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바쁜 국무위원은 아마도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일 것이다. 이 장관은 노동자의 장시간 근로문제에 관한 논란과 혼선이 빚어지면서 연일 청년 노동자와 '소통'에 나서고 있다. 지난 23일 인천 남동구에 있는 제조업체를 찾아 생산직 청년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진행했고, 그 전날에는 MZ노조라고 불리는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와 만났다. 이번주에는 중소기업 근로자와 노동조합 미조직 노동자들과 자리를 같이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런 수고는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논란의 시작은 고용부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앞세워 '주 최대 69시간'까지 허용하는 방안을 내놓은 것부터였다. 이는 장시간 노동을 더욱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다. 장시간 휴가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직장생활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나 말할 수 있는 허구일 뿐이다.

고용부 환경부가 기업 이익에 앞장서서는 안돼

일사천리로 추진될 것 같던 '주 69시간제'는 MZ세대의 거센 반발에 부닥쳤다. 20대의 반발 여론에 놀란 윤석열 대통령은 "주 60시간 이상 근무는 건강보호 차원에서 무리"라고 해 혼선을 부추겼다. 이 장관도 난처해졌다. 정부의 혼선에 총대를 멨다고 하지만 주무부처 장관으로서는 우스운 꼴이 됐기 때문이다. 사실 고용부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노동시간제 혼선은 애초 고용부가 가야할 길에서 이탈했기에 빚어진 참사여서다.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건강 수호에 앞장서야 할 고용부가 경제논리를 맹목적으로 따르다가 역풍을 맞은 셈이다.

최근 환경부와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가 함께 21일 내놓은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안도 걱정된다. 2030년까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는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으로 유지하면서도 산업계가 줄여야 할 몫은 2021년 10월 설정된 것보다 덜어준 것이다.

당시 문재인정부가 내놓았던 방안에도 무리한 대목이 없지 않았다. 이를테면 철강업계의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철광석을 원재료로 사용하는 고로를 줄이는 대신 고철을 사용하는 전기로를 늘린다는 방안 등이 그 예다. 이는 고철수급이나 가격급등, 전기요금 상승 같은 충격을 고려하지 않는 '책상물림' 방안이다.

이런 문제점을 바로잡되 탄소감축을 위해 전향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지금의 시대적 요구다. 그런데 이번에 제시된 방안은 그런 시대정신을 거스른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워 보인다. 환경단체들은 물론이고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국제사회의 흐름에 역행한다며 비판했다.

더욱이 환경부와 탄녹위의 이번 발표는 일종의 '전격작전' 같았다. 탄소중립기본법상 이번 국가 기본계획은 25일까지 수립돼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감일을 불과 4일 남겨놓고 정부안을 발표하고 22일 공청회까지 열었다. 정부안에 대해 전문가와 환경단체들이 충분히 검토할 시간을 앗아버린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전격작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아마도 설득하고 공감을 얻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된다. 반면 산업계에서는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전해진다. 사실 산업계로서는 부담이 가벼워지니 더 없이 고마울 것이다.

고용부와 환경부 등의 이런 모습은 윤석열정부 들어와서 비경제부처들이 경제부처를 흉내 내면서 어느 정도 예상되던 일이다. 경제부처가 경제논리에 따라 기업의 이익을 우선하더라도. 고용부나 환경부 같은 부처는 부화뇌동하지 말아야 한다. 노동자와 시민의 삶을 보호하는 데, 그리고 환경을 보호하는 데 힘써야 한다. 그래야 균형잡힌 정책이 나온다.

정부 부처는 본연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로마시대 철인황제로 불리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무화과나무는 무화과나무의 일을, 꿀벌은 꿀벌의 일을, 인간은 인간의 일을 한다"고 일렀다. 이런 이치대로 정부의 여러 부처에는 나름의 가야할 길이 있다. 그 길은 서로 다르다.

그 길에서 벗어나면 이번 '주 69시간 노동' 파문과 같은 일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그런 일이 자꾸 되풀이되면 정부신뢰가 추락하고 정책은 불신의 대상이 된다. 사회적으로도 공연한 논란과 대립만 부채질하면서 경제의 안정적 발전을 어렵게 만들기 쉽다. 그러므로 정부의 여러 부처는 본연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삼가고 또 삼가야 한다.

차기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