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가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의 기치를 드높이고 희망의 새 시대를 구가하며 해람(解纜)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국민은 뭔가 나아지기를 기대하며 가슴을 부풀린다. 5년 후가 돼 보아야 알겠지만, 희망 속에 걱정이 앞서는 것은 재원 때문이 아니다.

새 정부가 과거 정부보다 낫고, 표방하는 정책철학과 내용이 제대로 구현되려면 GDP 대신 GCI(Gross Civilization Indicator, 국민총문명지표)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새 시대 문명국이 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GDP로 대표되는 경제 틀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왔다. 기존 정부나 새 정부 정책들이 준거하는 경제 패러다임은 배가 부르면 머리도 차 유식해지고 생각도 지혜로워질 수 있다는 틀이다. 이런 구성과 논리전개가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난 300년 동안 물질과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을 지고지순으로 생각하고 있는 '지배의 리비도'(Libido)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그랬다. GDP는 사고나 소송 같은 갈등요소를 플러스 요인으로 계산하는 것은 물론 문화 에센스를 아우르기는커녕 가사노동, 환경오염, 자원고갈 같은 요소를 외면했기에 GPI(Genuine Progressive Index, 진정진보계수)가 주장된 지 오래다. 기존 지수로 계산한 성장은 허식일 수밖에 없고, 그늘에 묻힌 가련한 영혼은 위로받을 길이 막연하다.

지금은 인지문명시대다
새 정부는 과학기술이 근간이 되는 미래부를 창조경제의 주체로 일자리 창출, 무상 보육, 반값 등록금 등 복지를 충족하고 문화가 있는 삶으로 국민의 행복을 보장하는 구도를 짰다.

당연한 듯 보이지만 지금까지 해 온 노력으로는 일자리를 늘려도 그것이 곧 바로 국민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국가 브랜드위원회를 만들고 K-Pop, 한식 세계화 같은 창조문화를 추구해도 나라의 격이 높아지고 국민이 행복해지지 않았다.

현재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OECD 34개 국 중 32위에 불과하다. 왜일까? 우리가 인정과 깨달음 같은 내면적 가치로 시간을 구조화하고 생명체를 존중하고, 확언ㆍ정복ㆍ권위를 앞세우지 않는 '조절과 조화의 시대'에 접어든 것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물질 기계 마음이 하나로 인식되는 제2계몽시대이자 인지문명시대라는 것을 정책가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새 시대 문고리는 단연 GCI다. 경제문화를 동시에 아우르며 성숙한 문명국의 문을 열어야 한다. 물질적 진보만큼 정신적 진보가 중요해서다.

기존 틀대로 하면 21세기 문명국은 신기루일 뿐 손에 잡히지 않는다. 잉글하트 교수는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국가나 4만달러 국가의 국민이 느끼는 주관적 웰빙은 거의 비슷하다는 연구논문을 낸 적이 있다.

세계 10개국을 다니며 저울질한 행복지수로 가려보면 아이슬란드는 언어의 자부심이고 미국은 이사 다니는 일이다. 스위스와 부탄은 돈을 상징하는 M자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나라마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과 내용이 다양하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안다. 성취도 중요하지만 보람이 따라야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것은 어느 나라나 공통될 것이다. 거기에 사랑과 인정과 신뢰, 시의 아름다움, 교육의 지혜와 깨달음, 정의와 공공성의 가치 등이 보태지면 내면의 가치가 풍성해 국민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과 행복을 느낄 것이다.

문화가 있는 삶의 패러다임은 전일주의
문화가 있는 삶의 패러다임은 지배의 리비도가 아니라 조절ㆍ공존ㆍ공화의 리비도다. 융합의 이름으로 경제성장과 문화가 있는 삶을 추구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전일주의(holism) 입장에서 통합지표를 만들어 우리가 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를 분별해야 한다.

정부는 한시 바삐 과거의 경제 일변도 사고에서 벗어나 국민총문명지표로 미래 희망 국가의 패러다임을 새로 짰으면 한다. 그래야 이 나라 국민이 진정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보람 있고 희망 찬 내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가릴 수 있게 된다.

제2 한강의 기적으로 초일류국가로 간다는 진부한 표현보다 새 정부는 정책 패러다임을 바꾸어 21세기 빛나는 문명국가로 가는 초석을 깔기 바란다.

김광웅 명지전문대 총장

김광웅 명지전문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