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정상회담 재고려"에 백악관 움찔 … '선핵포기-후보상' 주장하다 직격탄

미국 백악관이 16일(현지시간) 북한의 강한 반발에 부딪힌 리비아식 비핵화해법이 미국 정부의 공식 방침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며 한발 물러섰다.

이로써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장했던 리비아식 해법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북미정상회담 협상안에서 제거되게 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두차례 방북 등 북미간 비공개 협의 내용과 관계없이 이른바 '선 핵폐기-후 보장' 주장으로 무리수를 두던 볼턴 보좌관이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으로부터 '카운터 펀치'를 맞은 셈이다.

북한은 김 제1부상의 16일(한국시간) 개인성명을 통해 볼턴 보좌관을 꼭 집어 맹비난했다. 김 부상은 "우리는 이미 볼턴이 어떤 자인가를 명백히 밝힌 바 있으며 지금도 그에 대한 거부감을 숨기지 않는다"면서 "우리를 구석으로 몰고 가 일방적인 핵포기만을 강요하려든다면 다가오는 조미 수뇌회담에 응하겠는가를 재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부상은 "볼턴을 비롯한 백악관과 국무성의 고위관리들은 '선 핵포기, 후 보상' 방식을 내돌리면서 그 무슨 리비아 핵포기 방식이니,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니, '핵·미사일·생화학무기의 완전 폐기'니 하는 주장들을 거리낌 없이 쏟아내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우리는 이미 조선반도 비핵화 용의를 표명하였고, 이를 위하여서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핵위협·공갈을 끝장내는 것이 그 선결조건으로 된다는 데 대해 수차에 걸쳐 천명했다"고 강조했다.

볼턴 등 강경파가 북미가 그동안 물밑 협상을 통해 의견을 조율해 온 비핵화-북한 체제안전보장이란 의제의 큰 틀을 깨고, 범위를 무리하게 확장하려하자 반격에 나선 것이다.

아울러 김 부상은 "지금 미국은 우리의 아량과 대범한 조치들을 나약성의 표현으로 오판하면서 저들의 제재·압박 공세의 경과로 포장하여 내던지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대미·대남 비핵화 협상에 나선 것은 핵무력이 완성단계에 왔다는 자신감과 나름의 정치로드맵에 따른 것이지, 굴복의 표현이 아니란 것이다. 그럼에도 볼턴 등 미 강경파는 '갑과 을'의 관계로 착각하고 일방적 항복을 요구하는 행태를 보여 좌시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북한이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 무산 가능성까지 언급하자 백악관은 볼턴의 주장을 깎아내렸다.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나는 리비아모델이 정부내 논의의 일부인 것을 본 적이 없다. 우리가 리비아해법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진화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을 정점으로 북미정상회담 준비의 두축으로 불리는 폼페이오와 볼턴은 정상회담 날짜와 장소가 발표된 시점을 전후로 서로 다른 발언을 내놓기 시작했다.

볼턴은 13일 ABC방송 인터뷰에서 과거 리비아식 핵협상 모델인 선 핵폐기-후 보상을 강조했고, 북미 협상 의제로 "화학·생물학무기도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해 '완전한 비핵화' 나 CVID에 초점을 둔 폼페이오 장관과 결이 다른 발언을 쏟아냈다. 여기에 인권문제까지 의제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볼턴과 달리 평양을 두차례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는 등 북한과의 비공개 접촉·협상을 주도해온 폼페이오 장관은 비핵화 방법론과 북한 체제안전보장 등 북미정상회담 핵심 의제에 발언의 초점을 맞췄다. 그는 같은 날 CBS방송과 폭스뉴스에 나와 "북한이 핵프로그램의 완전 해체에 동의했다", "우리가 비핵화를 얻는다면 제재완화는 물론이고 그보다 더 많은 것이 있을 것", "우리는 (북한에) 확실하게 안전보장을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동시에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동시적 해법에 반대하면서 빠른 비핵화를 강조했다.

사흘 전 두 번째 평양행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대안' 메시지를 들고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비핵화 방법, 체제안전보장 등 북미간 주요 협상의제를 협의한 상황에서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만족한 합의를 봤다"고 전했다.

결국 백악관이 16일 '리비아 모델'을 사실상 부정한 것은 볼턴의 무리수로 판이 깨지는 일을 막으려는 조치로 읽힌다.

전 세계에 공표된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무산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감당키 힘든 정치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오는 11월 의회 중간선거는 물론 2020년 대통령 재선 전망도 흔들릴 수 있다.

중국 전문가들은 북미간 이같은 충돌에 대해 "북한이 이런 입장을 발표하게 된 주된 원인은 미국에 있다"고 지적했다.

뤄촤오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16일 환구시보 인터뷰에서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자신감이 넘친 미국이 정세를 오판했다"면서 "북한이 비핵화 대화에 나온 것을 한미 대규모 군사훈련과 최대압박 및 제재 때문이라고 미국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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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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