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언론인,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포커와 고스톱은 다르다. 포커에 내 편은 없다. 두명이 플레이하든 예닐곱명이든 모두가 적이다. 상대를 '올인'시켜 빈털터리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007시리즈의 '카지노 로얄'이 그랬다. 참가금을 한명이 싹쓸이하는 거다. 이런 포커판에 선의는 없다. 섬뜩한 적의로 가득하다.

모두가 포커페이스이다. 히든카드를 펼 때까지 승부는 알 수 없다. '뻥 카드'이더라도 상대가 포기하면 이긴다. 가장 높은 스트레이트 플러시이면 뭐 하나. 상대가 걸려들지 않으면 잔돈푼만 챙기게 된다.

반면에 고스톱은 세명이 한다. 진행이 묘하다. 갑이 이길 듯하면 을과 병이 한편이 된다. 물론 암묵적이지만. 그러다 을로 승부가 기울면 조금 전까지 적이었던 갑과 병이 한편으로 묶인다. 본질적으로 1대 2 경기인데, 약자 둘의 연합이 홀로 강자보다 대체로 힘의 우위를 점하는 게 묘미이다. 어쩌면 고스톱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상황이 목표인 듯하다. 그럴 것이 첫닭이 울고 일어날 때쯤 한명 혹은 두명이 돈을 땄을 경우 잃은 사람에게 '개평(皆平)'을 준다. 한자의 뜻 그대로 모두 공평하도록 또는 평화롭도록.

세명이 아니라 참가자가 여러명이라도 문제 없다. 판에 참여하는 세명을 제외하고 모두에게 광(光)을 팔 기회를 준다. 손에 쥔 패가 좋다고 판에 참여할 수 없고, 밀려서 치는데도 승점을 기록할 수 있다. 견제와 균형의 오묘한 작동이다. 그런 점에서 '게임의 이름'이라는 포커는 갬블링(도박)이고, 노름으로 치부되는 고스톱은 놀음에 가깝지 않은가.

'윈윈'은 미국의 아전인수격 계산법

포커와 고스톱을 떠올린 것은 최근 일련의 한미일 정상외교 때문이다. '워싱턴 선언'에 대한 평가는 당국자마다 전문가마다 다르다. 김태효 안보실 1차장은 "사실상 핵공유로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으나 에드 케이컨 백악관 선임국장이 "직설적으로 말하겠다. 사실상 핵공유로 보지 않는다"고 반박해 머쓱하게 됐다. 북핵대응에 적절했다는 평가가 있지만 존 볼턴 전 안보보좌관은 "한국에는 미흡하다"고 단언했다.

경제는 미국 LA타임스 기자가 핵심을 찔렀다. 기자가 "중국과 경쟁 때문에 한국이라는 동맹이 피해를 받고, 이로써 정치적 지지를 얻으려 하느냐"고 물었다. 바이든의 재선을 위해 한국에 경제적 손실을 안겨주는 것 아니냐 물은 거다. 바이든은 '윈윈'이라고 했지만, 이는 아전인수 계산법 아닐까. 미국과 자신은 당연히 '윈'이고, 한국은 더 큰 손실을 보지 않으니 '윈'이라는 울트라 수퍼 갑의 계산법 말이다. 혹은 한국이 스스로 약한 패로 여겼거나 미국 핵우산 패가 강력하다고 판단했을까. 아니면 도청으로 우리의 히든 카드를 읽혀버린 상황에서 판세를 제대로 읽지 못할 것일까.

독자적 핵무장을 지지하는 여론을 업고 "국민 뜻을 거역할 수 없다"고 베팅할 수 있었다. 최소한 핵개발 않는 대신 경제적 대가를 요구할 수 있었다. 한·중 한·러 관계를 파국으로 이끌 수 없는 지정학적 한계도 강조할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가 핵에는 핵이 아니라 대화로 풀 수밖에 없다며 미국의 대북자세를 전향적으로 바꾸라고 중개할 수도 있었다.

정부는 북·중·러에 맞서 미·일과 편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미국은 일본 한국을 포함해 모두를 이기려는 것 같다. 미국 우선주의가 무슨 뜻이겠나. 포커도 그렇지만 고스톱도 승리가 눈앞에 있는 강자에게 이익을 나눌 '내 편'은 없다.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는 국제관계는 '이익 앞에'란 말이 생략된 것이다.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7일 방한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제3자 변제'라는 패를 보여주며 미래지향적 한편임을 강조했다. 헌데 일본은 독식(獨食) 문화이다. 음식도 '이치닌마에(一人前)'다. 영화 '자토이치'의 도박도 '홀짝'이다. 상대를 이겨야 내가 산다. 기시다 총리는 아마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하고 있다고 확인한다"는 선을 지킬 것이다. 이 문장은 일본 하야시 외무상이 한국의 강제징용 해결책 발표 후 밝힌 것이다.

설령 이번에 사죄나 사과라는 말을 붙이더라도 본인 아닌 전임자 발언을 빌어올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서 본인 지지도를 높여 개헌동력으로 삼으려 할 수 있다. 따라서 징용공이 아니라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아베내각도 '역대 내각의 입장'에 포함된 것인지 분명히 물어야 한다. 차제에 자위대의 공격 능력과 개헌에 대한 입장도 확실히 따져야 한다.

두루 내편 늘려 '지지 않는 외교'가 정답

최근 일본 '위안부' 피해자 한분이 떠나면서 공식 등록자 240명 중 단 9명 남았다. 사실 이 사안은 한일 양국만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 인권문제이자 전시 여성인권문제로 세계와 함께 해야 했다. 이게 현실로도 역사로도 '윈윈'이다.

위안부 문제도 그렇지만, 북핵과 국제경제도 두루 내편을 늘려 최소한 '지지 않는 외교'가 정답 아닐까. 어차피 포커와 포커페이스는 익숙하지도 않고.

박종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