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판 조회' 무죄 판결 … 특정인 합격 위한 정원 증가는 위법

사회 각 분야 채용비리 수사의 불씨를 당긴 금융감독원 채용비리 사건에 대한 1심 판결 결과, 검찰이 기소한 4건의 비리 중 1건만 유죄가 인정됐다.

채용비리(직권남용과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문종 전 금감원 총무국장에 대해 법원은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하면서도 '평판 조회'와 관련한 채용비리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평판 조회를 거치면서 불합격자 3명이 합격자로 바뀌었지만 검찰이 이들 3명의 배후에 청탁과 로비 등이 있었는지를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3일 이 전 국장의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검찰은) 이 전 국장이 특정인을 부정하게 합격시키기 위해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이 아니라 당초 채용계획과 달리 면접에 의한 합격자 결정 방식을 바꾸거나 자의적인 평판 조회를 실시해 이를 근거로 합격자를 변경한 것 자체를 문제삼고 있다"며 "하지만 이 전 국장이 다른 면접위원들의 오인·착각 등을 일으키게 하거나 이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평판 조회 실시를 주도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평판 조회를 통해 합격자로 바뀐 3명과 관련해 로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벌였지만 혐의를 입증할만한 물증이나 진술을 확보하지 못했다.

법원이 유죄를 인정한 사건은 특정인을 합격시키기 위해 합격자 정원을 늘린 경우다. 법원이 인정한 사실을 종합하면 금감원은 2015년 신입직원 채용계획에서 5급 일반직 채용인원은 53명이었다. 이 전 국장은 필기전형이 진행된 후 응시자 A씨의 합격여부를 묻는 전화를 받고 확인한 결과 경제학분야 합격정원 22명에 들지 않고 23등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이 전 국장은 인사팀 직원들을 불러 채용예정인원을 당초 53명에서 56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A씨는 필기전형 합격자에 포함됐고 면접을 거쳐 최종합격했다.

재판부는 "이 전 국장이 A씨의 합격 여부에 관한 연락을 받기 전에 채용예정인원을 증원하는 방안에 관해 진지하게 검토했다는 점에 관한 객관적인 자료를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이 전 국장이 당시 수석부원장으로부터 응시자 B씨와 관련한 합격 여부에 대한 연락을 받은 뒤에 대응한 방식 등을 유죄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이 전 국장은 당시 수석부원장에게 △B씨의 경우 필기시험 합격자 중 하위 20%이고 △면접시험 성적도 상당히 저조, 면접관 9명의 합의로 이뤄진 결정이라서 번복이 거의 불가능하다며 △그래도 합격선에 근접한 탈락자라면 2차 면접 진출자를 늘려 융통성을 발휘해 볼 수도 있겠는데 탈락자그룹 끝자락에서 구제하는 것은 어렵다는 내용의 답글을 보냈다. 이 전 국장은 감사원 감사과정에서 '합격선에 근접한 탈락자라면 ~'이라는 부분을 삭제해 제출했다가 수사과정에서 발각됐다. 재판부는 "이와 같은 점에 비춰보면 이 전 국장이 A씨의 합격을 위해 채용예정인원 증원 및 배정안을 추진했음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법원은 이같은 이 전 국장의 행위를 윗선에서 알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 합격이라는 목적을 갖고 일을 추진하면서도 이를 숨긴 채 채용인원을 증가시켜 결재권자가 이와 같은 사정을 알지 못하고 이로 인해 제반 상황을 전체적 종합적으로 평가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결재권자를 보좌하는 총무국장으로서의 재량을 현저히 일탈, 남용한 행위로 위계에 의해 채용업무와 합격자 결정 업무의 적정성을 해한 위법행위"라며 "전형에서 탈락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했고 금감원에 대한 신뢰가 손상됐다"고 밝혔다.

검찰에서 특혜의혹을 제기한 합격자 4명은 현재 업무에서 배제된 채 사실상 대기발령 상태다. A씨의 경우 법원도 특혜채용을 인정한 만큼 업무에 복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나머지 3명은 평판 조회를 문제 삼기 어렵다는 법원의 판단에 따라 업무복귀 가능성이 높지만 이중 1명은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하고도 지방 소재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기재해 문제가 될 수 있다. 금감원은 당시 지방인재를 10% 내외로 채용한다는 채용전형을 밝혔기 때문에 지원서 거짓 작성에 대한 별도의 판단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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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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