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상담하는 순간 다른 선택지 사라져

한부모가 양육에 나쁘다는 인식 바꿔야

“입양이 문제라는 게 아닙니다.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 있다면 입양이든 뭐든 그 아이에게 가장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가를 공적인 기관이 책임성을 가지고 촘촘하게 살필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저희들이 요구하는 핵심입니다. 지금은 현실적으로 아이 부모가 입양기관에 찾아가서 상담하는 순간 다른 선택지는 사실상 사라져버리는 구조이기 때문에 무엇이 아이에게 최선의 선택인지를 고려해 볼 수도 없는 상황이거든요. 현재 아동복지법을 보더라도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 있으면 지방자치단체장이 보호조치를 취하도록 돼 있는데 유독 입양 문제만큼은 민간기관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처리되고 있어요. 입양이 정말로 아동에게 최선의 선택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하더라도 그 전에 친부모를 조금만 도와주면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상황인지, 경제적 자립에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 상황인지 등등을 층층이 검토하고 정말로 아이를 위한 결론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소라미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민간 입양기관이 주도하고 있는 입양제도를 정부가 담당하도록 하는 내용의 입양특례법 전면 개정안(남인순 의원 발의 예정) 작성에 참여했다. 2016년 대구와 포천에서 일어난 입양아동 학대.사망 사건 이후 허술한 입양제도를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높아졌지만 입양기관들의 반대로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서 발의되지 못했다.

소 변호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입양기관이 입양을 주도하는 게 너무 오랫동안 지속돼서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있지만 아동 최선의 이익을 우선하는 해외에선 있을 수 없는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국제입양 과정에서 아동의 보호를 위해 제정된 국제사회의 약속인 헤이그국제입양협약에 따르면 국제입양 결정과 그 절차는 중앙당국이 책임져야 한다.

친부모가 아이를 다른 부모에게 입양시키는 것을 원한다고 해도 그 부모의 뜻만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 아동이 있다면 입양 결정이 정말 아동 최선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정부가 공적인 심사를 거친다.

검토 결과 입양이 적합하다고 결정이 났다면 아이를 입양할 부모에 대한 조사나 보고서 작성, 입양 이후 아이의 양육상황 확인까지 모두 정부의 책임 하에 이뤄져야 한다.

헤이그협약은 국제입양에 대해 절차를 제시한 것이지만 국내입양아동 역시 아동에게 가장 유리한 결정을 내리는 방향으로 제도가 짜여져야 한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현재처럼 입양의 최종 단계에서만 법원이 개입하는 형식으로는 입양 과정 전반이 허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입양과정과 관련해서 정부가 하고 있는 일은 아이가 고아원에 들어왔다고 보고되면 그에 따른 지원금 내주고, 입양기관에 아이가 들어왔다고 하면 또 그에 따른 지원금 주는 식으로 그냥 사후적으로 보고받거나 지원해주는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 그 밖의 모든 것들은 민간 입양기관이 다 알아서 하고 있어요. 몇년 전부터 입양절차가 다 끝나고 난 후 최종적으로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바뀌었는데 법원 입장에선 이미 다 절차가 끝난 상황이라 입양을 불허하기 힘들어집니다. 그러나 해외의 경우에는 예를 들어 미혼모가 아이를 낳게 되어 지자체에 상담을 요구하면 자립을 위한 취업교육을 연계해준다든지, 그렇게 해도 아동양육이 힘들면 적절한 양부모 찾아주는 절차로 갈 수 있는 것이고. 입양을 가기에는 이미 큰 아이라면 그룹홈이라든지 가정과 유사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한다든지 무엇이 아이에게 최선인지 정부가 중심이 되어 길을 찾아가요. 우리나라 정부나 지자체는 법에 다 쓰여 있어도 그런 절차를 진행한 적이 없습니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입양특례법 전면 개정안에 대체로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인력.예산의 한계, 입양기관들의 반대 등으로 전면에 나서지는 못하고 있다.

소 변호사는 “입양절차를 정부가 전담하려고 하면 기초지자체에 아동복지 전담 공무원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인력과 예산이 필요한데 당장 확보하기는 힘들다는 점이 있다고 들었다”면서 “정부의 현실적인 고민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꾸만 입양기관에 의존하려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입양제도를 헤이그협약 정신에 맞게 변화시킬 경우 필연적으로 잇따라야 하는 것은 원가정 지원 정책이다. 입양에 이르기 전 원가정 보호 등 사전적인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입양아동의 90% 이상이 미혼모 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미혼모 가정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이 강화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은연 중에 어렵게 사는 미혼모 엄마 밑에서 아이가 크는 것보다는 (해외의) 잘 사는 부모를 만나게 해주는 게 낫지 않느냐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엄마와 아빠가 모두 있는 이른바 ‘정상가족’이 낫다는 인식도 있었던 거고요. 그러다 보니 기존 정책이 미혼모 가정에 대한 차별을 없애서 아이를 잘 키우도록 하자는 방향보다는 그냥 아이를 데려와서 '좋은 부모' 만나게 해주자는 쪽으로만 권장해 왔던 거죠. 그러나 헤이그협약에서도 원가정에서 아동을 보호하는 게 원칙이라고 밝히고 있고 아동복지나 아동심리 연구자들도 그 원칙에 부합하는 연구결과를 계속 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도 이제는 인식을 바꿀 때가 됐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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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김규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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