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대선을 40여일 앞두고 쏟아져 나오는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보면서 '영화의 힘'을 가늠해본다. 예매율 20위권을 훌쩍 넘어선 'MB의 추억'을 비롯, 지난 18일 선보인 '맥코리아', 개봉을 앞둔 '유신의 추억-다카키 마사오의 전성시대'. 언론이 다루지 않는 사회문제를 심층적으로 고발하고 파헤친 영화들이다.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는 기능도 갖췄다. '무비 저널리즘'이란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이들 영화는 나름대로의 목소리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MB의 추억'(감독 김재환)은 '2007년의 MB를 되돌아보는 정산코미디'이다. 당시 대선 캠페인에서 경제를 살릴 준비된 지도자 MB는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탐욕적인 유권자들은 열광했다. 유세에서 MB가 내뱉은 공격적인 말들은 5년 뒤인 이제는 자신과 새누리당에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 "투표는 미디어가 유포하는 이미지에 살짝 흥분한 대중이 앞으로 5년간 자신을 괴롭힐 사람을 뽑는 행위이다." 김재환 감독의 말이다.

'맥코리아'(감독 김형렬)는 서울 메트로 9호선과 우면산 터널 등 국내 14개 민자사업에 투자한 맥쿼리 한국인프라 투자운용회사에 대한 이명박정부의 특혜 의혹을 파헤쳤다. 소설가 공지영씨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무책임한 정부관료와 고수익을 좇는 외국자본이 민자사업의 형태로 결탁할 경우 국민의 삶에 어떤 영향과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 깨닫게 한다.

유신선포 40년을 맞아 유신독재의 실상을 복원한 '유신의 추억-다카키 마사오의 전성시대'(감독 이정황)도 눈길을 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겉과 속, 생각과 말, 행동과 실천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의 전성시대에서 용케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엄혹한 세월을 견디며 좋은 세상을 만들려 애썼는지를 담았다.

'MB의 추억' '맥코리아' '유신의 추억'

이 감독은 "판소리를 통해 박정희의 폭정을 해학적으로 풀어내고, 유신시대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무용극을 도입해 다큐멘터리와 예술을 접합시켰다"고 말했다. 제작비 1억3000만원은 국민 성금으로 충당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탱크를 몰고 광화문으로 들어온 10월 17일을 상징해 1017명의 후원자가 참여했다. 러닝타임은 75분 49초. 대법 확정판결 18시간 만에 사형당한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8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이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1975년 4월 9일을 상징한다. 국회 및 서울광장 시사회를 가졌으며, 8일 서울 인디스페이스 등 전국에서 잇달아 시사회가 열린다. 이달 말 개봉 예정.

'무비 저널리즘'의 가능성은 이미 극영화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 다큐멘터리 '두개의 문'에서 확인된 바 있다. 2007년 석궁사건 재판을 따라가는 '부러진 화살'이나 장애인 성폭행과 관련한 사학재단 비리를 폭로한 '도가니'는 국민적 관심을 모았다.

여기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엉켜 버린 용산참사를 다룬 '두개의 문'은 잊혀진 진실을 꼼꼼한 기록영상으로 재구성해 보여주었다. 보도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국민적 관심을 일으켜 사회적 담론으로 확장시키는 저널리즘의 특성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것이다.

'무비 저널리즘'의 탄생은 이명박정부의 방송장악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사회고발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던 'PD수첩'이나 '추적60분' '돌발영상' 등이 자취를 감추거나 축소되면서 영화의 새로운 영역이 열린 것이다. 사상 최장의 노조파업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방송사들이 시사프로그램을 기피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그동안 억눌려왔던 민의가 새롭게 폭발하고 있다고나 할까. 언론이 해야 할 책무를 이제는 영화가 떠맡은 셈이다.

언론이 해야 할 책무 영화가 떠맡아

'무비 저널리즘'의 선구자로는 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가 꼽힌다. 그는 미국인들의 총기선호를 풍자한 '볼링 포 콜럼바인'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부시정부 외교정책의 난맥상을 파헤친 '화씨 9/11'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겼다. 미국 의료보험체제의 문제점을 해부한 '식코'는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우리는 가짜 대통령을 선출한 조작된 선거결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엉터리 이유로 우리를 전쟁터에 보내는 인간과 함께 살고 있다. … 부시씨, 창피한 줄 아시오." 그의 아카데미상 수상소감 중 일부이다.

대선을 앞두고 앞다퉈 선보이고 있는 영화들이 '무비 저널리즘'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까. 이들 영화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얼마나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다.

김주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