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돌봄 가능한 노인 절반 이상이 요양시설로 몰려 … 재가서비스에 써야 할 돈 요양병원·요양원 입원비 충당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 의료관리학

노인 돌봄의 실패
'현대판 고려장' 이유는


우리나라 노인 인구가 내년에 1000만명을 넘어 설 전망이다. 오래 전부터 인구 고령화에 대비해서 노인을 잘 돌볼 수 있는 체계를 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경고가 계속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노인을 잘 돌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현대판 고려장'이나 '간병 살인', '돌봄 독박' 같은 말은 우리나라 노인 돌봄의 처참한 현실을 간명하게 보여준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노인 돌봄에 적지 않은 돈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판 고려장' 같은 처참한 상황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는 노인 돌봄에 GDP의 1.3%를 쓰고 있어 OECD 평균 1.7%에 비해 약간 낮은 수준이지만 돌봄의 주요 대상자인 80세 이상 노인 1명당 돌봄 비용은 OECD 국가 평균 수준이다(그림 1). 돈을 적게 쓰는 것도 아닌데 대한민국 노인 돌봄의 현실은 왜 이리 참담할까?

[사례1] "죽으러 가는 기분이야. 동네사람들 요양병원 갔다가 돌아온 사람 아무도 없어."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해져 요양병원에 입원하기로 한 날 아침 할아버지는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가족들과 함께 병원 가는 길 차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 흐른다(KBS 2020.9.12.). 가족들이 노인을 돌보기 어려워 끝이 빤히 보이는데도 요양병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대판 고려장'의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서 돌봄이 필요한 노인 약 120만명 중 거동이 크게 불편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장기간 입원해야 하는 노인은 12%에 불과하다(그림 2). 나머지 88%의 노인은 요양보호사가 식사를 포함한 일상생활을 돌봐주고, 의사·간호사가 집에 찾아와 건강을 관리해주면서 집에서 충분히 살 수 있다. 건강이 나빠져 잠시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입원할 수 있지만, 3개월 이내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선진국의 노인 돌봄 방식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이들 노인 중 절반 이상이 요양병원·요양원에 6개월 이상 장기입원하고 있다.

노인 돌봄에 돈을 적게 쓰는 것도 아닌데 현대판 고려장은 왜 계속되는 것일까? 장기요양보험이 노인들이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재가서비스에 돈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장기요양보험의 요양보호사 돌봄 시간은 1등급 기준 하루 4시간으로 OECD 국가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하루 4시간 돌봄만으로는 집에서 살기 어려운 1등급 노인은 자기 돈으로 요양보호사의 돌봄 시간을 늘리거나, 그럴만한 경제적 능력이 없으면 요양병원·요양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거동이 불편해 병원에 가기 어려운 노인을 위한 방문진료, 가족이 쉴 수 있게 해주는 단기 보호, 살 곳이 마땅치 않은 노인을 위한 주거 지원 같은 필수적인 재가서비스도 없거나 아니면 매우 부족하다.



돌봄 실패 원인은 돈주머니
장기요양보험 건강보험 분리
재가보다 요양원의 서비스 2배


그럼 정부는 재가서비스에 써야 할 돈을 어디다 쓰고 있는 것일까? 장기요양보험 재가서비스가 부족해 요양병원·요양원에 입원한 노인들의 입원비로 쓰고 있다. 그런데 요양병원·요양원 입원비가 현재 장기요양보험 재가서비스 비용에 비해 1.7~2.9배 더 많으니 돈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도 아니다(그림 3). 달리 말하면 정부가 노인들이 집에서 살겠다고 하면 필요한 서비스의 절반밖에 주지 않으면서 요양병원·요양원에 입원하면 그에 비해 2배 이상 서비스를 주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노인들을 요양병원·요양원으로 들어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는 꼴이다.


왜 정부는 재가서비스에 써야 할 돈을 요양병원·요양원 입원비로 써서 '현대판 고려장'이 계속되도록 방치하는 것일까?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게 말하면 정부가 애초에 장기요양보험제도를 잘못 만들었기 때문이다. 원래 장기요양보험은 집에서 생활하기 어려운 1~2등급 노인만 요양원에 입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그런데 2008년 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하면서 요양원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요양병원을 장기요양보험제도로 데려오지 않고 건강보험에 그대로 남겨 두었다. 그 결과 집에서 생활활 수 있는 노인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요양병원에 입원할 수 있게 되었고, 덩달아 1~2등급이 아닌 노인도 요양원에 입원하는 것을 허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장기요양보험 등급에 관계없이 입원할 수 있는 요양병원이라는 뒷문을 열어둔 결과, 장기요양보험 등급에 기반으로 돌봄서비스와 재정지출을 관리하는 체계가 처음부터 사실상 무력화되었던 것이다.

[사례 2] "집에서 한 달 동안 아팠어요, 다리를 못 써서... 우리 아들도 시간도 없고" 거동이 불편한데 병원에 데려다 줄 사람도 없어서 지난 1년 동안 병원에 못 간 77살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의사가 집에 직접 방문해 혈액검사를 하고 이곳저곳에서 중복해서 타온 약도 정리해줍니다. 근력을 평가해보니 걷는 건 물론 일어서기조차 힘든 상태입니다(KBS 2023.3.7.).


이처럼 의사와 간호사가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사는 곳에 찾아가 진료해주면 노인들의 병원 입원율을 23%, 요양원 입원율을 88% 낮출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거동 불편한 노인 약 150만명(전체 노인의 15%) 중 실제 방문진료를 받고 있는 노인은 체 1%도 되지 않는다. 이제 곧 전 국민 5명 중 1명이 노인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전체 병의원 중 방문진료를 하는 곳이 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은 건강 상태가 점점 나빠져 요양병원·요양원에 입원하는 것은 너무도 명확관화한 일이다. 정부가 한 번 더 요양병원·요양원에 입원하라고 노인들의 등을 떠밀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재가서비스의 부족과 분절
노인학대 원인은 인력부족
방문 의료서비스 부족 심각


[사례 3] "대변이 너무 안 나와서 모두 의아해하던 중 아버지 항문 사이로 무언가가 보였다. 이상해서 손가락으로 당겨보니 30㎝ 길이 속기저귀였다"(서울신문 2023. 5. 8). 요양병원·요양원에서의 노인 학대 사건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몸에 시퍼런 멍이 들고 허벅지가 골절된 일도 있었고 치매에 걸린 환자 성기를 비닐로 묶은 경우도 있었다.

아무리 집에 있고 싶어도 건강이 나빠지고 거동이 크게 불편해지면 요양병원·요양원에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양병원·요양원의 돌봄의 질도 좋아져야 한다. 요양병원·요양원에서 노인 학대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은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요양병원·요양원의 환자 당 간호간병 인력은 미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요양병원의 경우 환자가 고용하는 간병인을 제외하면 간호사 수는 미국의 1/5에 불과하다. 이렇게 인력이 부족하니 환자를 묶어놓고 약으로 재워 간호간병을 해 달라는 말을 못하게 하고, 침대에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의 체위를 바꿔주지 않으니 욕창이 생기는 것이다. 정부가 요양병원·요양원에 입원하라고 노인들의 등을 떠 밀어서 막상 입원했더니 이제는 나 몰라라 하고 오리발을 내리는 격이다.


인력의 질도 좋아져야 한다. 간호인력 중 정규 간호사를 더 많이 늘리고 의료에 대한 교육을 받지 않은 간병인이 환자를 돌보는 것도 이제 그만해야 한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정규 간호사가 많은 요양병원과 정규 간호사가 배치된 요양원의 그렇지 않은 곳들에 비해 사망률이 10~20% 가량 낮았다.

질 좋은 인력을 늘리면 돈이 더 들어 갈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이다. 돌봄의 질이 좋아지면 노인의 건강상태가 좋아져 빨리 퇴원할 수 있게 되어 오히려 요양병원·요양원 진료비를 매년 5000억원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렇게 하려면 한편으로 간호사와 요양보호사를 더 많이 배출하고 교육과정도 개선해야 하며, 이들 인력에 대한 처우도 개선해야 한다. 선진국 수준으로 간호인력을 늘리고 선진국 수준으로 대접해줘야 선진국 수준의 돌봄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사례 4] "컨디션이 좋아요. 집에서 예배드리며 천국 가려고요" 2년 반 전 가슴 통증이 있어 병원을 찾았다가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은 할머니는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올해 1월부터 집에서 주 1~2회 의사와 간호사가 방문 진료와 돌봄을 하는 '가정 호스피스' 진료를 받고 있다. 다행히 집 근처 가정 호스피스 서비스는 하는 병원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중앙일보 2023. 4. 5.).

노인 10명 중 6명은 집에서 임종을 맞고 싶어 하지만 실제 집에서 임종을 맞는 노인은 15%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병원에서 사망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고, 다른 나라들은 대부분은 집에서 임종을 맞는 비율이 높아지는 반면 우리나라는 거꾸로 오히려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 나라이다(그림 4).

이처럼 다른 나라와 달리 대부분의 노인이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임종을 맞는 이유는 가정 호스피스 진료를 하는 병의원이 전국에 38개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 권고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호스피스가 필요한 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매년 약 20만명으로 추정된다. 암 이외에도 심혈관질환, 간경화, 신부전 등이 호스피스가 필요한 질환이다. 집에서 임종하길 원하는 약 12만명의 노인이 편안하게 진료와 돌봄을 받을 수 있으려면 전국적으로 적어도 1000개 이상의 가정 호스피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의원이 있어야 한다. 평소에 방문진료를 해주던 가정 호스피스 의사가 있으면 사망진단서를 받기 위해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당황스러운 일도 피할 수 있다. 정부는 이번에도 임종을 앞 둔 노인들의 등을 병원으로 떠밀고 있다.

대부분의 노인이 병원에서 사망하니 중환자실에서 별 의미가 없는 치료를 받다가 임종을 맞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노인들은 임종 전 1년 동안 평균 60일을 입원하고 1인당 약 3000만원을 병원비로 쓴다. 임종 전 1년 동안 의사가 매주 왕진을 하고, 임종 직전 2달 동안 24시간 입주 간병을 한다고 해도 총 진료비는 1인당 약 1500만원에 불과하다. 돈을 적게 쓰면서도 존엄한 죽음을 보장할 수 있다.

해결 방법은

장기요양보험 재가서비스 확대
노인 1만명당 재택의료센터 지정
요양시설 요양보호사 등 2배 증원
노인 건강 위한 '노쇠예방사업'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장기요양보험의 재가서비스를 선진국 수준인 현재의 약 2배로 늘이고 동시에 장기요양 1~2 등급을 받은 노인에 한해 요양병원·요양원의 장기입원을 허용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의학적으로 부적절한 장기입원을 줄여서 절약한 돈으로 재가서비스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 부적절한 장기입원을 줄이는 것만으로 장기요양보험의 재가서비스 상한 금액을 지금의 1.8배 수준으로 늘릴 수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장기요양보험의 재가서비스를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부적절한 장기입원을 줄이는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는 재가서비스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도 없고, 부적절한 장기입원을 줄이기도 어렵다.

둘째, 노인 1만명 당 적어도 1개 이상의 재택의료센터를 지정해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방문해 진료하고, 임종을 앞 둔 노인을 위해 가정 호스피스 진료하도록 해야 한다. 현재 보건복지부의 장기요양 재택의료시범사업에 참여하는 기관을 빠르게 늘리면 가능하다. 방문진료로 아픈데도 병원에 가지 못해 병을 키워 입원하는 비용을 줄이면 재택의료를 확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상당 부분 충당할 수 있다. 이는 임종을 앞 둔 노인을 위한 가정 호스피스도 마찬가지이다. 현 재택의료시범사업을 3년 후에 본 사업으로 전환하겠다는 보건복지부 계획은 우리나라 노인들이 처한 참담한 현실을 눈을 감은 거북이 같은 계획이다.

셋째, 요양병원·요양원의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수를 2배 늘려 선진국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보건복지부 제3차 장기요양기본계획에서 발표한 것처럼 요양보호사 수를 겨우 10% 늘리는 것만으로는 요양원에서 발생하는 노인 학대를 막기 어렵다. 내 집 같은 공간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1~2인실 위주로 병동 규모를 줄인 '유니트 케어 시스템'으로 도입하겠다는 계획도 인력을 대폭 늘리지 않으면 공상과학소설이 될 가능성이 높다.

끝으로 노인들이 최대한 건강하게 스스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노쇠예방사업'을 도입해야 한다. 매년 허약 노인 120만 명 중 매년 약 15만 명이 장기요양보험 대상자로 신규 진입하고 하고 있다. 이들 허약 노인들에게 근력 운동을 시키고, 고단백 위주로 영양을 관리하고,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도록 하면 장기요양보험 대상자가 되는 것을 늦출 수 있다. 노쇠예방사업으로 장기요양보험 재정지출을 크게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인 투자이다.

시작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진 노인 돌봄 체계를 개혁하는 일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된다. 돌봄이 필요한 노인은 빠르게 늘어나는데 왜곡된 현 체계를 방치하면 현대판 고려장 같은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제3차 장기요양 기본계획은 훌륭한 계획이지만 그것으로 왜곡된 체계를 바로 잡을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요양병원·요양원이 반대하는 정책을 쏙 빼놓은 계획으론 문제의 핵심인 부적절한 장기입원을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요양원의 정치적 저항을 넘어서서 노인 돌봄 체계를 개혁하려면 대다수 국민이 개혁을 지지해줘야 한다. 지금 노인 돌봄 체계를 개혁하지 않으면 수요 대비 2배나 많은 요양병원·요양원 병상을 채우기 위해 우리 자신, 우리 부모, 심지어 우리 자식들까지 집 대신 요양병원·요양원 선택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개혁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다.



요양병원과 요양원은 = 요양병원은 의료법을 법적 근거로 하는 노인의료기관이다. 의사와 간호사, 재활치료사 등의 의료진이 상주해 노인들의 질병 치료와 관리를 담당한다. 요양병원은 누구나 입원할 수 있다. 건강보험료 80% 그리고 본인 부담 20%로 입원비를 내야 한다. 간병비는 100% 자부담해야 한다.

요양원은 노인복지법과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이 법적 근거로 노인의료복지시설에 해당한다. 요양원에 입소하기 위해서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통해 시설급여를 받아야 가능하다. 의사는 비상주이며 돌봄전문가로 요양보호사가 노인 2.3명당 1명이 배치되어 있다. 비용은 장기요양보험료로 80%를 지원하며 본인은 20%를 부담해야 한다.

["[창간 30주년 기획특집] 건강한 '노후 돌봄'을 위하여"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