되면 취업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소득의 절반 이상을 양육비로 내야 할 미양육 부모는 그렇지 않은 부모보다 실업자인 경우가 많았고, 그들이 취업하더라도 근무시간은 더 짧은 것으로 밝혀졌다. 즉 자녀 양육비 부채는 부모가 일자리를 구하고 유지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불법적인 행위에 가담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들의 불법행위는 형사 사법 및 기타 사회서비스에 대한 불필요한 지출로도 이어진다.

조건 해당하면 정책적으로 양육비 감면

양육권을 지닌 부모와 자녀에 대한 양육비 채무는 미양육 부모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양육권을 가진 부모와 미양육권 부모 간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으며 미양육권 부모와 자녀의 관계까지도 단절될 수 있다. 결국 자녀들은 부모가 제공하는 재정적 지원뿐만 아니라 정서적 사회적 지원도 잃게 된다.

따라서 양육비 미지급은 정부에 재정적 영향을 미치며 미양육 부모와 양육권 부모 및 자녀의 경제적 사회적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국 내 양육비 징수율은 개선되었지만, 저소득층의 많은 미양육 부모들은 여전히 양육비 채무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정부는 미양육 부모의 부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어떠한 정책적 조처를 하고 있을까.

주 정부는 미연방법에 따라 미양육 부모가 주에 지급해야 하는 자녀 양육비 채무를 감면할 수 있다. 물론 양육권 부모의 동의 없이 양육권 부모에게 지급해야 하는 자녀 양육비를 감액할 수는 없다. 현재 28개 주에서는 시범적으로 채무감면(타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17개 주에서는 부모 각각이 처한 상황을 심사해 체납액을 감면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 대부분은 미양육 부모에게 현재 양육비 의무가 없는 경우 - 자녀가 성장한 경우 - 또는 채무가 징수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는 경우로 한정된다.

이러한 기존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양육비 부채를 줄이기 위한 정책 대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현재 소규모 혹은 시범운영을 통해 정책적 효과를 검증하는 단계에 있다. 특히 자격기준, 채무감면 시기 및 금액, 채무감면을 받기 위한 요건, 요건 미충족 시 처벌 등을 고려해 검토하고 있다. 미양육 부모가 양육비 채무를 감면받기 위해서는 특정 조건을 충족해야 하고 정해진 비율을 준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양육비의 정기적 지급을 채무감면의 조건으로 내걸 수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 중 하나는 주 정부가 수차례 징수 시도 끝에 징수할 수 없다고 판단한 양육비 채무를 단순 탕감하는 것이다. 두번째 방식은 미양육 부모의 청원에 따라 사례별로 부채를 탕감하는 것이다. 주 정부는 경제적 어려움이나 기타 요인이 입증되면 부채를 일정 정도 감면해 준다. 세번째 방식은 주 정부가 양육비 채무 사례를 검토해 지급능력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양육비 명령이 내려졌던 경우에 채무를 감면하는 것이다. 이 접근 방식은 주 정부의 채무 요구가 초기에 너무 높게 설정돼 누적되었거나, 장기간 실업 또는 수감 등을 고려해 채무 잔액을 조정하는 것이다.

징벌적 조치보다 체계적인 조사가 우선

2016년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연방 양육비 집행국은 약 1100만건, 총 160억달러가 넘는 양육비 체납 사례가 있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사례에는 현재 양육비 의무를 불이행 중인 부모, 성인이 된 자녀에 대한 미지급 양육비 채무가 남아 있는 부모까지 모두 포함됐다. 미지급 체납 총액은 1975년 프로그램 시작 시점까지의 누적 금액을 말한다. 미 정부는 당장 회수하기는 어렵더라도 모두 기록에 남겨 미지급된 양육비를 최대한 징수할 수 있도록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21년 한국도 양육비 지급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 운전면허 정지, 출국금지, 명단공개 등의 처분이 이루어지도록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다. 기존의 제도로는 양육비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사례는 단순히 징벌적 조치가 최우선이 아니라 철저하고 체계적인 조사가 전제돼야 정책을 효과적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김찬송 위스콘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