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4월 11일 오전 10시. 중국 상하이 프랑스조계 진션푸루(金神父路)의 한 양식건물에 모인 이동녕 조소앙 여운형 등 29명의 독립운동가들이 회의를 마치고 일어섰다. 전날 밤 10시부터 장장 12시간여에 걸쳐 임시의정원을 설립,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결정, 국무원 선출, 헌법 제정 등을 논의·결정한 것이다. 3.1운동 독립선언서에서 '독립국임을 선언'한 만큼 이에 입각한 '정부 수립'은 필연적 수순이었다. 대한민국은 이렇게 탄생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의 전환, 즉 국민이 국가의 주권을 갖는 시대를 연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임시정부는 이 사실을 임시헌장(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분명히 못 박았다.

3.1운동 이후 임시정부 설립 움직임은 상하이 이외에도 8곳에서 더 진행됐다. 이중 주최가 명확하고 인적기반과 조직까지 갖춘 곳은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해주의 대한국민회의, 서울의 한성정부 3곳이었다. 이들 3개 임시정부는 통합 논의를 거쳐, 1919년 9월 11일 상하이에서 통합정부로 출범한다.

이제 대한민국도 건국 100주년을 바라보게 됐다. 정부 및 관련단체는 벌써 100돌맞이에 분주한 모습이다. 내일신문도 이에 발맞춰 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 연재를 시작한다. 필자는 독립운동 분야 연구의 최고 전문가 중 한명인 한시준 단국대 교수다. '한시준 교수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역사를 더듬다' 기획 1회는 대한민국 건국 기념일인 4월 11일 게재하고, 이후부터는 격주 간격으로 월요일 연재할 계획이다.

[관련기사]
[한시준 교수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역사를 더듬다' ①] 독립운동 과정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세우다

내일신문 정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